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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과 왕릉 : 조선 국왕의 사후 상징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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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조선시대
저자 장경희
출판사/발행일 현암사 / 2022.05.25
페이지 수 384 page
ISBN 9788932320977
상품코드 35475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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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왕실의 연속성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는 상징 코드 조선 시대 국왕의 상장례(喪葬禮)는 유교적 예법에 대한 고증을 거쳐 조선 초기에 정리되었다. 국장 절차와 왕릉에 대한 조성 과정 등은 국가 전례서를 범본으로 삼아 조선 시대 내내 대체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 책에서는 국장과 왕릉에서의 의례 절차에서 국왕의 몸, 사후 육신에 주목한다. 곧 국왕의 죽음에 걸맞은 흉례 절차에 따라 소용되는 각종 물품들의 종별과 세부 요소 및 그것들이 갖는 의미와 상징성을 밝힌다. 조선 왕실의 흉례와 관련된 기물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내내 시대적 변화의 진폭이 크지 않아 대단히 보수적이고 전형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국장과 왕릉 관련 기물의 형식이나 조형이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왕실의 연속성을 영원히 기억토록 하는 상징 코드가 작동한 것이다. 국왕의 사후에는 예서에 정해진 대로 국왕의 시신을 닦거나 감싸거나 입히거나 담거나 덮거나 장식하였는데, 이러한 물품들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각적 대상물이어서, 국가는 그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통제함으로써 국왕의 권위와 왕실의 위엄을 시각화하려 했다. 재료의 품질이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최고 품질의 천이나 실, 나무나 못, 칠이나 안료 등까지 규정대로 확인하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재료가 준비되고 도구나 시설이 마련되면 그것을 능숙한 솜씨로 구현할 수 있는 장인이나 화가가 규정된 크기나 형태 및 문양으로 기물을 제작했다. 초상(初喪)과 인산(因山), 그리고 왕릉 왕이 승하한 후 3일부터 5일까지 이뤄지는 염습(殮襲) 과정은 시신의 몸을 감싸는 습(襲), 소렴(小斂), 대렴(大斂)의 세 단계로 이뤄진다. 이 염습 절차는 이승에서 분리된 시신이 저승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대렴이 끝나고 승하한 왕의 육신(체백)을 왕릉으로 옮기기까지 5개월간 왕의 관(재궁)을 모시는 곳은, 사대부가에서 ‘빈청’이나 ‘빈소’라고 부르는 것과 차별하여 빈전(殯殿)이라 불렀다. 빈전은 왕이 생전에 거처하던 궁궐 내 편전에 설치했다. 입관하기 전에 국왕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재궁에 얼음을 채우기도 했으며, 재궁에는 이틀에 한 번씩 30회, 두 달간 옻칠을 했다. 옻칠을 하면 방충ㆍ방부ㆍ방습에 탁월해 국왕의 시신은 훼손되지 않고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재궁을 칠하는 자리는 후대 왕이 동참하여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인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궁궐에 머물던 국왕의 체백을 왕릉이 있는 산으로 모시는 것을 인산(因山)이라 부른다. 이때 국왕은 비록 시신이지만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고하고 먼 길을 떠나게 된다. 국왕의 몸을 실은 가마는 수백 명이 4교대로 메고 그 길을 가야 했다. 그리고 죽은 국왕이지만 그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제대로 호위하기 위해 누가 어디에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왜 서 있는지를 미리 그림(발인반차도)으로 확인했다. 풍수에 따라 명당이 정해지면 국왕이 영원히 누울 현궁(玄宮), 즉 지하 궁전을 마련했다. 이승에서 국왕이 누렸던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뒤 저승에서도 국왕으로서 권위와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지하 궁전을 꾸민다는 관념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래서 그곳에 국왕이 평소 읽었던 서책과 더불어 사후 세계에서도 여전히 국왕으로서 제향을 받을 수 있도록 제기를 들여놓았고, 음악을 향유하도록 악기를 만들고 국왕의 권위를 지킬 무기를 만들어 함께 두었다. 이것들은 크기가 작은 명기(明器)로 만들었지만, 이렇게 갖춰놓음으로써 지하 궁전에서 국왕이 국왕으로서의 권위를 영원히 누릴 수 있다고 여겼다. 이 밖에도 장명등을 만들어 구천을 떠돌던 국왕의 혼령이 왕릉에 있는 자신의 체백을 찾아올 때 길을 잃지 않도록 소상 때까지 불을 밝혔고, 이렇게 찾아온 국왕의 영혼이 쉬고 뛰어놀 수 있도록 혼유석(魂遊石)을 배치했다. 또한 멀리서도 지하 궁전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석망주(石望柱)를 좌우에 세웠다. 국왕의 혼령과 체백이 머무는 곳에 국왕을 모시는 신하가 없을 수 없다. 왕이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신하들의 호위를 받도록 문무석인(文武石人)을 배치하였다. 또한 석양(石羊)ㆍ석호(石虎) 등 석수(石獸)가 왕릉을 둘러싸게 했다. 이러한 여러 물품이나 조형물은 죽은 국왕이 살아생전의 국왕과 다름없이 국왕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을 유지하게 만드는 시각적인 장치의 완성이었다.
