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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성의 중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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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역사학
저자 박인성
출판사/발행일 한울 / 2023.05.25
페이지 수 480 page
ISBN 9788946082601
상품코드 356746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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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중공 역사의 격랑 속에 얽히고설킨 열정과 헌신, 음모와 모함의 파노라마! 머리말과 맺음말, 18개 장으로 구성한 이 책은 1921년 중공 창당부터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최근 시기까지를 다루었다. 1장에서는 중공 창당과 토지혁명전쟁, 그리고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 중심으로 정리했다. 특히, ‘도시혁명 전략’의 좌절, 징강산 촌혁명 근거지 건설, 장정, 시안사변, 토지혁명투쟁의 진행 과정과 그 실상 등을 정리했다. 2장에서는 일제 패망 후에, 중공이 국민당과 대륙의 정권을 놓고 벌인 제2차 국공내전, 즉 ‘해방전쟁’의 승세를 결정한 ‘3대 전투’인 랴오닝·션양 전투, 화이하이 전투, 베이핑·톈진 전투에 대해 고찰·정리했다. 3장에서는 ‘해방전쟁’에서 연이은 승리와 함께 대두된 도시접관 과정과 그에 따른 중공의 도시정책의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행된 ‘쑤쿠’운동과 토지혁명투쟁에 대해 정리했다. 4장에서는 ‘사회주의 신중국’, 중화인민공화국 출범과 토지혁명투쟁의 실상 등을 정리했다. 5장에서는 소위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 발발 후 마오쩌동이 조선 출병을 결정하기까지 고뇌하는 과정과 펑더화이가 지원군 총사령관으로 결정되는 과정, 그리고 마오쩌동의 아들 마오안잉의 참전과 전사를 포함한 전쟁의 경과 등에 대해 정리했다. 6장에서는 ‘대약진’ 추진 배경과 대실패의 이유와 그것이 초래한 결과로서 대기근 참상 관련 내용 등을 정리했다. 7장에서는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동이 펑더화이를 ‘반혁명’, ‘우파분자 두목’, ‘소련 첩자’ 등으로 몰아서 숙청하는 과정을 정리했다. 8장에서는 펑더화이와 린뱌오의 대조되는 성품과 개성, 인생행로를 정리했다. 9장에서는 1962년에 개최된 이른바 ‘7000인 대회’의 개최 배경과 이 대회에서 린뱌오가 마오쩌동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도한 행동과 그 후 린뱌오의 권력 획득 과정 등을 ‘문혁’ 추진 전 단계에서 마오와 린뱌오 간의 합작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했다. 10장에서는 마오쩌동이 기획·연출한 이른바 ‘문화대혁명’ 10년 대동란의 발동 배경과 진행 상황 등을 정리했다. 11장에서는 홍위병 용도 폐기에 이어 자신도 토사구팽 당할 기미를 눈치챈 린뱌오의 쿠데타 기도 경과와 실패 후 국외 탈출 과정에서 아내 예췬과 아들 린리궈와 함께 타고 가던 비행기가 몽골 초원에 추락하는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1971년 ‘9·13 사건’의 경위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12장에서는 린뱌오의 쿠데타 기도에 충격을 받은 마오쩌동의 심경 변화로 인해 장시성(江西省)에 하방되어 노동개조 생활을 하던 덩샤오핑이 복권된 후, 대약진과 문혁으로 인해 형성·누적된 문제들에 대해 활발하게 조정 작업을 추진했으나, 다시 숙청·가택연금 당하게 되는 과정을 정리했다. 13장에서는 ‘공군정치가무단’ 단원 출신 멍진윈의 회고를 통해서 그녀가 14세 때에 중난하이 댄스파티에서 마오를 만난 후 1975년 5월부터 마오의 생활비서가 되어 마오가 죽기까지 489일간 말년의 마오의 일상생활을 신변에서 지켜본 이야기를 정리했다. 14장에서는 마오쩌동이 죽은 후에 화궈펑과 왕동싱, 예젠잉의 합작으로 진행된 ‘4인방’ 제압 과정과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주의 개혁파가 ‘진리표준 논쟁’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서 화궈펑과 왕동싱을 중심으로 하는 ‘범시파’를 제압·축출하는 사상투쟁 과정을 정리했다. 15장에서는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주의 