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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 : 과거급제부터 은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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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조선시대
저자 권기환
출판사/발행일 인물과사상사 / 2022.04.29
페이지 수 268 page
ISBN 9788959066315
상품코드 35470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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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신의 직장’,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세계 과연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어떻게 일했을까? ★ 사극 속 양반들은 몇 급 공무원일까? ★ 시험 천재 이이는 왜 선배들의 미움을 샀을까? ★ 명재상 황희는 왜 탐관오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을까? ★ 조선시대 공무원들은 ‘워라밸’이 가능했을까? ★ 조선시대에도 ‘김영란법’, ‘인사청문회’가 있었다는데 사실일까? ★ 조선의 공무원들은 왜 목숨을 내놓고 일해야 했을까?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희구하는 이들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고 있지 않다. 장기적인 고용 불안으로 인해 취준생이 아닌 대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높은 선호도와 경쟁률을 자랑하는 직업이 바로 ‘공무원’이다. 물론 공무원이 인기 직종으로 각광받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놀랍게도 조선시대에는 공무원이 지금보다 더 높은 인기와 경쟁률을 자랑했다. 조선의 양반들은 양반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영원히 양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4대조 내에 최소 말단직인 종9품직에라도 제수되어야 양반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직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양반들에게 과거 준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의 존속을 위한 생존 전략의 문제였다. 우리가 ‘양반’이라고 부르는, 사극에서 왕을 보필하며 정책을 토론하던 사람들이 바로 과거시험에 통과해 공무원이 된 이들이다. 많은 사람이 조선의 양반 하면 떠올리는 이이, 이황, 유성룡, 정약용, 김정희 등도 과거시험을 통해 등용되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크게 정기시험과 부정기시험으로 나뉘었는데, 정기시험인 식년시는 3년마다 열렸으며 최종 합격 정원은 33명에 불과했다. 장원급제라고 하면 이 33명 중에서 1등을 가리킨다. 과거제는 공정한 절차에 따라 고급 인재를 선발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국가고시와 대학입학시험으로 그 명칭만 바뀌었을 뿐 기본 취지는 그대로 유지되어오고 있다. 오늘날의 고시제도가 수많은 ‘고시 낭인’을 양산했듯이, 조선시대에도 많은 ‘과거 낭인’이 있었다. 양반가 자제들은 보통 5세가 되면 『천자문』을 깨치는 것을 시작으로 평균 30년간 과거 준비에 매달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합격의 영광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500년이라는 조선 역사상 과거에 합격한 사람은 약 1만 5,000명에 불과했음이 이를 방증한다. 그 때문에 응시생들은 어떻게든 과거시험에 합격하고자 옷소매나 콧속에 커닝 페이퍼를 숨겨 시험장에 들어간다든가 하는 부정행위를 저지르거나, 시험관에게 뇌물을 주고 답안지를 조작하곤 했다. 때로는 시험장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잘할 수 있는 이를 고용하기도 했다. 경쟁률이 높아질수록 과거시험장은 온갖 비리로 얼룩졌다. 그러자 나라에서는 공정한 선발을 위해 응시생의 필적을 알아볼 수 없게끔 답안지를 옮겨 써 채점하거나 응시생의 자격 요건을 꼼꼼히 따지는 등 방안을 마련했으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가까스로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면신례’라고 불리는 신참 신고식을 치러야만 ‘진짜 관리’로 인정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으며, 부모를 욕보이는 등 선배들의 온갖 수모를 50일 동안 이겨내야 했다는 점이다. 이이도 면신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향했을 정도로 고생했으며, 정약용 또한 선배들에게 밉보일까 자신의 행동을 구구절절 해명하는 서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힘겹게 공무원이 된 이들 중 일부는 초심을 잃고, 민심을 배반하고 비리를 저지르기도 했다. 돈에 눈이 먼 관리들은 가난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 자신들의 곳간을 채워나갔다. 세종 대의 명재상으로 이름난 황희도 청탁의 대가로 뇌물을 받곤 했는데 그 때문에 ‘황금 대사헌’이라는 멸칭을 얻게 되었다. 지금과 달리 조선의 공무원들은 70세까지 일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소원은 70세에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이었다. 정쟁이 빈번했던 당시에는 4명 중에 1명이 귀양 갔을 만큼 정년을 채우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워 나라에서는 정년퇴임을 하는 관료에게 상을 내려줄 정도였다.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단순히 조선시대 관료체제를 서술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직 공무원의 예리한 시선으로 공직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운영되어 조선 사회를 떠받치고 있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청백리와 탐관오리를 가르는 결정적 한 방 공직자가 지향해야 할 올바른 자세란 무엇인가? 