목차
책을 내며 머리말 1장 국장과 왕릉의 전통 1. 조선까지 이어진 통일신라의 능묘 제도 2. 조선 왕릉의 원형이 되는 고려 왕릉 3. 조선 태조의 4대 선조릉 조성 2장 국왕의 승하와 초상(初喪) 1. 혼을 부르는 복(復) 2. 시신을 씻기는 목욕(沐浴) 3. 새 옷 아홉 벌을 입히는 습(襲) 4. 열아홉 벌의 옷을 입히는 소렴(小殮) 5. 음식을 드리는 반함(飯含) 6. 아흔 벌로 보공을 채우는 대렴(大斂) 7. 얼음을 설치하는 설빙(設氷) 3장 빈전(殯殿) 설치와 재궁(梓宮) 제작 1. 편전에 빈전을 설치하다 2. 내외 재궁의 제작 3. 찬궁에 재궁을 안치하다 4. 재궁에 덧칠하는 치벽(治?) 4장 인산(因山), 백성들로 인해(人海)를 이루다 1. 발인(發靷), 반차도(班次圖)를 그리다 2. 길의장, 생시처럼 장엄하다 3. 국왕의 상징인 책보와 함께하다 4. 흉의장으로 국왕의 체백을 호위하다 5. 대여(大轝)에 올라 궁을 떠나다 5장 현궁(玄宮)을 만들고 산처럼 쌓다 1. 명당(明堂)을 찾아내다 2. 왕릉에 지하 궁전을 만들다 3. 현궁에 체백을 모신 재궁을 묻다 4. 생시처럼 사용할 명기(明器)를 넣다 6장 석물, 국왕의 체백을 지키다 1. 비석, 국왕을 기억하고 존재를 알리다 2. 석망주, 혼령이 왕릉을 찾아오게 하다 3. 장명등, 영원히 불을 밝히다 4. 혼유석, 국왕의 혼이 뛰놀게 하다 5. 석양과 석호, 국왕 곁을 지키다 6. 문무석인, 죽어서도 국왕의 명을 받들다 맺음말 참고 문헌
본문중에서
죽음에서는 국왕이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한 나라를 다스리느라 애쓴 그에게 조선 왕조는 조금 특별한 대접을 해주었다. 그의 죽음을 ‘승하(昇遐)’라고 부르고, 죽은 국왕의 몸은 시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체백(體魄)’이라 부르며, 주검이 놓인 관곽은 ‘재궁(梓宮)’이라 부르며 차등을 두기도 했다. - 13쪽 국상(國喪)은 국가의 큰 슬픔이란 의미에서 국휼(國恤)이라고도 불렀다. 국장 중 국왕의 경우는 대상(大喪)으로, 왕비의 경우는 내상(內喪)으로 구분하였다. 왕세자와 세자빈은 예장(禮葬)으로 등급을 낮춰 불렀고, 왕세자는 소상(小喪)으로, 왕세자빈은 소내상(小內喪)으로 구분하였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황제가 되었지만 나라를 잃은 뒤 치러진 고종 황제와 순종 황제의 장례는 일제에 의해 격하되어 어장(御葬)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왕실의 신분에 따라 의식의 명칭이 달라지듯이 격식이나 의물도 차이를 두어 구별하였다. - 83쪽 국왕이 즉위하면 곧바로 여러 개의 재궁을 수기(壽器)로서 만들었으며, 이후 재위 기간 내내 해마다 옻칠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게 생전에 미리 관을 짜두면 장수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시신에 입힐 수의를 미리 만들어두면 오래 산다는 민간 속설과 마찬가지이다. - 137쪽 인산일에 발인할 때 각종 의장물 중 국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의물은 책보(冊寶)이다. 대행왕의 혼을 모신 신연 앞에는 세자로 책봉될 때, 국왕으로서 존숭을 받을 때, 특히 승하하고 시호를 받을 때 받은 시책(諡冊)과 시보(諡寶)를 함께 실은 채여를 앞세웠다. - 187쪽 조선 시대에 임금이 즉위하자마자 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임무는 선왕의 장례를 치르는 일이었다. 국왕으로서 대행왕의 시신이 영원히 묻힐 왕릉을 5개월간 조영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가 있었던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절제하여 국왕의 국장을 치르려는 유교적인 명분은 돌아가신 부모를 살아생전과 다름없이 극진하게 모시려는 인정(人情)이나 왕실의 위엄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과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었다. - 227쪽 현궁은 승하한 국왕의 시신을 모신 내재궁(內梓宮)과 외재궁(外梓宮)을 영원히 안치하는 지하 궁전이다. 