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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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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조선시대
저자 황태연
출판사/발행일 한국문화사 / 2023.02.28
페이지 수 486 page
ISBN 9791169191012
상품코드 356689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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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머리말 이 책 『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은 2-3개월 앞서 나온 『한국 금속활자의 실크로드』의 자매편으로 집필된 것이다. 필자는 앞서 나온 책을 쓰는 과정에서 구텐베르크의 한국 금속활자 모방설을 대변하는 학자들이든, ‘구텐베르크 발명설’을 옹호하는 학자들이든 모두 다 조선에서의 ‘출판혁명’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의 금속활자 발명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구텐베르크 모방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조차도 예외 없이 다 조선에 ‘출판혁명’이 없었다고 확언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국내의 몇몇 석학과 석두들도 이들을 추종했다. 이 때문에 저런 허언을 분쇄할 필요가 절실했다. 이 『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은 바로 출판혁명은 오히려 조선에서 일어난 반면, 서양에는 없었다는 사실史實을 입증함으로써 저 허언을 분쇄하기 위해 집필된 것이다. 앞서 나온 『한국 금속활자의 실크로드』에서는 지금까지 160여 년 동안 제기된 15건의 구텐베르크의 한국 금속활자 모방설을 분석한 뒤 그 약점들을 보완하는 한편, 한국 금속활자의 서천설西遷說을 부정하고 구텐베르크 발명설을 옹호하는 5건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해체시켰다. 그리고 이어서 서천루트를 육상루트와 해상루트로 대별하고 이전에 다른 학자들에 의해 언급된 2개의 루트 외에 4개의 루트를 더 발굴해 모두 6개의 서천루트를 제시했다. 구텐베르크발명설 옹호론자들은 모방설 대변자들이 구텐베르크 시대나 이후에 한국 금속활자의 서천에 대해 기술한 단 한 건의 ‘문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추정’만 했다고 소리 높여 반박한다. 이 때문에 필자는 구텐베르크 시대에 바로 이어지는 16-17세기에 구텐베르크에 의한 극동 금속활자 모방을 당연한 사실로 밝히거나 기록한 5건의 문서기록을 문서증거로 제시했다. 이 중 두 건은 파울루스 조비우스(1546)와 후앙 멘도자(1565)의 기록으로서 토마스 카터, 전존훈, 장수민 등이 이미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르루아(1576), 프란시스 베이컨(1626), 미셸 보디에(1626)의 기록 등 나머지 세 건은 그간 아무도 모르게 묻혀있던 것으로서 필자가 최근 수년 사이에 발굴해낸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바로 앞서 마지막으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활판술의 기술적 문제점과 한계를 분석해 유럽 출판혁명은 불가능했다는 사실과, 이로 인해 필연적으로 책값은 450년간 고공행진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금속활자 인쇄 초기 60년 동안의 출판서적 책종의 총수를 유럽 1개국과 조선 간에 비교함으로써 조선의 출판능력이 유럽에 대해 압도적 우위에 있었음을 오인할 수 없는 사실史實로 증명했다. 이 『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은 먼저 유교국가 조선이 국가이념상 필연적으로 ‘학교로서의 국가’이자 ‘출판사로서의 국가’임을 논증한다. 