개혁파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후, 중공 11기 3중전회(1978년)에서 대내 개혁과 대외 개방을 선언하고 후속 조치를 진행하는 과정을 ‘신민주주의 노선의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고, 안후이성 샤오강촌 생산대에서 ‘농촌 농업개혁’의 시작이 된 ‘호별 도급생산’을 추진한 배경과 과정을 정리했다. 16장에서는 개혁·개방이 농촌과 농업에서 도시와 상공업 부문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경제특구로 대표되는 하향식 모델과 쑤난지구의 ‘집체 향진기업’과 원저우의 사영기업 발전모델로 대표되는 상향식 모델의 추진 과정을 정리했다. 17장에서는 중공과 중국정부가 ‘중국특색 모델’ 또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탐색 및 형성해 온 맥락과 ‘신특구’인 ‘종합연계개혁시험구’, 신형도시화, 신상태, 그리고 일대일로 등 최근에 중국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정책의 흐름과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18장에서는 이른바 ‘문화대혁명’ 시기에 중학생이었던 노(老)홍위병들이 50대, 60대 나이가 된 이후 언론매체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자신들이 과거 ‘문혁’ 시기에 저지른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사죄한 이야기 중심으로 정리했다.
목차
제1장 중국공산당 창당, 토지혁명전쟁 제2장 제2차 국공내전, 3대 전투 승리 제3장 도시접관(接管)과 쑤쿠(訴苦) 제4장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토지혁명투쟁의 실상 제5장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 제6장 대약진 대실패, 공상 사회주의의 좌절 제7장 1959년 루산회의, 펑더화이 숙청 제8장 펑더화이와 린뱌오 제9장 7000인 대회, 린뱌오의 도박 제10장 문화대혁명, 10년 대동란 제11장 홍위병 용도 폐기, 린뱌오의 죽음 제12장 덩샤오핑의 복권과 재실각 제13장 마오쩌동의 말년과 죽음 제14장 4인방 제압, 진리표준 논쟁 제15장 개혁·개방, 신민주주의 단계로 복귀 제16장 도시개혁, 하향식과 상향식 모델 제17장 신특구, 신형도시화, 신상태, 일대일로 제18장 노(老)홍위병의 반성과 사과
본문중에서
펑더화이가 누구인가?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에 중공 지원군 총사령관으로서, 압록강 변까지 밀고 올라온 미군과 국방군을 다시 서울 남쪽으로 밀어붙이고 결국 정전협정을 이끌어낸 후 개선장군으로 베이징으로 귀국한 사람이다. 그 후 국방부 부장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59년 장시성(江西省) 루산(盧山)에서 마오쩌동(毛澤東)에게 ‘대약진운동’ 중에 발생한 문제점을 직언한 후 ‘우파 반혁명 집단 두목’, ‘소련 첩자’로 몰려서 숙청당했다. 그리고 1966년, 이른바 ‘문화대혁명’ 발발 후에는 전담 조사조(專案組)와 홍위병들에게 심문과 학대, 폭행을 당하다 1974년 11월 29일, 구금 상태로 베이징의 군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은 후 심신이 파괴된 상태로 죽었다. _7쪽 「펑더화이 자술」은, 이른바 ‘문화대혁명’이 발발한 후에 펑더화이가 한편으로는 홍위병들에 의해 공개 비판대회에 끌려 나가 학대와 폭행을 당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짜 맞추기 의도를 갖고 심문을 진행한 전담 조사조의 강압적 요구에 따라 백지 위에 수차례 작성했던 진술서 내용을 ‘문혁’이 끝난 후 펑더화이의 명예가 회복된 후에 출간한 책이었다. 따라서 (대부분 전기류 책의 내용과는 달리) 그 내용에 한 치의 미화나 과장 같은 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니 중공 내부의 실제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매우 좋은 자료일 것이었다. _7~8쪽 중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는 혁명을 위해 열정, 헌신, 희생을 바친 이들이 많았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그 같은 역사 격랑 속에서 권력의 단맛만 빨고 좇으면서 동지들의 열정과 희생의 결과를 독차지한 이들, 동물적인 권력 본능과 감각으로 부화뇌동, 심지어 배신, 모함까지 한 부류들까지 함께 뒤얽혀 있다. 역사 기록은 끝까지 살아남은 승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중공 당사(?