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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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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사회학일반
저자 조귀동
출판사/발행일 생각의힘 / 2023.07.28
페이지 수 328 page
ISBN 9791193166161
상품코드 35677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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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선진국 진입의 팡파르 너머에서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을 던지다 선진국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좌건 우건 별다른 이견 없이 도달한 보기 드문 합의다. “머지않아 고도 산업사회를 실현하고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참여하게 될 내일의 조국의 모습”을 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상은 “대한민국은 이제 선진국이며, 선도국가가 되었”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선언으로 완성됐다. 그러나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환호 아래에서는 정치가 헛돌고 있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정치(인)”의 이미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그리 공들이지 않아도 쉬이 떠올리고야 마는 심상이다. 그렇기에 선진국 한국의 다음 경로는 지금 당장 심상치 않다. 여기, 버르적댈수록 깊게 빠지는 늪에 모두 함께 엉켜 있는 이 땅을 돌아보는 책이 출간되었다. 제대로 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만성적 위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해부하고 매섭게 파헤치는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다.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에 주목하고, 《전라디언의 굴레》에서 지역과 계급이라는 이중차별에 사로잡힌 호남을 소환한 저자가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발걸음에 제동을 건다. 왜 우리의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어섰지만, 정치 영역에서는 오히려 퇴보하다시피 하는 걸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는 어떤 상황에 봉착할까? 우리는 어떤 선진국을 향하고 있고, 향해야 하는가? 저자는 여러 물음을 던지며 ‘교착 상태’에 빠진 한국 사회와 마주하고 이 악순환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하나하나 짚어 살핀다. 종내에는 “어떻게 정치를 되살릴 것인가”에 관해 논하며,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한 절실하면서도 살뜰한 제안을 건넨다. 포퓰리즘 정치의 약속의 땅, 한국과 이탈리아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바람직한 모델로 꼽아온 것은 미국 또는 스웨덴이었다. 보수는 미국식 시장경제를, 진보는 북유럽 사민주의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가운데 현실적인 타협안으로 제시된 것은 독일 모델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탈리아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탈리아는 한국과 비슷하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산업화를 겪었다. 1960년 전후 ‘경제 기적’이라 불린 고성장을 이뤘고, 1980년대 들어서는 ‘제2차 경제 기적’으로 호시절을 맞았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문제로 지적된 것들, 예컨대 방만한 공공 부문과 만성적 재정 적자, 인위적 경기 부양에 대한 의존, 낮은 생산성, 높은 인건비, 투자 부진, 불투명한 기업 지배 구조 등이 바뀌지 않으면서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1990년대 이후 이탈리아 정치는 개혁에 나설 추진력을 갖지 못했고, 경제가 정체를 면치 못하며 2021년 1인당 GDP(3만 1,288달러)에서 한국(3만 1,497달러)에 추월당했다(19쪽). 저자는 이탈리아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나뉜 강한 이중 구조를 보이는 점에도 주목한다. 이는 그대로 사회복지의 이중 구조를 낳는다. 심지어 유럽에서 출산율과 혼인율이 가장 낮은 사회라는 점 또한 닮았다. 경제 구조에 더해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이 저출생의 요인으로 꼽힌다. 정치 사정을 살피면, 두 나라 모두 거칠고 진득한 포퓰리즘 정치가 주류에 편입해 있다. 다음 문장의 주어로 한국이건 이탈리아건 둘 중 어느 나라가 와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약속의 땅이 있다.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양쪽에서 강한 이중 구조가 형성되어 있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가부장제가 끈끈히 남아 있으며, 좌우 가리지 않고 포퓰리즘 정치가 기승을 부린다. 젊은이, 특히 젊은 여성을 위한 나라가 없다고 불린다.” 한국이 지금 어떤 유형의 사회로 나아가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이탈리아로 가는 길에 있다는 답을 내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어 저자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자리한 것이 ‘정치의 위기’라고 선언한다. ‘노무현 질서’로 살피는 한국 정치의 내파 과정 책은 무거운 진단을 토대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한국을 요모조모 살핀다. 