대량구매홈 >
사회과학
>
사회학 일반
>
사회학일반

펼쳐보기
세습 자본주의 세대 : 88만원 세대는 어쩌다 영끌 세대가 되었는가?
정가 19,000원
판매가 17,100원 (10% , 1,900원)
I-포인트 950P 적립(6%)
판매상태 판매중
분류 사회학일반
저자 우석훈
출판사/발행일 인물과사상사 / 2023.04.07
페이지 수 348 page
ISBN 9788959066834
상품코드 356713346
가용재고 재고부족으로 출판사 발주 예정입니다.
 
주문수량 :
대량구매 전문 인터파크 대량주문 시스템을 이용하시면 견적에서부터 행정서류까지 편리하게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도서를 견적함에 담으시고 실시간 견적을 받으시면 기다리실 필요없이 할인받으실 수 있는 가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매주 발송해 드리는 인터파크의 신간안내 정보를 받아보시면 상품의 선정을 더욱 편리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대량구매홈  > 사회과학  > 사회학 일반  > 사회학일반
 대량구매홈  > 시/에세이  > 에세이/산문  > 사회비평에세이
 대량구매홈  > 사회과학  > 사회비평

 
책내용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1986년생 김예슬은 2010년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선언했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대학생들은 학벌, 학점, 외국어, 자격증 등 스펙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만성적 불안감이 청춘의 일상을 잠식해갔던 시절이었다. 특히 이때부터 자소서가 취업 전선의 총아로 떠올랐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이 취준생들을 짓눌렀다. 80년대생들은 왜 자소서 내용을 채우기 위해 고난을 마다하고, 돈을 주고 자소서를 사면서까지 취업 전선에 나섰을까? 기업에 들어가야 ‘성공’이라는 사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80년대생 앞에는 일자리가 없던 게 아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그리고 꼭 들어가고 싶은 ‘성 안의 일자리’, 즉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이 적었을 뿐이다. 2000년대 학번들이 너도나도 경영학 복수전공에 몰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7년 우석훈과 박권일은 평균임금을 외피 삼아 세대 개념을 잉태한 책인 『88만원 세대』를 출간했다. 2007년 비정규직 평균임금인 119만 원에 성인들에 대한 20대의 평균임금 비율 74퍼센트를 곱해 나온 숫자가 88만 원이었다. 우석훈과 박권일은 20대(1980년대생)의 상위 5퍼센트만이 한국전력, 삼성전자, 5급 사무관 이상의 단단한 직장을 가질 수 있고, 나머지는 평균임금 88만 원 정도를 받는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이 책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예견한 책이자, 경제성장이 막혀버린 한국 자본주의의 우울한 민낯을 까발렸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생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기압차가 만드는 치열한 소용돌이를 마주해야 했던 세대였다. 자율을 표방한 공교육의 대상이자 산업화한 사교육의 최대 고객층이었기 때문이다. 일명 ‘이해찬 세대’라고 불리는 1983~1985년생들은 “시험 안 봐도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온전한 의미에서 특기·적성 교육을 향유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특기와 적성을 만들어야 했다. 그와 동시에 1990년대 중후반부터 사교육 시장이 급속히 팽창했다. 이를테면 80년대생은 ‘사교육 네이티브’였다. 그렇게 80년대생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대학 진학률이 높았던 세대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이해찬주의’의 ‘무시험’이라는 단어를 들었고, 또 한편에서는 ‘손주은주의’의 “수능 만점에 도전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자율의 배신이었다.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사다리를 잃은 세대 주거 사다리는 자산 증식의 사다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미덕은, 이 사다리를 탈 기회가 출신·학벌·명예·인맥과 상관없이 꽤 많은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제 노동으로 모은 종잣돈만으로 계층 이동에 성공할 수 없다. 