그리고 이 ‘학교국가·출판사국가’ 조선은 필연적으로 출판혁명을 요청했고, 그 대답이 금속활자 활판술과 이것에 기초한 ‘활인活印·번각飜刻 시스템’의 구축이었음을 입증한다. 목판인쇄술의 고유한 장점은 같은 책의 ‘대량생산’이고, 활판인쇄술의 고유한 장점은 여러 책들을 연달아 재再조판해서 부단히 찍어내는 ‘다多책종 생산’이다. 본론에서 상론하는 바와 같이 기존의 활자인쇄본 책을 본떠 목판을 ‘번각’하는 것은 개판開板 목판에 비해 많은 노동과 시간을 절약해준다. 목판 개판으로 책을 찍으려면 시간과 공비工費가 번각의 경우보다 수십 배 더 든다. 이 개판목판의 경우에는 글씨를 잘 쓰는 명필이 저자의 초서체 원고를 탈초脫抄하며 한지에 정서正書로 필사하고 각수가 이 정서된 한지 낱장을 차례로 받아 목판에 뒤집어 붙이고 뒤집어져 보이는 글자들을 그대로 새기는 식으로 작업해야 한다. 따라서 목판본 서적의 제작 시에는 제일먼저 정서할 명필을 구해야 하고 또 이 명필의 정서·필사작업에 상당히 많은 시간과 공비를 들여야 한다. 또 각수가 명필의 느린 정서 속도에 맞춰 각판해야 하므로 각수를 한 명밖에 쓸 수 없다. 그리하여 명필 1인이 하루 6페이지를 정서하고 각수가 정서하는 족족 각판한다고 하더라도 240페이지짜리 원고의 목판제작도 두 달 이상 걸린다. 그러나 한번 목판을 제작하면 100년 이상 쓸 수 있어 이 기간 동안 수많은 책을 찍어 내는 대량생산의 특장特長이 있다. 반면, ‘번각’은 이와 다른 공정을 밟는다. 일단 금속활자로 책을 100-200부 정도 활인活印하고(활자로 인쇄하고) 이 활인된 책을 전국 팔도의 감영에 내려 보낸 뒤 이 책을 찍은 금속활자 조판을 해판解版해서 바로 다른 책을 재再조판하는 식으로 계속 다양한 책종을 생산해내는 활자 고유의 특장特長, 즉 다책종 생산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한다. 완영完營(전주감영)·영영嶺營(대구감영)·기영箕營(평양감영) 등 팔도감영은 중앙에서 내려온 활인본活印本 서적을 바로 목판에 새겨 그대로 복제한다. 이 활인본 책을 해체해 얻은 낱장들을 수십 개의 목판에 뒤집어 물풀로 붙이고 수십 명의 각수刻手들을 투입해 각수만큼 많은 목판에다 거꾸로 비치는 낱장의 글씨를 그대로 새긴다. 노련한 각수 1인이 하루에 4개의 목판(4페이지)을 새긴다고 할 때 30명의 각수를 쓰면 240페이지짜리 책을 각판하는 공정은 단 이틀 만에 완료된다. 여러 사료에는 보통 30명에서 60명의 각수를 투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번각목판도 개판목판처럼 100여 년 이상 쓸 수 있어 같은 책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조선의 이 ‘활인·번각 시스템’은 금속활자의 특장(다책종 생산)과 목판술의 특장(대량생산)을 결합한다. 조선을 ‘책의 나라’, 중국인들이 부른 ‘문헌지방文獻之邦’으로 격상시킨 것은 바로 이 활인·번각 시스템이었다. ‘활인·번각 시스템’은 네 가지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금속활자들을 원고의 글자대로 짜 맞춘 조판組版 틀로 100-200부 활인한 뒤, 재판·삼판·사판 인쇄나 그 이상의 인쇄는 번각으로 넘기고 기존의 조판들을 바로 해판解版해 재再확보된 활자들을 가지고 다른 책을 바로 재再조판할 수 있으므로 여러 종류의 책을 연달아 조판·활인하는 활판술 본연의 특장(다책종 생산)을 그대로 살리는 이점이다. 두 번째 이점은 사용한 활자들을 반복해서 재사용할 수 있으므로 주자鑄字의 양을 결정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자漢字활자의 경우에도 10만여 개, 많아야 30만여 개 활자만 주자하면 어떤 거질巨帙의 한문서적이라도 다 찍어낼 수 있다. 또 세 번째 이점은 금속활자 활인본 책을 번각할 경우에 정서正書작업이 필요 없고 여러 명의 각수가 여러 개의 목판을 동시에 새김으로써 각판刻板시간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점이다. 넷째 이점은 번각목판의 대량생산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활인·번각 시스템에서는 최초 활인본의 일부를 대궐 장서고나 교서관, 규장각, 기타 중앙부처에 나눠 소장했다. 이 때문에 궐내 장서藏書는 거의 다 금속활자로 찍은 활인본이었다. 그래서 『누판고鏤板考』에서 서유구徐有?