史)에서도 진하게 감지된다. 필자는 중국 내 자료들 안에서 혁명과 권력투쟁과 얽히고설킨 인간들과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 자기 검열에 길들여진 듯한 이야기들을 냉정하게 보고자 노력했다. 그 내용 범위와 대상 시기는 1921년 중공 창당 이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그리고 1978년 개혁·개방 이후 최근 시기까지로 했다. _9쪽 필자는 마오쩌동이 이른바 ‘문화대혁명’이라 작명한 음모를 기획·발동한 이유와 동기를, 자신이 밀어붙인 ‘대약진운동’이 대실패하면서 초래된 경제 파탄과 대기근의 책임으로 인해 자신의 당내 권력 기반을 위협받게 되었기 때문이라 보았다. 그리고 ‘문혁’ 발동을 위한 사전공작으로 린뱌오(林彪)와 연합하여 군부의 실력자인 국방부장 펑화이를 제거했다고 본다. 이후 마오는 ‘문혁’을 발동하고, 홍위병을 선동하여 자신의 독재체제 구축에 장애가 될 인물들을 차례대로 숙청·제거한 후 당을 자신의 사당(私黨)으로 전락시켰다. 또한, 1949년 정권 출범 당시에 마오가 스스로 채택했고 폐기했던 소위 ‘신민주주의 단계’가 마오가 죽은 후,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사회주의 초급 단계’, ‘시장 사회주의’ 등의 명칭으로 부활되었다고 본다. _9~10쪽 마오쩌동은 탁월한 전략가였으나, 동시에 고집과 오기가 매우 강했다. 자신의 과오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고, 또한 복수심이 매우 강했다. 단, 마오의 행동 전략은 자신의 권력 기반이 얼마나 공고한가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즉, 자신의 권력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고 느낄 경우에는 상당한 정도로 양보와 타협도 했다. 그의 사상과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군중노선’과 ‘실사구시’는 그 같은 실천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마오의 성격 특성과 본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는 1959년 여름 장시성 루산에서 개최된 중공중앙정치국 확대회의(1959.7.2∼8.1) 이후였다. 마오는 이 회의에서 대약진에 대해 비판 의견을 제출한 펑더화이를 숙청했다. 짐작컨대 그 이유와 동기는 대약진운동과 합작화, 인민공사 운동으로 인한 부작용과 그에 따른 경제정책 실패와 대기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가 어렵고, 자신의 당내 권위와 권력이 흔들리고 위협받고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_187쪽 한편 린뱌오는 류샤오치의 1월 27일 대회 보고 발언 중 곁눈질로 은밀하게 마오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마오가 류샤오치, 덩샤오핑 등의 발언 내용에 대해 불만스럽게 느끼는 기색을 감지했다. 또한 이어진 마오의 발언을 들으면서 그가 자기 입으로는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마오는 “구상의 방향과 틀은 옳았다. 다만, 일련의 구체적이고 적합한 정책과 방침이 부족했다. 이것은 경험 부족 때문이며 동시에 하층 간부들이 과장, 허위 보고하고 중앙을 속였기 때문이다”라고 발언하고 싶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린뱌오는 바로 이 순간이 정치적으로 투기할 절호의 기회임을 직감했다. 류샤오치 이후 발언자들의 발언 후에 린뱌오가 단상에 올라가 발언을 시작했다. _233쪽 문화대혁명에 대한 책임과 비난은 응당 전적으로 마오쩌동의 몫이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의 중국 연구자들 중에서도 이 점에 대해서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 내 연구자들에 대해서는 공식 검열 외에도 자기검열까지 거쳐야 하는 체제 내에서 당할 수 있는 위험을 피하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아직까지도 문혁과 관련하여 무언가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거라는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듯한 표현과 발언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_236쪽 한편, 홍위병 청년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농산촌 하방과 상산하향 운동의 실제 진행 과정은, 마오쩌동을 포함한 중공중앙의 간부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진행되었다. 