먼저 저자가 ‘노무현 질서’라고 이름 붙인 개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는 2002년 대선을 전후해 자리 잡은 정치 질서로, 흔히 ‘체제’로 번역되는 레짐(regime)이나 시스템(system)보다 정당, 정치인, 이데올로기, 지지자 구성, 정치 행위의 명시적·암묵적 규칙 등에 방점이 찍혀 있다(12쪽).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한국의 정치 질서는 새롭게 재구성되었는데, 거대 양당이 선거에서 경쟁하는 ‘정권 교체’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간주하는 민주주의가 한국 사회에 정착한 것이 바로 이때다. 저자는 노무현 질서의 특징 중 하나로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대중정치의 본격화(58쪽)를 꼽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이전과 다른 대중 동원 방식을 만들어냈기에 가능했고, 이후로도 당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인이 직접 ‘시민’을 동원하는 기제를 통해 당내 권력을 잡는 규칙을 확립했다고 서술한다. 이 작업의 바탕에는 대학교 졸업·대기업 근무·대도시 거주 화이트칼라 집단이 사회 전반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중산층 행동주의’가 있었다(13쪽). 새로운 정치 질서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게 하는 경제 환경 또한 2000년대 초중반 재구성됐는데, 대기업 집단이 보여준 기술 기반과 수출 지향 그리고 경영 효율화를 추구하는 선진 경영기법 등이 그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오늘날의 위기가 정치인 개개인이나 정당 또는 권력 구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정치 질서가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가 선진국으로 바뀌어 나가면서, 그 성공으로 인해 정치 질서 내부의 모순이 수습 불가능한 지경이 된 것이라고 갈파한다. 일종의 ‘내파(implosion)’가 발생한 셈이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란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결과라는 지적(7쪽)은 통렬하면서도 아리다. 지금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받는 것 중 다수는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정당 간 경쟁과 현대적 대중 동원 과정에서 출현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특정 정치인이나 분파에 강한 일체감을 가지면서 다른 이들과 공존을 거부하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있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아주 친숙한 정치의 모습이다. 대중정치의 주역으로 새로이 떠오른 이들은 수출 대기업의 질적 성장에 힘입어 늘어난 중산층 집단으로, 저자가 전작 《세습 중산층 사회》에서 ‘상위 중산층(upper middle class)’으로 호명한 바 있다. 이들은 1987년 6월 혁명과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이끌었는데, 이후 ‘깨어 있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중요한 정치적 상수가 되도록 했다. 그러나 경제 구조 고도화는 복합적인 불평등을 낳았고 극복하기 어려운 질적 격차를 만들어내며, 수출 대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상위 중산층과 나머지 ‘뒤처진 사람들’의 격차가 심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뒤처진 사람들의 불만이 정권 교체 등 대규모 정치 구조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노무현 질서가 갖는 불안정성의 근원이자 주된 특징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83쪽). 상위 중산층의 정당, 민주당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정부 2000년대 대중정당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모두 경제적 ‘승자’들이 주도권을 쥔다. 노무현 정부 시기 정당 간 균열이 “먹고사는 문제”와 거리가 먼 정치 개혁, 검찰 등 권력 기구 장악, 언론 등을 놓고 벌어진 데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노무현 질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는 동시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나 ‘아파트 광풍’ 등을 통해 그 과실이 불평등하게 배분된다는 사실 또한 명확해진 까닭이다. 자산과 노동시장에서 확대된 불평등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 즉 선진국 진입에 따른 결과다(99쪽). 따라서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대규모로 발생한 탈민주당 유권자들의 공통점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라는 데 있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수식어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상위 중산층의 정당’이 된 민주당에서 더는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 데 따름이다. 글로벌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서울의 바깥, 즉 경기도 주민과 호남 및 호남 출신 이주민의 이탈을 시작으로 ‘촛불연합’은 붕괴했는데, 이제는 과거와 달리 경제라는 하부구조마저 민주당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보수정당은 5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했지만, 거대한 반대 여론에 꾸준히 직면해 있다. 저자는 근본적 이유로 ‘무능력’을 꼽는다. 앞서 살폈듯, 애초에 그들의 재집권은 쟁취해낸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31쪽).