즉, 월급을 모아 안정된 주거를 확보하는 게 불가능하다. 1980년대생은 빚을 낼 권리도 없어 무력했다. 세습이 아니고서는 사다리를 올라설 기회를 잡지 못한다. 이제 세습 자본주의의 막이 올랐다. ‘더 고생하면 더 나은 집에 살 것’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서사는 파편처럼 부서졌다. 30대에게도 ‘내 집’은 넘볼 수 없는 세계였다. 부동산 세습은 한 세대 내에서도 소수의 전유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세습을 경유하지 않고 내 명의의 아파트에 살기 어렵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세습이 아니고는 피라미드 위로 가기 어려운 곳이 되어가고 있다. 사다리를 잃은 30대는 결혼도 포기하는 ‘결혼 불능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혼자가 편해서, 집값이 너무 올라서, 취업난 때문에, 배우자를 찾지 못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30대 남성은 취업과 부동산 등 경제적 제약 상황에 더 민감했다. 30대 남성의 미혼율과 실업률은 서로 연동되어 있다. 실업, 부동산 자산 불평등, 결혼 불능 문제는 서로 얽히고 설켜 있는 것이다. 2022년 3월 대선에서 30대 남성은 30대 여성에 비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비율이 높았는데, 이는 부동산 정책 실패가 가장 컸다. 그리고 윤석열이 좋아서가 아니라 이재명 혹은 민주당의 패배를 위해 투표한 비율이 ‘삼미남’에서 가장 도드라졌다. 이것은 부동산 자산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투표라는 행동으로 나타난 결과다. 30대 남성들이 ‘정치적 변심’을 한 결정적인 이유다. 1980년대생은 진보 성향이 분명히 강했다. 환경이나 인권, 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또 대학 시절부터 북한 문제에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보다 보수적이었으나, 비정규직 등 경제 이슈에 대해서는 진보 성향이 강했으며, 복지에 관해선 양대 정당의 노선보다도 전향적인 인식을 가졌다. 또 민주화의 성취를 높게 평가했다. 그것은 진보 논객이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라는 점과도 맞물리는 현상이었다. 2000년대는 사상의 자유시장이 완연히 열린 시기였다. 학생회나 운동권에 별반 관심이 없던 대학생들에게도 진보 논객들의 담론이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쳤다. 더구나 진보 논객들의 도서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에는 진보 논객들이 대학생들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탈(脫)민주당 양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생의 목표는 명확했다. 이들은 투표를 통해 집권세력에 분명하게 각을 세웠다. ‘비정규직 시대’의 그늘 1980년대생은 ‘비정규직 공화국’의 출발점에 선 세대였다. 그런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분절된 시장, 즉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토양을 다진 건 바로 노무현 정부였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며 2007년 일명 ‘비정규직보호법’을 시행했지만, 2년마다 해고가 잇따랐다. 1980년대생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할 시점부터 비정규직 규모가 급증했다. 국내 비정규직 규모는 2003년 462만 명에서 2004년 540만 명으로 급증했다. 2005년과 2006년에도 각각 546만 명, 2007년에는 573만 명 등 꾸준히 상승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2년 뒤 578만 명으로 늘더니 2011년에는 605만 명으로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2012년 595만 명으로 잠깐 주춤하더니 2015년에는 630만 명, 2021년에는 815만 명으로 폭증했다. ‘일자리는 당연히 정규직’이라는 앞선 세대의 상식은 사라졌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삶의 복판으로 가시처럼 틈입한 시절이었고, 약탈적 금융이라는 단어가 공론장의 한편에서 출몰을 거듭하는 때였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잘못 떼면 금세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에 휩싸인 시대였다. 1990년대생도 비정규직의 그늘을 물려받았다. 현재 한국은 비정규직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국가다. 