조선왕조에서 민주주의국가로 정체(政體)가 달라졌을 뿐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정책 결정은 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효경』에서는 “천자에게 직언하는 신하 일곱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천하를 잃지 않는다. 제후에게 직언하는 신하가 다섯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나라를 잃지 않는다. 대부에게 직언하는 가신 셋이 있으면 비록 자신이 무도하더라도 집안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가 하면, 『춘추좌전』에서는 “나라의 쇠퇴는 공직자의 부적절한 행위 때문이며 공직자가 덕을 잃는 것은 [윗사람의] 총애와 뇌물을 탐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즉 옛사람들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공직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조선의 왕들은 덕치주의와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왕도정치를 구현하려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직자가 청렴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고 처벌만으로는 관리들의 비리를 척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청백리 선발 제도를 두어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고자 했다. 물론 관리들의 비행을 바로잡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조선 사회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만큼은 여실히 보여준다. 율곡 이이가 자기가 아닌 남을 위한 자리가 벼슬아치라고 한 것도, 정약용이 공직자의 교본으로 평가받는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수령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덕의 바탕이다”라고 한 것도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산물일 것이다. 연일 권력에 편승해 비리를 일삼는 정치인들과 고위공무원들의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이때에 이 책은 멸사봉공의 정신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직자로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신념과 본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목차
머리말 1장 - 양반, 그들은 누구인가? 조선에서 양반으로 살아가기 양반의 탄생 【양반과 사대부, 무엇이 다를까?】 2장 - 과거급제를 위해 책벌레로 살아가다 식을 줄 모르는 학습 열기 기초교육의 산실, 서당 서울과 지방의 중등교육기관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 조선시대 소문난 공부법 【과거계의 일타 강사】 3장 - 공무원을 어떻게 뽑았을까? 과거제의 역사 능력보다 가문이 더 중요한 세상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은 사람들】 등골이 휘는 과거 준비 과거시험의 관문을 통과하라! 조선의 별별 시험들 목숨이 왔다 갔다 한 답안지 작성 선접꾼과 거벽과 사수, 조선의 커닝 시스템 어사화를 쓰고 금의환향하다! 【과거시험의 귀재들】 4장 - 조선의 통치 시스템 정1품부터 종9품까지, 조선의 관직 조선의 핵심 행정기관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 청요직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관료들의 기 싸움】 조선의 고위공무원, 당상관 백성을 수탈하면서 시작하는 지방관 생활 【가성비가 뛰어난 제도, 암행어사】 5장 - 조선 공무원 탐구 생활 이이와 정약용도 피하지 못한 신고식, 면신례 조선의 관료를 위한 업무 매뉴얼 살아남기 위한 꾸준한 자기개발 황희에게 오점을 남긴 조선시대 ‘김영란법’ 귀양살이까지 이어진 빈부격차 70세, 은퇴하기 딱 좋은 나이 【유배지에서 꽃피운 문학】 참고 문헌
본문중에서
문제는 양반은 법적 절차를 통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 관습을 통해서 형성된 계층이기 때문에 양반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상대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양반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진짜 양반’으로 인정받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회적으로 양반 가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가까운 친척 중에 관직자가 있거나, 최소한 생원진사시 합격자라도 있어야만 했습니다. 과거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자는 양반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사회 풍조가 팽배했다고 합니다. (「양반의 탄생」, 18쪽) 성균관 유생들은 예비 관료로서 국가정책에 간접 참여했으며, 특히 유학 이념에 어긋나는 정책이나 부적절한 관리 임용 등이 이뤄지면 자신들이 직접 유학 이념을 수호하는 감시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성균관의 상소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내용이라도 임금이 직접 답변을 내리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성균관 유생들은 비록 공부하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왕이나 대신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특별한 위상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당쟁으로 양반 사회의 균열이 발생한 이후에는 성균관 유생들도 출신과 지역에 따라 움직이는 등 소규모 권당과 공관이 자주 발생했다고 합니다.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 성균관」, 60~61쪽) 과거제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능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방법을 제도화한 것이 바로 과거시험입니다. (「과거제의 역사」, 77쪽) 예나 지금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2021년 인크루트가 공무원시험 준비생 1,0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 달에 드는 수험 비용이 약 18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최근 5급 공채시험 합격자들은 평균 나이 26.8세에 평균 38.5개월의 수험 생활을 보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합격자의 나이와 시험 준비 기간만을 본다면 조선시대 양반들이 훨씬 길고 힘들었습니다. 