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 정책, 인물, 조직 등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기존 정치 질서의 균열을 봉합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역량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총체적 정치 부재가 야기한 ‘희한한 현상’”이라 지적한다(133쪽).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로 급조된 보수정당의 지지 연합이 와해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박정희, 반공·반북, 영남으로 요약되는 전통적 보수(안보 보수)가 퇴조한 가운데, 경제 문제에 집중하는 새로운 보수(시장 보수)도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수의 지지 기반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라는 점을 든다. 그러나 집권 정당은 이들 지지 기반을 위한 정책을 펼치지 않고 있으며, 펼칠 능력도 없다고 역설한다. 인지적 비당파층을 보수 지지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혁신이 필요한데, 그럴 노력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고소득자나 자산 보유자를 위주로 한 정책을 내놓고 있기에, 보수 진영을 이끌어가는 집단과 투표장에서 숫자로 힘을 발휘하는 집단 간의 괴리가 심해지는 모습이다.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낼 역량, 요컨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는 정당에게는 출구 없이 단 하나의 경로만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명명한 ‘공동구매형 사회’에서는 그간 얼추 ‘성의 안과 밖’ 구분 없이 공공재를 구매해서 소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뒤처진 사람들’이 정치의 가장자리로 밀려난 지금 우리 앞에 남은 길이라고는, 이미 여러 선진국이 보여주었고 책에서 대표적 예시로 들고 있는 이탈리아가 걸어간 길인 포퓰리즘 정치뿐이다. 이곳에는 ‘순수한 민중’과 ‘부도덕한 적’, 소위 ‘내 편’과 ‘네 편’만 존재한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민주주의일지는 몰라도 개개인의 삶의 문제는 그 어느 것 하나 약속할 수 없는 척박하고 불안정한 토대라 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위하여, 정치의 복원은 가능할 것인가 1989년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당신은 중산층입니까?”라는 질문에 75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다. 2022년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53.7퍼센트가 그리 답했는데, 45.6퍼센트는 “하위층”이라고 답했다. 특히 30대는 55.6퍼센트가 하위층에 속한다 생각했다(269쪽). 대한민국의 오랜 꿈이 “선진국”이었다면, 한국인의 오랜 꿈은 “중산층”이었다. 고도성장 아래에서 정부의 ‘중산층 만들기’ 계획은 대중의 열망과 기꺼이 결합할 수 있었다. 안정된 생활과 삶의 개선이라는 목표지점으로서 중산층이라는 개념은 ‘선진국으로의 추격’을 위한 연료이자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265쪽). 비록 ‘목표로서의 중산층’을 모두가 달성할 수는 없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까지도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주요 정당의 공통된 목표로 존재했다. 그러나 2023년 한국 사회에서 ‘열망의 대상 또는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의 중산층’은 상위 중산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간주된다. 이제 중산층 복원이라는 사회계약의 갱신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보여줄 수 있는가’의 문제가 보수와 진보 가리지 않고 과제가 된 상황이다.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한국 사회가 어떤 특징을 가진 선진국이 되고 있는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을 찬찬하고 집요하게 뜯어본다. 주요 선진국과 그중에서도 이탈리아의 지표에 주목한다. 닮아도 너무 닮은 숫자와 화살표를 참담한 심정으로 추적한다. 2장에서는 노무현 질서를 뼈대로, 2000년대 이후 한국의 정치 질서를 분석한다. 탄생과 성장과 균열과 좌초의 연대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3장은 촛불혁명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압도적 우위가 어떻게 허물어졌는지 파헤치고, 4장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가진 팍팍한 한계를 살핀다. 5장에서는 기존 정치 질서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더 주요하고 긴급한 ‘고령화’, ‘지방의 몰락’, ‘외국인 이주민 증가’라는 키워드에 주목한다. 6장은 ‘공동구매형 사회’를 통해 전통적인 공공재 공급 방식이 무너지는 양상과 정치적 함의를 다룬다. 7장에서는 포퓰리즘 정치에 관한 본격적인 규정과 검토가 이어진다. 결국 정치의 복원이다. 책은 “한국은 어떠한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는 닫는 문장으로 시작하지만, 모든 지면은 열려는 시도로 가득하다. 낙담하고 주저앉는 대신 ‘진짜 정치’의 복원을 부르짖고, 그 방법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모색한다. 특유의 섬세함으로 숫자 너머를 읽으려 분투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참가해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안을 찾는 과정’이라는 정의는 언뜻 새삼스럽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가 조금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정치의 본질’임에 틀림없다. 정치의 복원을 불러오는 여정을 통과해야만 국민 누구나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진짜 자유’ 또한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젖과 꿀이 흐르는 진짜 약속의 땅이어야 한다.
