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지 420년이 되는 해이다. 환갑을 7번 지냈으니 7갑 주년이다. 이런 역사적 길목에서 이순신 장군이 두 달 만에 이룬 반전의 이야기를 출간한다. 바로 명량대첩이다. 1597년 7월 16일 조선수군은 칠천량에서 궤멸당했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 9월 16일 이순신 장군은 명량에서 일본수군을 크게 이긴다. 겨우 13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적선과 맞서 싸워 이긴 기적적 승리였다. 그 승리의 비결을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명나라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가 명 황제와 도요토미를 속이는 강화교섭이 들통나면서 시작된 정유재란으로부터 시작한다. 전쟁 중에 조선 최고의 장수가 투옥되고, 조선수군은 거의 전멸한다. 빈손의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 그 어느 누구도 이기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명량대첩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모든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라의 위기를 구한 이순신 장군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그 심정은 어떠했을까? 겨우 목숨을 구하고 백의종군 길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는 그 슬픔은 어찌했을까? 이 책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를 느낄 수 있다. 빈손의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자마자 바로 14박 16일간 호남내륙과 연안을 돌았다. 출발 때 달랑 군관 9명이 대동했을 뿐이다. 일본군 6만의 대군이 바로 가까이 있었다. 목숨을 걸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그 아픔을 함께 했다. 이순신 장군의 애민정신을 온몸으로 알게 된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는 역사적 내용에 대해서도 바로 잡았다. 일본수군 최고 맹장이 조류를 이용해서 공격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된다. 조선수군이 수중철쇄를 이용할 수 없었다는 근거를 알 수 있다. 거북선은 참전하지 않았다.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대장선의 위치가 어디였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순신장군의 근접전투는 이 책 어디에도 없다. 명량대첩의 전투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전투시작에서 승리의 순간까지 그 전개과정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짧은 영화를 보는 느낌이다. 역사기록물의 부족한 사이사이가 채워졌다. 지형지물과 조류의 흐름, 배의 형태와 전투 양상 등 여러 연구 자료를 근거로 상상이 더해졌다. 난중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활쏘기이다. 다음으로 많은 기록은 아파서 몸이 불편한 내용으로 무려 180여회에 이른다. 모진 고문을 당한 몸으로 명량전투에 임했던 이순신 장군의 아픈 기록들이 있다. 이 책은 고통을 힘으로, 슬픔을 충만으로 바꾸어 살아 온 장군의 삶의 지혜를 깊은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여는 글 추천사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프롤로그 1장 다시 시작된 전쟁, 정유재란 1 강화교섭의 꼼수 들통나다 2 이순신을 제거하라 2장 조선은 이대로 무너지는가 1 궤멸당하는 원균의 조선 수군 2 호남의 쌀을 점령하라 3장 희망의 불씨 1 빈손으로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 2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3 이길 수 있다 4장 두 달 만에 이룬 위대한 승리 1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2 우리가 무너지면 조선이 무너진다 3 기적 같은 승리, 위대한 승리 에필로그 참고문헌 및 도판 출처

P21 전쟁을 벌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땅에 한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도요토미는 거침없이 요구 조건을 말했다. 강화 교섭이 아니라 승리한 군주의 태도였다. 그는 이미 조선의 경복궁 근정전 옥좌에 앉아서 말하는 듯했다.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채 호통을 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명의 황녀를 일왕의 후비로 보내라.” “조선 8도 중 4도를 일본에 넘겨라.” “조선의 왕자와 신하 열두 명을 인질로 보내라.”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협상 조건이 아니라 명령으로 들렸다. 도저히 명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고니시는 지난겨울 동상에 걸린 엄지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자꾸 근질거렸다. 귀가 시린 겨울바람이 윙윙거리다 사라지고 칼 조각이 귀에 박힌 듯 따가웠다. P36 ‘내 목숨을 버리자. 차라리 한목숨을 버리고 나의 장수들과 병사들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의 길인 것이다.’ 이순신은 장수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장수들의 가난한 가족들이 이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족과 나라를 지키고자 이 바다에서 목숨을 걸고 전장을 버티어 내고 있는 장수들이다. 그들을 생각하자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올라왔다. 이순신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걸었다. 거북선의 노를 만져 보고 배 안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저 멀리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싸르락싸르락 몽돌을 굴린다. P49 ‘아, 어머니…….’ 