과거 합격자들은 대부분 30대 중반이었고 50세를 훌쩍 넘는 경우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등골이 휘는 과거 준비」, 88쪽) 조선 중기로 들어서면서부터 과거시험은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유생 혼자서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팀을 구성하는 ‘접接’이 탄생한 것입니다. 접은 최소 단위가 3명이었습니다. 먼저 과거 출제판 앞자리를 잡기 위한 자리싸움의 선봉을 맡은 선접꾼이 있었는데, 덩치가 좋고 날쌘 사람들이었습니다. (중략) 며칠 밤을 새워 자리를 잡고 있다가 시험 당일 아침에 문이 열리면 미친 듯이 시험장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이때 다른 선접꾼과 몸싸움을 벌이곤 했는데 이를 쟁접이라고 합니다. (중략) 격렬한 몸싸움 끝에 선접꾼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면 뒤따라오던 사수와 거벽이 답안지를 작성했습니다. 거벽은 대리 시험자였고, 사수는 예쁜 필체로 글씨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즉 선접꾼이 좋은 자리를 잡고 거벽이 문제를 풀고 사수가 답안지를 작성하는 환상의 팀플레이였습니다. (「선접꾼과 거벽과 사수, 조선의 커닝 시스템」, 128~130쪽) 이처럼 업무 성격이 유사한 삼사는 협력 관계이면서도 긴장 관계였습니다. 상호 견제가 지나칠 때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서로의 공격이 두려워서라도 모든 것을 원칙대로 처리하려 했으니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자리, 청요직」, 167쪽) 현재의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정부의 정책 결정 및 관리에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실·국장급 공무원을 범정부적 차원에서 활용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1,500여 명의 중앙 부처 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이 고위공무원단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5급 공채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더라도 보통 20년은 지나야 고위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로 치면 당상관이 비슷한 관직입니다. 정3품 이상의 당상관에게는 임금과 함께 국정을 논의하고 핵심 관서의 책임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조선의 고위공무원, 당상관」, 176쪽) 면신례는 문과에 급제한 최고 엘리트 집단에서 시작된 일종의 험난한 통과의례였습니다. 여기에는 특권층이 되기 위한 좁은 문을 통과했다는 것과 장차 국가를 이끌 엘리트들이 결속을 다진다는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가혹한 통과의례를 통해 위계질서를 다잡고 동료 이식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면신례 날에는 친목을 다지는 계가 결성되는데, 그림 그리는 사람을 불러 그날 잔치 모습(계회)을 그리게 한 후 참석자 명단이나 서문과 발문을 포함한 내용을 기입해 각자 계회도 한 장씩 나눠 가지는 풍습인 ‘분급’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이와 정약용도 피하지 못한 신고식, 면신례」, 213쪽) 현재 중앙 부처 공무원의 공식적인 근무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물론 바쁠 때에는 초과근무도 자주 하고, 심지어 밤샘 근무를 할 때도 심심찮게 있습니다. 사정에 따라서 출퇴근 시간을 약간 조정하는 탄력 근무제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의 공무원들은 지금보다 더 일찍 출근했습니다. 게다가 조회가 있는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고 하니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출근 전쟁을 치렀을 것입니다. 실제로 근무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거나 딴청을 부리며 시간을 대충 때우고, 결근하면 회초리를 맞아야 했는데도 결근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평상시에는 묘시(오전 5~7시)에, 겨울에는 진시(오전 7~9시)에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출근부인 공좌부에 서명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공좌부에 기록되는 출근 일수는 근무 성적 평가와 승진에 반영되었습니다. (「조선의 관료를 위한 업무 매뉴얼」, 217쪽) 조선을 통틀어 기로소에 들어간 사람은 700여 명이었습니다. 그중 최고령은 98세의 윤경과 97세의 이구원이었습니다. 임금들도 기로소에 들어갔는데, 70세가 되지 않아도 입소할 수 있었습니다. 태조는 60세에, 영조와 고종은 51세에 기로소에 들어갔습니다. 조선의 관리들은 퇴직 후에 기로소에 입소하는 것을 개인과 가문의 큰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70세, 은퇴하기 딱 좋은 나이」, 255쪽)

저자
권기환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으며 2005년 제49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현재 감사원에서 일하고 있다. 감사 분야에서 10년 넘게 일한 전문가로서 평소 감사제도의 발전과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역사 속 공무원의 공직 생활에 흥미가 있다. 지은 책으로는 『공공감사, 알고 싶은 77가지 이야기』, 『진짜 암행어사,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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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공무원은 어떻게 살았을까?(큰글자책) | 권기환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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