목차
들어가며∥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사회 사회적 병목이 된 정치│선진국 진입의 결과, 노무현 정치 질서의 내파│포퓰리즘 정치의 약속의 땅, 한국과 이탈리아│글의 구성 1장 미국도 독일도 스웨덴도 아닌 이탈리아로의 길 어떤 선진국인가: 최저 출산율이란 지표│고착화된 이중 구조와 낡은 가부장제│결국 정치의 실패가 원인│경제 구조 변화는 어떻게 이탈리아 정치를 무너뜨렸나│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사회의 형성 2장 노무현 질서의 등장과 모순 경쟁적 민주주의의 탄생│정치 질서│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대중정치의 본격화│글로벌 일류 기업이 된 재벌들│중산층 행동주의의 등장│지지 연합의 불안정성이라는 근본 문제│보수의 대중정치 대응: 뉴라이트의 등장과 이명박 정부의 좌초│‘산업화 아이돌’과 ‘응답하라 2004’라는 선택지 3장 촛불연합의 붕괴와 상위 중산층의 정당 민주당 호남·충청 이주민과 서울로 통근하는 그 자녀의 변심│민주당 텃밭이라던 수도권 아파트, 불만을 폭발시키다│노동시장 지위가 불안정할수록 문재인 정권을 반대한다│지니계수가 가린 불평등의 구조 변화│민주당의 경제 정책은 왜 실패했는가│진짜 상위 중산층의 정당│‘국가의 정상화’ 세계관의 파산│민주당 집권 연합의 총체적 와해 4장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정부 총체적 정치 부재가 야기한 ‘희한한 현상’│광활한 비당파의 공간, 집권 이후엔 외면│쇠락한 안보 보수, 붕 떠 있는 시장 보수│70년대생은 ‘윤석열 극혐’, 80년대생은 ‘비판적 지지’를 했던 이유│엘리트 공무원들의 정치는 왜 ‘무능’의 늪에 빠졌나│대중정당을 지향하지만 인물·조직·이데올로기는 의문 5장 회색 코뿔소가 온다: 노인·지방·외국인 여론조사는 60대와 70대를 나눈다│급증하는 장애인, 고령화의 귀결│극심한 자산 격차 속 다층적 불평등│부유한 수도권 vs. 낙후된 지방의 균열│흔들리는 정당의 지역 기반│지역의 ‘일찍 온 미래’, 레고랜드 사태│전국 39개 읍·면·동 주민 4분의 1은 외국인│지방에선 핵심 과제이지만 중앙 정치는 ‘선거권 박탈’만 부각 6장 공동구매형 사회의 붕괴 ‘국가가 정한 대로 민간이 생산하는’ 공공재 공급 방식│‘아파트 공화국’의 물적 토대, 주거 공공재│‘문재인 케어’ 논쟁, 복지 정치의 기류 변화│디지털, 사회계약의 해체 가속화│벌어지는 생활 방식의 격차 7장 K-포퓰리즘의 어설픈 등장 순수한 민중과 부도덕한 적의 끝없는 투쟁│이준석의 성공과 좌절: 상계동·목동발發 정치의 한계│이재명이라는 탈출구, 또는 막다른 골목│정체성 정치로서 팬덤 정치, 의사 결정 불능 국면의 도래 나가며∥‘사회계약’을 새로 쓸 수 없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우가 배출한 마오주의 혁명가, 트럼프와 그의 친구들│‘정치의 복원’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주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에서 포퓰리즘 정치는 이미 주류에 편입됐다. 두 정당 모두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질적인 지지 연합을 포괄하는 의제를 설정하지 못한다는 모순에 봉착해 있다. 여기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은 ‘적’을 설정하고, 그 적을 타도하는 것만이 지지자들이 생각하는 실질적인 목표(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세계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세계관에는 순수한 민중의 의지를 대변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정당을 비롯한 다른 매개는 배제되고, 지도자와 대중은 직접 연결된다. 정치인 입장에서 자신만의 ‘군대’나 ‘영지’를 가질 수 있는 셈이다. 나라와 지역을 불문하고 포퓰리즘적 정치 행태가 계속 나타나는 이유다. 팬덤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건 정치에서 소외된 ‘뒤처진 사람들’의 분노와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수요 측면 요인과 이를 잘 활용해 특정 정치인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는 공급 측면 요인이 결합한 결과다. 팬덤 정치는 근본적으로 정체성 정치이고, 이때 미지근한 타협과 협상은 금기시된다. 따라서 정치적 양극화, 정확히는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거대 서사가 없는 고만고만한 중소 ‘부족’의 다극화된 대립이 정치의 기본 문법이 되어가고 있다. 경제와 정치가 얽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는 모양새다. _17쪽, 들어가며 경제사회적 여건의 최종 결과물이라 할 만한 출산율에서 한국과 이탈리아가 최하위권인 이유는 두 나라 모두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복지 혜택,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과 남성의 양육 불참 등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경제·사회 구조가 초저출산 국가를 만든 것이다. 사회복지학계는 선진국의 복지 체제를 크게 네 개로 나눈다. 미국·영국의 시장 중심 자유주의, 프랑스·독일 등 사회보험 중심 보수주의,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사민주의, 남유럽형 가족주의다.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스페인 폼페우파브라 대학교)이 제안한 앞 세 유형에, 마우리치오 페레라(밀라노 대학교)가 제안한 남유럽형을 더한 것이다. 한국의 복지제도는 이 네 유형 중 남유럽형, 즉 이탈리아에 가장 가깝다. 한국과 이탈리아 모두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양쪽에서 강한 이중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또 가족이 사회복지제도의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가부장제가 강하게 남아 있다는 점도 비슷하다. 서구권에서 상대적으로 경제 발전 정도가 낮았던 곳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경제가 발전하면서 복지제도가 확충됐다는 점도 한국과 비슷한 측면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몇 년간 사회보험 중심의 현금 복지가 급격히 늘었는데, 이탈리아도 고령자 대상 연금 등 소득보장 위주 제도가 중심이다. _32쪽, 1장 미국도 독일도 스웨덴도 아닌 이탈리아로의 길 오늘날 한국 정치의 기본 구조를 만든 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당계 정당이다. 