가슴이 아득하고 목구멍이 먹먹해졌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밤새 시달리던 통증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순신은 엎드려 울부짖고 울부짖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에서 나온 통곡이었다. 전쟁 중에도 부모상을 당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르고, 묘소를 지키는 것이 자식의 도리였지만 죄인이 된 이순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떠나야만 하였다. 다시 백의종군 길을 가야만 하였다. 금부도사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P60 “곤장을 쳐라!” 권율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곤장을 가져왔다. 곤장 때리는 소리가 관아의 담을 타고 퍼졌다. 원균은 아픔을 참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호령하던 많은 장졸 앞에서 곤장을 맞다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처참하였다. 멀리 함경도부터 남해까지 전투를 치르면서 장수로서 자부심이 컸기에 더더욱 그러하였다. 원균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반성보다는 분함이 앞섰다. 깨문 어금니가 잇몸 속으로 깊이 박히는 듯하였다. 삼도 수군통제사로서의 체통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P89 이순신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입은 다물었지만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들이마시는 숨은 폐를 깊게 돌다 나왔다. 참혹한 전쟁터가 보였다. 많은 병사가 다치고 쓰러졌다. 상처를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울부짖다 고꾸라진 병사가 보였다. 어느 병사는 어머니를 외치다 쓰러지기도 했다. 일본 병사들이 칼을 치켜들고 있었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나가 나라의 치욕을 씻어라.” 어머니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의연하게 울리고 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래, 백성이다.’ 이순신은 벌떡 일어났다. “가자! 전라도로.” P94 믿었던 수군의 전멸 소식은 생각보다 빠르게 백성들에게 퍼져 있었다.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이 전라도를 뒤덮었다. 서로 부축하고, 이고 지고 가는 피난민들을 만났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이순신은 말에서 내렸다. 쓰러진 노인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우자, 깜짝 놀란 며느리와 할머니가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누구도 이순신인지 몰랐다. “힘내십시오!” 이순신의 목소리는 초가을에 벼를 익히는 햇빛처럼 노인의 귓속에 울렸다. 이순신이 전라도를 돌고 있다는 소문은 파발마보다도 빠르게 퍼졌다. P98 일본군은 남원성 전투에서 승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빗나갔다. 남원성의 전투 병력은 고작 4천여 명이었다. 일본군은 반나절이나 하루면 될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런데 무려 6만여 명의 대군으로 공격하였는데도 함락하는 데 4일이나 걸린 것이다. 전사한 일본 병사도 많지만 부상자는 훨씬 많았다. ...... 결국 일본 수군도 전주성 공격을 함께하기로 하였다. 남원성 전투로 일본군의 수륙 병진 전략은 미루어지게 되었다. 그만큼 이순신은 시간을 벌었다. P111 이순신은 벽파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올랐다. 군관 송희립은 묵묵히 뒤를 지켰다. 이순신은 명량 해협이 시작되는 지점을 쳐다보았다. 빠른 물살은 바닷속 바위를 휘돌면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흐르고 있었다.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해서 울돌목이라 이름 지어졌다는 것은 오래전에 알았다. 판옥선 13척이 포구 안으로 밀려드는 파도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전라 우수사 김억추가 판옥선 한 척을 가져와서 총 13척이 되었다. 그는 격군과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배만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 한 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순신은 잘 알고 있다. ‘장군! 열세 척으로 이 싸움은 불가하옵니다.’ 송희립은 이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P113 우수영은 13척의 조선 수군을 맞았다. 명량 대첩 바로 전날이다. 이순신은 장졸들을 우수영 마당에 집결시켰다. 이제 전투는 눈앞에 다가왔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았다. 거듭되는 훈련과 몇 차례 전투로 처음 칠천량에서 도망 나올 때의 두려움을 떨쳐 낸 병사들이다. 가족을 잃고 복수하겠다고 꼭 싸우게 해 달라고 졸랐던 열다섯 살 칠복이도 눈에 띄었다. 발을 절뚝이지만 노를 젓겠다고 나선 영태는 눈을 또렷이 뜨고 이순신 장군을 바라보았다. 전라 우수사 김억추의 눈가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순신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P140 대장선은 벽파진을 지나면서도 도망가는 적을 향해 맹렬히 포격을 가하였다. 이순신은 고개를 돌려 벽파진을 바라보았다. 바로 어제 철수한 우리 수군의 진영이었다. 이렇게 승리할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하지 못했다. 거친 물살을 견디며 버텨 낸 격군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새까맣게 밀려드는 일본 수군들을 보면서도 겁내지 않고 싸운 병사들이 우러러보였다. 변함없이 따르고 받쳐준 군관들이 고마웠다. 이순신은 저 멀리 꽁무니를 빼며 도망가는 일본 전선들을 보았다. 승리를 확신하며 장졸들을 보면서 칼을 높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