그 시절 1980년대생이 좋아한 노무현이 ‘비정규직 시대’에 불을 질렀으니 이 얼마나 얄궂은 운명인가? 1980년대생은 노동시장의 출발선부터 보편적 고용 형태의 하나로 비정규직을 경험한 첫 번째 세대였다. 1980년대생이 복지에 관해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비정규직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노동시장이 그들의 삶 곳곳에 남긴 그늘이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이 혹은 친구가, 가족이, 이름 모를 온라인상의 누군가가 겪은 비정규직의 경험을 애달피 여긴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2010년대 초 정치권을 휩쓴 ‘보편적 복지’ 열풍에서 가장 강력한 지지층은 당시의 20대, 그러니까 1980년대생이었다. 그렇다면 1980년대생 앞에 가시적인 거악은 누구인가? 저성장 시대를 상대로 싸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아니면 비정규직을 철폐하라고 머리띠라도 둘러야 하는가? 적어도 사회가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버틸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최소한 도태되지 않을 만큼의 인프라는 구축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승자독식 사회의 우울한 민낯 1980년대생은 등록금 1,000만 원 시대에 대학에 다녔다.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을 압도했다. 교육 양극화뿐만 아니라 부동산 자산 불평등이 심화해서 각자도생해야 했다. 또 한편으로 1980년대생이 살아온 한국 사회는 기회가 줄어든 사회다. 기회가 줄어든 시장은 전장이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전사가 되어야 했다. 한 번 불리한 길에 들어서면 반전의 계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패자 부활전이 없는 사회다. 말 그대로 승자독식 사회다. 1980년대생들은 그렇게 눈물겨운 ‘사다리 올라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생이 전반적으로 진보에 가깝다는 건 진실에 부합한다. 이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의 형에게 치를 떨었다. 전직 대통령의 비선 실세에 분노했고, 전직 법무부 장관의 위선을 조롱했으며, 부동산 시장의 불평등에 화를 냈다. 30대는 조국 사태 이후로 민주당에 정나미가 떨어졌고, 특권층 검사들이 주도하는 윤석열 정부에 희망을 보지 못한다. 30대들의 삶은 눈물마저도 메말라 버릴 듯한 꽉 막힌 현실이다. 거기에 더딘 경제성장에다 기계화·자동화까지 겹쳐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있다. 1980년대생과 1990년대생, 아마도 높은 확률로 2000년대생까지 직면할 현실이다. 1980년대생이 노동시장에서 느낀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스펙 시대를 건너온 1980년대생은 “단군 이래 가장 근면 성실한 세대”다. 1980년대생은 이기적인 세대거나 권리만 주창하는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제대로 먹고살기 위해 요구하는 것이다. 투자에도 적극적이고 부업에도 두려움 없이 뛰어들면서 ‘갓생’의 삶을 산다. 이것이 사다리를 잃은 세대 혹은 생존주의 세대가 사는 법이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다. 단지 이들에게 열린 길은 오므린 듯 좁았을 뿐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사다리가 없다.
목차
추천사 ㆍ 006 프롤로그 : 80년대생의 축복과 고통 ㆍ 010 제1장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 서른의 운명 ㆍ 024 나의 영끌 분투기 ㆍ 036 나는 SOLO ㆍ 050 갭 투자 세대 vs 임차인 세대 ㆍ 062 제2장 어쩌다 1980년대에 태어나 월세 인생, 고금리 인생 ㆍ 076 문화적 선진국의 첫 시민 ㆍ 088 우리의 월드, 월드컵과 싸이월드 ㆍ 100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램덩크가 있다 ㆍ 112 제3장 사다리를 잃은 세대 88만원 세대의 추억 ㆍ 126 입사의 이유 ㆍ 136 스펙에 질식당하다 ㆍ 148 87년생 대기업 과장의 이야기 ㆍ 160 제4장 진보 담론 우위의 시대 그 시절 우리가 뽑은 비운동권 ㆍ 174 진보 논객의 전성기 ㆍ 186 노무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ㆍ 200 제5장 1980년대생의 변심이 말해주는 것 세대 동맹의 균열 ㆍ 214 어떤 섭외 ㆍ 226 조희연의 제자, 윤석열의 지지자 ㆍ 238 제6장 가장 논쟁적인 능력주의 20대 남성을 사로잡은 어떤 30대 ㆍ 250 가장 정치적인 능력주의 ㆍ 264 이해찬과 손주은 사이의 혼란 ㆍ 276 제7장 너무 차갑지도, 지나치게 뜨겁지도 않은 정의롭되 정의롭지 않았다 ㆍ 290 우리 세대의 위선 ㆍ 302 꿈의 독재를 넘어 ㆍ 316 에필로그 : 사다리 올라타기 ㆍ 329 해제 ㆍ 333 주 ㆍ 337