문혁의 중견 세력이던 이들 지식 청년(知?) 홍위병들이 내륙지구와 변방지구 농촌 기층 단위로 하방된 후에 그곳 인민들의 열악한 상황과 생활조건 속에서 공산당의 추상적인 혁명 이데올로기 구호들이 구체적 실천 층차에서는 매우 거칠고 설익은 것이어서 실제에 적용할 수 없는 매우 공허한 것이라는, 즉 기층의 실제 실천 과정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체득·확인하게 되면서 한때 왕성하게 타올랐던 정열이 식고 환상이 깨지는 체험과 각성을 하게 된다. _265쪽 마오쩌동은 1975년 4월 18일,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김일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 말을 한 지 약 1년 5개월 만에 사망했다) “현재 저우언라이 총리도 캉셩과 류보청 동지도 모두 병상에 있습니다. 나는 올해 82세이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다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배석한 덩샤오핑을 가리키며) 정치에 대해서는 저 사람과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는 어떻게 전투를 치를지, 또 어떻게 수정주의에 맞서 싸울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홍위병들에게 숙청당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복권되었습니다.” _292~293쪽 1978년 말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 결정은 지난 세기 사회주의 진영 국가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양대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또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 11년 뒤인 1989년에 발생한 ‘베를린장벽 붕괴’이다. 소련과 동유럽권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공산당 정권 몰락의 시작을 예고한 베를린장벽 붕괴와 중공의 개혁·개방 결정은, 지령성 계획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혁과 개방을 추구한 중국공산당과, 제때에 선택과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파국을 맞은 소련 및 동유럽권 국가 공산당 정권의 대조적인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중공이 홍보 차원에서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실천 과정에서 노출된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인정하고, 적시에 개혁과 개방을 추구한 중공과 그렇게 하지 못했던 소공(蘇共)과 동유럽권 공산당 정권이 겪은 결과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_346~347쪽 천샤오루가 2013년 8월 20일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위해 마음속의 짐을 스스로 털어버리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인터넷에 게시했다. 당시 그의 나이 67세였다. “나는 문혁 시기에 베이징 8중학(北京八中) 학생 지도자(?袖)와 학교 혁명위원회 주임 역할을 한 자로서 당시에 비판대회(批斗)에 끌려 나가고, 노동개조를 당한 학교 당위원회 서기와 교장선생님, 동학(同?),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분들에게 직접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_438쪽

저자
박인성
중국 저장(浙江) 대학 토지관리학과 교수, 중국 저장 대학 중한부동산연구소 소장, 중국경제지리연구회 이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 '중국 건설 산업의 현황과 진출전략'(공저)2007, '중국의 도시계획 및 도시개발체제 연구'(공저)2004, '현대중국의 이해'(공저)2002, '중국경제지리론'(공저)2000 이 있다.
   중국의 토지정책과 북한 | 박인성 | 한울아카데미
   중국 부동산 이해 | 박인성 | 부연사
   중국의 토지정책과 북한 | 박인성 | 한울아카데미
   중국경제지리론 | 박인성 | 한울아카데미
   중국경제지리론 | 박인성 |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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