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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한국사,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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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역사학
출판사/발행일 푸른역사 / 2022.12.30
페이지 수 420 page
ISBN 9791156122425
상품코드 356704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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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을 내면서 제1장 우리 생활 속 인삼 이야기 01_진짜 인삼의 대명사, 고려인삼 02_심마니는 어떻게 살았을까? 03_약재 전문시장 약령시와 인삼 04_건강을 담는 약장, 건강을 비는 인삼 제2장 동아시아를 연결한 인삼로드 01_인삼, 한ㆍ중ㆍ일의 길을 열다 02_영조의 건공탕과 인삼 03_정조, 홍삼 무역의 벼리를 잡다 04_〈오엽정가〉와 ‘종삼’ 기록 05_19세기 포삼 무역, 국가 재원의 우물이 되다 06_황해 상의 홍삼ㆍ백삼 밀무역 제3장 광저우로 모여든 고려인삼 01_인삼, 베이징에서 광저우로 02_서양으로 수출된 고려인삼, 중국으로 수입된 미국 인삼 03_베트남 민 망 황제의 인삼 사랑 04_천주교 선교사와 고려인삼 05_화교상인 허필제의 표류와 고려홍삼 제4장 조선 무역의 아이콘, 홍삼 01_밀려오는 서양 물건과 고려홍삼 02_대한제국 광무개혁 성패의 변수, 홍삼 03_내장원의 홍삼정책,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04_근대 동아시아 무역 네트워크 속 상인과 홍삼 무역 1 05_근대 동아시아 무역 네트워크 속 상인과 홍삼 무역 2 제5장 근대 유럽에 심은 조선 이미지, 인삼 01_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과 한국 유물의 목록 02_영국인의 조선 여행과 인삼 인식 03_러시아 《한국지》와 세로셰프스키가 본 고려인삼 04_오스트리아ㆍ헝가리의 고려인삼 이미지 05_스웨덴 슈텐 베리만과 인삼 제6장 조선 인삼, 미국 인삼 01_미국도 조선 인삼을 시험 재배하려 했다 02_미국 총영사 보고서에 담긴 홍콩의 인삼 시장과 고려인삼 03_시카고 박람회에 출품된 고려인삼 제7장 식민지 조선, 고려인삼의 상징성 01_식민지와 조선의 고려인삼 02_식민권력이 만든 개성의 인삼 사진 03_일제강점기 홍삼 전매와 개성 백삼 04_고려인삼 자본, 신진 엘리트를 키워 내다 05_금산의 백삼산업 성장과 고려인삼의 과학적 증명 제8장 전매제에서 민영화까지 01_해방공간, 인삼의 희망과 애환 02_인삼, 한국전쟁의 고비를 넘다 03_제3공화국 경제개발계획과 홍삼 수출 04_인삼, 100년 만의 민영화 참고문헌 사진 및 그림 출처 주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백제의 것을 중히 여기는데 생김새가 가늘지만 단단하며 희다. 기운과 맛이 상당군 것보다 담박하다. 다음으로 고구려 인삼을 쓴다. 고구려 인삼은 곧 요동 인삼이다. 생김새가 크지만 알차지 못하고 부드러워 백제 인삼만 못하다(22쪽). 숲 우거진 응달 낙엽 우거진 대관령/ 세 치 크기 보습에 흰 나무 자루 끼워/ 간단한 차림 호표虎豹인 듯 험한 곳 마다치 않아/ 이따금 낭떠러지에서 귀한 목숨 잃는다네/ 몰래 다니다가 도리어 관리에게 들키면/ 풀 속으로 숨기를 놀란 사슴같이 하는데도/ 광주리 털고 움막집까지 찾아 멋대로 뒤지며/ 아내와 아들까지 묶어 모진 매질한다네(33쪽).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를 외친 뒤 산삼 옆에 마대를 꽂고 주위에 산삼이 더 있는지 잰다. 그 이후 “소망 보시오” 하면 휴식을 하고 있던 다른 심마니도 산삼을 잰다. 채삼은 어인마니가 도와준다. 채삼을 하기 전에는 산삼을 향해 세 번 반을 절한다. 