지난 20년간의 보수 정치를 거칠게 축약하면 민주당계 정당이 주도한 새로운 정치 질서에 적응하고 대응하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2000년대는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노무현 시대’라 불릴 만하다”는 평가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과소평가하는 측면이 있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한국의 정치 질서는 새롭게 재구성되었으며, 당시 형성된 ‘게임의 규칙’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노무현 질서’라고 이름 붙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한국 정치가 위기에 봉착한 근본적인 원인은 기존 정치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된 데 있다. 특히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정당, 이데올로기, 정책, 지지 기반, 갈등 양상 등 정치 질서의 구성 요소가 점차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됐다. 또 정치 질서 내부의 모순도 심화되면서 더는 봉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국의 주요 정당들이 2021~2022년 선거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이유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무현 대통령 시기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_63쪽, 2장 노무현 질서의 등장과 모순 민주당 지지 연합의 등뼈 같은 역할을 했던 호남 출신 이주민과 서울에 거주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지 못한 화이트칼라의 이탈은 상당히 구조적인 정치 변동이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또 경제적 중하층이 2006~2008년에 이어 또다시 이탈한 것은 2016~2017년 선거에서 정당과 지지자들의 짝맞춤이 바뀐 재정렬realignment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경제적 중하층은 지지 정당을 몇 년에 한 번씩 바꾸는 구조적 스윙보터로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지지 연합의 주요 구성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간 데는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나아가 경기도의 선거 결과는 노무현 정부 시기 형성된 정치 질서가 더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자산과 노동시장에서 확대된 불평등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 변화, 즉 선진국 진입에 따른 결과다. 민주당의 핵심인 상위 중산층이 이전과 달리 다른 사회계층의 지지를 얻기 힘들어진 것은,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게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서울의 바깥, 즉 경기도 주민들의 민주당 이탈 메커니즘은 이를 잘 보여준다. _98쪽, 3장 촛불연합의 붕괴와 상위 중산층의 정당 민주당 2017년 폐허가 되다시피 한 보수정당이 5년 만에 재집권할 수 있었던 건 민주당이 스스로 무너졌기 때문이다. 지지 연합이 해체됐을 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중도였거나 범진보 성향이었던 이들도 튕겨 나오게 됐다. 이는 인물도 정치적 상징도 지지 기반도 빈약하던 보수 진영에게 셋 모두를 공급해주는 결과를 야기했다. 특히 검찰과 기획재정부 등 관료 기구를 청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정치 영역의 전면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게 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이데올로기, 정책, 인물, 조직 등을 갖고 있지 않았다. 노무현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상황이었지만 그 대안을 제시할 역량이 있을 리 만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정하면서 낡은 아스팔트 보수와 결별했지만, 나머지는 ‘산업화 아이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2012년께에 머물러 있었다. 정치적 무능력 속에서 보수는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다. 외연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건 익숙한 습관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아주 일찍부터 보수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대통령실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또한 제대로 된 대중정치를 할 역량, 즉 유권자를 설득하고 자신들을 지지하도록 정치적 언어를 만들어 다양한 상징과 정책을 사용하는 역량이 없음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정치 문법에서 벗어나는 일도 자주 벌어졌다. 총체적 정치 부재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로 급조된 보수정당의 지지 연합이 와해되는 결과를 낳았다. 대선 그리고 그 이상의 승리를 거둔 지방선거(2022년 6월) 이후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다. _131쪽, 4장 무능의 아이콘 윤석열 정부 2002년경 형성된 ‘노무현 질서’는 20여 년이 지난 현재 위기를 맞았다. 