본문중에서
그 많던 주거 사다리는 누가 다 없애버렸을까? 지난 5년간에 한정해보면 그 장본인이 문재인 정부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을 다주택자의 투기 욕망이라고 보았다.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다주택자가 시장의 혼란을 부추긴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또 다른 행위자는 무주택자다. 이들은 건물주 눈치 보는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1주택자는 지금보다 나은 주택을 선망한다. 다주택자끼리, 무주택자끼리, 1주택자끼리 거래하면 쉽다. 현실의 시장은 이들 각각의 욕구가 한데 뒤엉켜 부딪히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도덕과 훈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제1장 결혼과 부동산 시장의 패자」(본문 32쪽) 1980년대생은 문화적 열등감이 없는 첫 번째 세대다. 우리는 우리를 약소국의 시민으로 규정짓지 않는다. 애국과 사대주의 틀로 문화의 위계를 설정하는 행태도 거부한다. BTS가 ‘우리 시대의 비틀스’로 불리고, 봉준호·박찬욱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시대에 사는 199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게 그 자부심의 크기는 훨씬 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30대 이하 청년들에게 한국은 문화의 영역에서 자긍심을 가질 만한 성취를 거둔 국가다. 그 앞에서 ‘드디어 우리나라도’ 같은 K 타령만 하다가는 꼰대라는 소리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2장 어쩌다 1980년대에 태어나」(본문 99쪽) 나는, 아니 우리 세대는 3저(底, 달러·유가·금리) 호황의 시대에 태어났다. 컬러텔레비전과 프로야구,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의 시대를 건너왔으며 미국의 칼럼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이 간파했듯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가 지구상 국가를 이웃집처럼 연결한 ‘평평한 세계(The World is Flat)’에서 성장했다. 단군 이래 최고로 똑똑한 것까지는 몰라도 세계화 시대의 주역이라며 온갖 기대감을 받고 자랐다. 학창 시절, 나와 우리 세대가 귀가 아프도록 듣던 말은 개성과 재능을 살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유명한 ‘이해찬 세대’였다.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말은 우리 사이에서도 유행처럼 돌고 돌았다. 현실은 이해찬의 설계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제3장 사다리를 잃은 세대」(본문 145~146쪽) 우리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했던 시기에 노무현을 겪었다. 따라서 정책이나 국정 운영에 대한 찬반을 떠나, 우리는 감정적·정서적으로 노무현 세대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우리 개개인에게 또렷이 아로새겨진, 지울 수 없는 지문(指紋) 같은 존재였다. 우리가 가진 세계관의 결절점(結節點)이었다. 나는 그것이 기성 질서에 대한 뾰족한 반발심에서 비롯한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윗세대의 경험에 비할 바는 아니나 우리도 야만의 시대를 건너왔다. 교련복만 벗었을 뿐 국민체조를 해야 했고, ‘애국 조회’랍시고 월요일 아침마다 땡볕에 운동장에 부동자세로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를 들어야 했다. 「제4장 진보 담론 우위의 시대」(본문 208~209쪽) 범1960년대생(1963~1972년생)과 범1970년대생(1973~1982년생)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40대 이상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잔류 성향이 강했다. 30대에서만 또렷한 이탈 성향이 엿보였다. 전 세대를 통틀어 30대의 변화 폭이 가장 컸다. 2022년 대선의 최종 성패는 0.73퍼센트포인트(48.56퍼센트와 47.83퍼센트) 차로 갈렸다. 