첫 번째는 산삼을 본 것에 대한 감사를 담아, 두 번째는 산삼의 나이가 심마니 나이보다 많기를 희망하면서, 세 번째는 좋은 산삼이기를 바라면서, 세 번째 반은 산신에게 올리는 절이라고 한다(38쪽). 일본에서는 조선 인삼을 사들여 오기 위해 인삼대왕고은人蔘代往古銀이라는 순도 80퍼센트의 특주은特鑄銀을 만들었다(64쪽). 18세기에는 나라 안에서 약용으로 쓸 인삼도 얻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에 조선 정부는 1738년(영조 14) 인삼의 채취와 판매 일체를 호조가 통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삼절목禁蔘節目〉을 반포했다. 호조가 삼상蔘商에게 인삼 매매를 허가하는 황첩黃帖을 발급하고 그것을 소지한 자에 한하여 인삼 생산지에 들어가 매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69쪽). 늦어도 18세기 초반에는 재배가 시작되어, 18세기 중반 이후 삼남 지방으로 확대되었고, 18세기 후반에는 강계 지방에도 삼포蔘圃가 권장될 정도로 성행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는 숙종(1675~1720) 때 현재의 화순 지역인 전라도 동복현의 한 여인이 산삼의 씨를 받아 밭에서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는 《중경지中京誌》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70쪽). 조선에서는 17세기 이전부터 크고 작은 인삼을 혼합해 끓여 말리는 방법을 썼는데, 이렇게 가공한 것을 파삼把蔘이라고 했다. 조선에서는 양각삼洋角蔘이라 하여 몸체는 작으나 색깔이 희고 품질이 좋은 자연삼을 선호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파삼을 선호했다. 그런데 인삼 재배가 시작되면서, 생삼 건조는 끓여 말리는 방식에서 쪄서 말리는 증조蒸造 방식이 일반화되었다(72쪽). 영조의 건강을 지켜 주는 약이 있었다. 바로 건공탕建功湯이었다. …… 1758년(영조 34) 영조는 자신의 병에 차도가 있자, “이것은 이중탕의 공이다. 이중탕을 이중건공탕理中建功湯이라 하겠다”고 했다. 영조의 나이 65세 때였다. 이중건공탕은 인삼, 백출, 말린 생강, 감초를 달인 이중탕에 인삼 두 돈쭝과 좁쌀을 넣어 마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건공建功’, 즉 영조의 건강을 지키는 공신 같은 약의 핵심 재료는 바로 산삼이었다(74쪽). 역관과 상인에게 18세기 모자 무역은 원금에 25퍼센트 정도의 이윤이 보장되는 조선 제일의 수입 무역이었다. 그러나 모자 수입은 “땅에서 캐는 귀한 은화를 가지고 가서, 천 년을 지나도 헐지 않는 은화를 가지고, 삼동三冬을 쓰고 나면 내버리는 물품으로 바꾸는 어리석은 짓”이며, …… “금을 연못에 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해결책은 …… 사행의 팔포를 형편에 따라 은화나 인삼으로 바꿔서 채우도록 했던 전례를 활용하되, 산삼이 아니라 가삼으로 채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83쪽). 정민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가삼 무역과 모자의 판매권을 화성으로 이주하는 서울 부자에게 주자고 했다. 또한 …… 장사 밑천을 빌려 주어 무역하게 하되, 이자를 받아 화성 수리 비용으로 충당하자고도 했다. 당대 갑부를 만들어 줄 대표 상품이 모자와 가삼이었던 것이다. 이 계획은 수원으로 이주한 한양의 부실호富實戶 20호에게 미삼계尾蔘契를 조직토록 하여 인삼 판매상의 특권을 주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85쪽). 강화영江華營이 1만 근, 송영松營 3,000근, 옹진영甕津營이 2,000근에 해당하는 포삼세를 나누어 받게 했다. 1869년(고종 6) 6월에는 관세청에서 동래부와 충청수영에 각각 5,000냥씩 나누어 보내 왜인 접대와 군수 비용에 쓰도록 했다. 