조선 초기에는 현궁을 석실로 조성하여 문종의 현릉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세조의 유언에 따라 예종은 기존처럼 석실로 현궁을 만들자는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세조의 광릉을 회격(灰隔)으로 바꾸도록 한 이후에는 그대로 따랐다. - 239쪽 조선 왕릉에 모신 망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상징물이 바로 비석이다. 조선 시대 왕릉 앞에 세운 비석은 신도비(神道碑)와 표석(表石)으로 구분된다. 신도비는 비주(碑主)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하여 능에 이르는 입구에 세우는 비석이다. 표석은 왕릉에 모신 피장자가 누구인지 ‘묘호’와 ‘능호’를 간략하게 기록하여 피장자의 명복을 기리고 생전 삶을 기억하는 보조 수단이다. - 289 조선은 유교적 질서를 중요하게 여겨, 망자를 모신 능묘의 석물조차 신분적 차서에 따라 형태와 크기를 구분하여 법제화하였다. 왕과 왕비의 왕릉을 비롯하여 세자와 세자빈의 원, 그리고 대군 이하 왕실과 관련된 인물들의 분묘에 설치된 석물의 종별 수량 및 규격 등을 철저하게 규제하였다. - 327쪽 조선 후기에 왕릉의 석물을 재활용한 것은 왕릉 조성이 겹쳐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들어서는 국가적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아 왕릉의 석물을 재활용한다고 하였지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있었던 시기여서 왕권이 위축된 결과였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373쪽

저자
장경희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를 나오고 같은 대학의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치고, 1999년 「조선왕조 왕실가례용 공예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조선왕릉에 대한 여러 편의 논문과 저서를 낸 바 있다. 대표적인 논문으로는 1999년 「朝鮮後期 ‘凶禮’都監의 匠人 硏究」를 비롯하여 「조선후기 산릉도감의 장인 연구」, 「조선 태조비 神懿王后 齊陵 연구」, 「조선후기 왕릉 정자각 내부 의물 연구」, 「조선후기 혼전 조성 목수 연구」, 「고종황제의 금곡홍릉 연구」 , 「대한제국 홍릉 침전 내부의 공예품 연구」, 「순명비 순명효황후의 생애와 유릉 연구」 등 다수가 있다. 그리고 북한에 소재한 고려왕릉을 정리하여 『고려왕릉』(2008), 『고려왕릉』(2013 개정판)을 출판한 바 있으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주관한 『조선왕릉 석물조각사(Ⅰ)』, 『조선왕릉 석물조각사(Ⅱ)』의 집필에도 참여하는 등 고려왕릉이나 조선왕릉에 대한 다양한 연구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2000년부터 문화재청의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상근 문화재전문위원으로 근무하였고, 2003년부터 현재는 한서대학교 문하재보존학과 교수이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소장이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비롯하여 충청남도, 서울특별시, 대전직할시, 세종특별자치시의 문화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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