조금 과장해서 30대의 변심 때문에 이재명 후보가 간발의 차로 대통령이 되는 데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20대(1993~2002년생)는 10년 전에 투표권이 없어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 변심은 뉴스이자 사건이다. 2~3년 전이라면 누구도 예상 못했을 반전 드라마다. 선거는 고정 지지층(집토끼)을 지키고 부유하는 유권자(산토끼)를 설득해야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제5장 1980년대생의 변심이 말해주는 것」(본문 223~224쪽)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은 겉으로는 ‘자율의 장소’였다. 대통령은 개방과 탈권위의 화신인 노무현이었다. 우리는 원하는 전공을 택했고, 원하는 곳으로 봉사활동을 갔으며, 원하는 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그리하여 모든 책임은 우리 개인의 몫이었다. 그 모든 ‘자율적인 행위’는 입시 전쟁 못지않았던 취업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무기의 성능이 내가 겨냥할 기업의 ‘네임 밸류’를 가늠했다. 너도나도 경영학을 복수전공했고 자기계발서가 불티나게 팔렸다. 그 모든 것이 싫은 이들은 시험 ‘한 방’으로 판가름 나는 게 공정하다며 노량진 육교를 건넜다. 그러고 나서 공시생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했다. 완전히 자율적인 것도 완전히 타율적인 것도 아닌 채 정체된 상황에서 우리는 무력했다. 「제6장 가장 논쟁적인 능력주의」(본문 286쪽) 한국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꿈의 독재’ 체제 치하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50년대 농지개혁으로 ‘평등한 자영농의 나라’가 되었다. 자영농의 자식들이 맨손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구었다. 산업화는 보수적 꿈을, 민주화는 진보적 꿈을 상징한다. 지금은 어떤가? 보수적 꿈은 남과 경쟁해 이겨내라고 부추긴다.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을 더 늘릴 수는 없으니 그 자리에 어떻게든 들어가라고 채근한다. 진보적 꿈은 불평등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자고 한다. 모든 비정규직을 대기업과 공기업 정규직처럼 만들어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된다고 소리친다. 「제7장 너무 차갑지도, 지나치게 뜨겁지도 않은」(본문 326쪽)

저자
우석훈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대 환경연구원, 에너지관리공단, 국무조정실 등에서 환경관리와 기후변화협약 담당 업무를 수행했다. 수년간 기후변화협약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국제협상에 참가했고, 한국생태경제연구회의 설립에 참여한 이래 생태계경제학의 기본 이론을 정리하고 생태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학자. 두 아이의 아빠. 성격은 못됐고 말은 까칠하다. 늘 명랑하고 싶어 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된다. 욕심과 의무감 대신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보람으로 살아가는 경제를 기다린다. 저서로 『88만원 세대』 『당인리』 『팬데믹 제2국면』 등이 있다.
   연봉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 우석훈 | 새로운현재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큰글자책) | 우석훈 | 소명출판
   세습 자본주의 세대(큰글자책) | 우석훈 | 인물과사상사
   호모 콰트로스: 내전편 | 우석훈 | 해피북스투유

이 출판사의 관련상품
디자인 미학(큰글자책) | 장유리 | 인물과사상사
민주주의의 모험(큰글자책) | 한정선,이의진,김지혜 | 인물과사상사
집의 미래(큰글자책) | 노은주,임형남,곽영직 | 인물과사상사
도시 인문학(큰글자책) | 임형남,노은주,김동현 | 인물과사상사
MBC의 흑역사(큰글자책) | 서정 | 인물과사상사

이 분야 신간 관련상품
법의학자의 서재(큰글자책) | 나주영 | 드레북스
의례를 통한 저항 | 스튜어트 홀,임영호 | 컬처룩
역사와 현실 | 매일신문사
미디어 기술 부상하는 케이팝 | 이종임 | 북코리아
신사회계약 | 김만권,오수웅,구춘권,랄프 하베르츠,박혜영 외 | HUINE
 
도서를 구입하신 고객 여러분들의 서평입니다.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가능합니다만, 서평의 성격에 맞지 않는 글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등록된 서평중 분야와 상관없이 매주 목요일 5편의 우수작을 선정하여, S-Money 3만원을 적립해드립니다.
0개의 서평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