같은 해 9월에는 삼군부의 요청으로 황해도 초도진 이현포에 매년 2,000냥을 떼어 주고 해상 방어를 위한 군비로 사용하게 했다. 또한 12월에는 평안도 후창에 고을을 만들기 위해 의주부 관세청에 있는 운현궁 별획전別劃錢을 사용한다고 결정되기도 했다. 관세청에는 대원군이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재원도 있었던 것이다(105쪽). 의주부와 개성부는 불법을 보호해 주는 대신 합안세, 즉 눈감아 주는 세와 같은 사세私稅를 받았다. 암묵적으로 홍삼 밀조와 밀무역을 묵인했던 것이다(108쪽). 1860년대부터는 이양선과의 홍삼 밀무역도 등장했다. …… 이양선에 중국 남부 지역과 유구국琉球國의 배와 선원들도 있긴 했다. …… 1866년(고종 3) 1월 홍화서, 정석인, 박면철, 이인순 등이 이양선과 몰래 내통하여 홍삼을 밀거래하다가 붙들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임금이 전교했다. ……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사회의 풍속이 무너진 것이 어찌 이처럼 극에 달했단 말인가!(《승정원일기》 고종 3년 1월 25일) …… 황해감사는 서양 배와 접촉하는 이유는 “첫째도 홍삼이요, 둘째도 홍삼 때문이다”라고 할 만큼 서양 배와의 홍삼 밀거래 사실을 확신했다(119쪽). 자르뚜의 서간문은 1714년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에 〈달단 인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이 기록이 캐나다 몬트리올 근처의 프랑스 선교단 라피토Josep Francois Lafitau 신부는 …… 서간집에 그려진 인삼 스케치를 원주민인 모호크족 인디언에게 보여 주었다. 인디언들은 신부를 대동하여 산으로 가서 그 실물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아메리카 인삼panax quinquefolium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시초였다(133쪽). 개혁적이고 정력적인 민 망 황제에게는 여인들이 많았다. 모두 142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아들이 78명 딸이 64명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항상 인삼이 있었다. 특히 고려인삼에 대한 그의 욕구는 남달랐다고 한다(138쪽). 민 망 황제는 1830년 베이징으로 가는 베트남 사신에게 인삼을 얻기 위한 기발한 거래 방법을 제시했다. 베이징에 도착하는 날, 청나라 예부에 우리나라는 인삼이 극히 부족하다 하고, 그들에게 청나라 황실이 주는 회사품의 절반 가격을 쳐서 우리에게 관동 인삼을 달라고 요구하라(《대남식록》)(141쪽). 베르뇌 신부가 만주 교구의 베롤 신부에게 보낸 1865년(고종 2) 12월 10일 서한에는 인삼 작은 것 한 상자를 보낸 사실이 적혀 있다. 광둥 주교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고려홍삼이 아편전쟁 이후 홍콩, 상하이 등지에서 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베르뇌가 광둥 주교에게 보내는 선물 목록에 포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147쪽). 진무영은 서울 방비를 위해 강화도에 설치한 군영이었다. 대원군은 의주부 관세청에서 거두는 포삼세 중 10만 냥 정도를 매년 진무영 경비로 활용하도록 했다. 진무영 전체 예산이 12만 냥 정도였으므로, 진무영 경비의 83퍼센트 정도를 포삼세에서 충당한 셈이다. 포삼세는 강화뿐만 아니라 개성과 옹진의 군비 확충을 위해서도 활용되었는데, 이를 위해 조선 정부는 홍삼 무역량을 늘리기까지 했다(159쪽). 1898년 6월에는 궁내부 내장사 업무에 삼정이 추가되었다. …… 그해 가을 내장사장 이용익은 국왕의 특지를 가지고 개성에 내려가 홍삼 생산을 장악하려 했다. 하지만 이용익이 피신해야 할 정도로 개성 사람들의 저항은 격심했다. 