이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출발한 민주당 정부의 재집권 실패, 뒤이어 등장한 윤석열 정부의 무기력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상위 중산층의 행동주의에 기초한 경쟁적 민주주의와 수출 대기업의 성장을 근간으로 하되 적정 수준의 재분배 정책을 편다는 컨센서스가 더는 원활히 작동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무현 질서가 만들어질 때부터 안정적인 지지 연합을 만들 수 없다는 결함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일어나는 경제적·사회적 구조 변화들은 1960년대 산업화를 기점으로 형성된 ‘현대 한국 사회’의 작동 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특히 인구와 공간 측면에서 세 가지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고령 인구의 증가, 부유한 세계 도시 ‘대서울Greater Seoul’과 전통적 산업사회에 머무는 지방의 분리 그리고 이민자의 증가다. 세 가지 변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정치·경제·사회 각 부문 제도들이 기존에 상정한 수준을 뛰어넘는 부담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경제 구조를 변형한다. 결국 총체적인 시스템 변화가 불가피한데, 그에 따라 새로운 이해관계 충돌과 갈등이 발생한다. 이전에 형성됐던 컨센서스와 역관계의 균형점이 모두 허물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전통적인 정치적 갈등 구조나 기존 정당의 지지 연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가뜩이나 위기에 내몰린 현재의 정치 질서가 해체되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_167쪽, 5장 회색 코뿔소가 온다: 노인·지방·외국인 한국의 경제와 사회복지 시스템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공동구매’라 할 수 있다. 주택·보육·의료·교육·교통 등 공공재 성격이 강한 재화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시민들이 갹출해서 조성한다. 굳이 이걸 공동구매라고 표현한 이유는 정부가 좀처럼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민간이 공공재 생산 및 공급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한다. 돈을 낸 사람이, 낸 만큼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정부는 공공재 생산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할지 규칙을 정하고 그 제도를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제도를 도입하고 유지하는 데 행정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_201쪽, 6장 공동구매형 사회의 붕괴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은 ‘적’에 대한 규정이다. 그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이 특정 정치인 또는 정치 세력 덕분에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는 ‘적’이 그들을 체계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정부와 정치인은 엘리트나 기득권에 영합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라는 뉴질랜드제일당의 메시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야스차 뭉크(존스홉킨스 대학교)는 “대부분의 포퓰리스트들은 (…) 기존 정당의 지도자들을 배신자로 몰아붙인다”고 설명했다. “민중의 적에게 충성하며, 대다수의 운명보다 인기 없는 소수민족이나 종교적인 소수집단의 이익을 향상시키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적’에 대한 서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누구인지 규정해야만 ‘순수하고 선량한 다수’가 누구인지 도출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은 독일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한 “적과 친구의 구별”이며, 이를 통한 집합 정체성의 창조다. 포퓰리즘 정치인은 이 만들어진 정체성의 대변자를 자처하지만, 기실 ‘아我(우리)’와 ‘피아彼我(저들)’가 누구인지 해석하는 세속적 종교인에 가깝다.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는 “선악 이분법과 일반의지 관념은 인민의 동질성을 해친다고 간주되는 모든 존재에 대한 비자유주의적 공격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했다. _235쪽, 7장 K-포퓰리즘의 어설픈 등장 ‘사회계약’을 새로 쓸 수 없는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제 전환을 위한 정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더는 믿는 이들이 없는 기존 사회계약을 어떻게든 다시 써야만 할 것이다. 극한의 초저출산 국가가 된 것은 자녀 양육에 많은 부담이 가서만이 아니다. 개인이 직면한 여러 위험은 높은데, 이를 막아주는 사회는 미덥지 않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의존할 데도 없는 무규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함께 시간과 비용을 들여가며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은 사치처럼 되어버렸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참가해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안을 찾는 과정, 즉 진짜 ‘정치’의 복원이 필요하다.

저자
조귀동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만 11년 차 회사원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구조와 그 변화 과정에 대한 글을 써왔다. 현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기업 활동이 노동시장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인적자본 투자의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2020 한국의 논점』(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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