개성의 삼포 주인들은 삼업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인삼 종자를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 이용익은 서울의 진위대를 개성에 파견하여 군대의 보호 아래 개성에서 홍삼 제조를 마쳤다(175쪽). 담걸생은 홍삼 밀수출과 연관되어 있었다. 1893년 위안스카이의 막료이자 중국 영사로 대우받던 탕사오이唐紹儀가 홍삼 밀수를 감행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일본 거류민이 발행한 한 신문에서는 “탕사오이가 무려 2만 원에 이르는 홍삼 사재기를 하는 데 중국 상인들이 나섰다. 탕사오이는 한양호를 타고 용산에서 제물포로 갔는데……”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 중 용산에서 제물포로 옮겨 간 ‘한양호’는 담걸생이 투자하여 운영하던 선박이었다(196쪽). 대한제국 시기 근대적 기계 도입을 통한 평양 탄광 개발에 직접 나선 주인공은 홍삼 전매권을 쥐고 있던 내장원이었다. …… 대한제국은 경의철도 부설과 철도가 통과하는 평양의 탄광 개발을 프랑스와 연계하여 시행하고자 했다. …… 철도 부설권, 평양 탄광 개발 그리고 홍삼 판매권 수입을 담보로 하는 차관 교섭이 프랑스와 진행되었다(205쪽). 나는 이제 개성을 유명하게 만든 장본인이며 개성의 주요한 재원인 상품, 즉 인삼을 말해야겠다. ‘파낙스 진셍panax Ginseng’ 또는 ‘퀸퀴폴리아quinquefolia’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인삼은 그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극동 지역에 며칠간 머물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뿌리와 그것의 효험에 대한 극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영국 약전에 있는 어떤 약도 극동에서의 인삼의 평판을 따라잡을 수 없다(226쪽). 미국 인삼은 1776년 독립 이후에도 중국 시장을 겨냥한 대표적 교역품이었다. 그러나 1880년대 야생 인삼의 고갈이 예견되면서,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들은 미국 재배인삼도 “생김새만 좋다면” 중국에서 야생 인삼보다 가격이 높다고 시장 상황을 보고하였다(255쪽). 포크의 여행은 …… 무역상의 이익 및 해군과 군비와 관련된 정보 수집의 일환이었다. 특히 개성 방문은 조선 인삼의 산업적 측면에 착안하여 인삼 농부들로부터 인삼농장의 이모저모, 연차별 경작 상황과 재배법, 가공시설 및 가공법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듣고 정리한 일종의 벤치마킹 보고서였다. …… 1898년 알렌은 포크의 보고서를 …… 본국으로 보고했다. 그런데 1898년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농업연구소가 인삼 재배 실험에 착수한 바로 그해였다(264쪽). 조선제약 합자회사는 1916년 창업한 회사로 스도큐 자에몬이 대표였다. 현재 서울 중구 소공동에 본점이 있었고 …… 주력 상품은 ‘조선 순 인삼 정뇌’였다. 1918년 광고에서는 이 약을 “동양 유일의 영약 조선 인삼을 당사 단독의 특별한 전출법煎出法에 의해 십수 시간을 끓여서, 인삼의 정밀하고 영험한 성분을 완전히 뽑아 냈다”고 소개하고 있다(294쪽). 1916년 백삼 전문 상인 최익모는 개성인삼상회를 설립했는데, …… 백삼 허리에 ‘고려인삼高麗人蔘’이라고 쓴 금띠를 감싸서 위엄 있어 보이도록 했다. 백삼을 담는 상자에도 특별히 신경을 썼다. 찬란한 종이상자에 오색이 영롱한 라벨을 붙여 담았다. …… 자기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딴 ‘익益자 표 개성인삼’을 등록상표로 만들어 신뢰감이 들게 했다. 또한 그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판매 방식이었던 통신판매를 시작했다. 그는 알기 쉽고도 기발한 광고 문구를 만들어서 신문과 권위 있는 잡지에 연속적으로 발표했다. …… 소식지 개성인삼상회 《상보商報》를 발행하여 광고의 효과를 배가시켰다(322쪽). 최선익崔善益(1904~?)은 개성의 인삼 자본을 기반으로 근대 기업가로 성공한 후 《조선일보》ㆍ《조선중앙일보》에 투자한 청년 문화사업가이다(327쪽). 1935년 금산 인삼 판매기관으로 금산인삼사가 창립되었고, 1939년에는 금산산업조합이 설립되었다. ……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특약점을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에 1935년 판매 실적고는 20만 원(약 26억 9,900만 원)을 돌파했고, 1939년에는 칭다오에도 전라북도 공식 특산물로 수출했다(336쪽). 미군이 1945년 9월 8일 서울에 진주했다. 엿새 뒤인 9월 14일, 38선에 먼저 도착해 있던 소련군이 전매국 개성출장소의 홍삼 창고를 약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6ㆍ25 이전까지 전매국은 약 10만 근의 홍삼 재고분을 서울과 지방의 전매국 창고로 옮겼다. 매년 홍삼 평균 생산량이 4만 근을 넘지 않은 수준임을 고려하면, 소련군의 약탈 당시 창고에 있던 홍삼은 엄청난 양이었고, 약탈된 홍삼 수량도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352쪽).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줄곧 미쓰이물산에 홍삼 판매독점권을 부여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홍삼 판매에 대한 중국 내 유통 조직과 경험 및 재력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에 1948년 12월 3일 정부는 관민 공동 출자의 조합을 신설해 홍삼 수출을 관리통제하려 했다. …… 1949년 홍삼 판매권은 태창직물회사의 백낙승 사장이 설립한 대한문화선전사에 돌아갔다(354쪽). 전매 사업이 국고 수입의 3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무부 산하의 국局으로는 사업을 책임 운영하기 어려워 전매국을 독립 청廳으로 승격시켰다. …… 같은 해 전매국 개성출장소는 전시 중임에도 충청남도 부여로 자리를 옮기고, 직제 변경에 따라 전매청 직할 개성전매지청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이듬해인 1952년에는 신문을 통해 인삼 경작시험에 성공했음을 알렸다(358쪽). 전매 당국은 부여에서의 인삼 시험재배를 위한 개성 인삼 종자 확보를 목적으로 특공대를 투입했다. 명칭은 ‘삼종蔘種 회수 특공대’였다. 특파된 사람은 전매청 개성지청 주사 박춘택, 박유진 그리고 인삼 상인 3명이었고, 목적지는 인삼 종자가 다량으로 보관되어 있다는 첩보에 따라 개풍군 망포로 결정되었다(362쪽). 홍삼 수출과 관련해서는 당시 북한과 일본산 유사품이 해외시장에 돌아다닌다는 점을 지적하고, 외화 획득을 위해서는 우량 홍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안에 홍삼 공장 보강계획이 포함되어 있으며, 1964년에 홍삼 5만 5,000근 생산, 연간 250만 달러 외화 획득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도 수립해 놓고 있었다(369쪽). 1973년 ‘세계로 뻗어 가는 한국의 인삼’이라는 광고는 당시 한국 정부와 사회가 홍삼 수출에 거는 기대를 잘 나타내는 동시에 …… 여기에는 앞서 말한 고려인삼제품주식회사뿐만 아니라 롯데물산, 일화제약 등 한국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제약회사명이 보이기 때문이다(376쪽). 1995년부터는 홍삼판매권 지정제도가 폐지되었고, 이듬해에는 홍삼과 백삼 수출은 신고제로 완화되었다. 이어 1996년 7월 인삼산업법이 공표되고, 1997년 한국담배인삼공사가 상법상 주식회사로 전환되었다. 바로 이때를 홍삼 전매제도의 폐지와 민영화시대의 개막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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