는 궐내 장서의 “태반이 활판본이고, 대추나무에 새긴 것은 단지 열의 하나, 백의 하나일 따름”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궐내 장서는 90-99%가 활인본이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자금성 장서고(도서관)와 기타 부속전각에 소장된 서적의 99%가 목판본이었던 청대 중국의 대궐 장서와 정반대되는 양상이다. 한편, 구텐베르크 활판술은 이런 활인·번각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서 수요 소진으로 책이 절판될 때까지 조판을 해판할 수 없었고 1-4년 동안 수백 장의 조판을 그대로 창고에 보관해 두어야 했다. 이로 인해 활판인쇄술의 고유한 특장(다책종 생산)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런 까닭에 1-2년 안에 새 책을 인쇄하려면 다시 엄청난 양의 활자를 추가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연간 겨우 4-5권의 책을 낸 15세기 말엽 서양의 한 출판사는 680만 개의 활자를 보유해야 했다. 이러니 구텐베르크식 인쇄술은 ‘출판혁명’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서양의 ‘구텐베르크발명론자들’이 연호連呼하는 ‘구텐베르크혁명’이라는 것은 없었다. ‘구텐베르크발명론자들’은 19세기말에야 ‘지형紙型·연판鉛版 시스템’의 발명으로 일어난 출판혁명을 과거로 역逆투영해 ‘구텐베르크혁명’으로 둔갑시키는 오류로 범하고 있다. ‘지형·연판 시스템’은 조선의 활인·번각 시스템과 등가적인 기능을 하면서 이것을 능가할 발전잠재력을 가진 공법이었다. 그리하여 구텐베르크식 활판인쇄소는 1890년대-1900년대에 ‘지형·연판 시스템’이 발명되어 완벽해질 때까지 유럽의 필사본 생산업자와 목판본 인쇄소를 제압하지 못했다. 음식점에 비유하자면, ‘구텐베르크 음식점’은 19세기 말까지 유럽에서 모든 서구인의 입맛을 극적으로 사로잡은 문전성시 ‘진미집’이 아니라, 그 맛을 알아주는 사람도 어쩌다 들르는 한적한 ‘별미집’으로 유럽의 이 도시, 저 도시에 드문드문 산재했을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19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30쪽밖에 안 되는 싸구려 소설책의 책값도 농업노동자 월급의 3분의 1을 상회했던 것이다. 반면, 19세기 조선의 철학책 『대학』은 농업노동자 월수입의 22분의 1에 불과했고, 또 다른 철학책 『중용』은 15분의 1에 불과했다. 19세기 프랑스의 30쪽짜리 싸구려 소설책과 비슷한 조선과 대한제국의 싸구려 소설 ‘딱지본’ 또는 ‘육전소설’은 1890년경 농업노동자 월수입의 75분의 1도 안 되었다. 이것은 ‘다책종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조선 금속활자 활판술의 활인·번각 시스템과, 이것으로 일으킨 ‘출판혁명’ 덕택이었다. 조선 유교국가는 ‘출판사로서의 국가’였지만 결코 활자주조와 출판을 독점하지 않았다. 조선정부는 ‘문헌지방’이라는 명성에 대한 자부심을 ‘책이 많은 나라’와 ‘독서·출판·서적거래 자유의 나라’라는 의미로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대 조선정부는 금속활자의 사주私鑄와 목활자의 사제私製를 자유로이 방임했고, 또 때로는 이 사주 금속활자와 사제 목활자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사가나 사인은 사주·사제 활자를 정부에 빌려 주는 식으로 직접 지원하기도 하고, 개인 출판사들은 모자라는 학교교재를 공급함으로써 측면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조선정부에서 제작한 활자는 총 69종이고, 민간에서 만든 활자의 총수는 (정체가 분명한 활자만 계산해도) 42종에 달한다. 여기서 제외된 민간의 무수한 무명無名 활자들까지 합한다면, 정부와 민간이 제작한 활자 총수는 도합 총 300종을 상회할 것으로 추산되고, 300종 가운데 231종은 유·무명의 사인들이 주조·제작한 민간 활자였다. 조선 후기에 완성 단계에 이른 학교체제에서 공사립 서당(7만8318개소)+향교(333개소)+대학교 9개소(팔도의 지방대학 ‘영학營學’ 8개소와 중앙의 성균관 1개소) 등 학교의 총수는 도합 7만8660개소에 달했고, 학생 수는 78만 명(78만965명)이었다. 그리고 서원의 유생, 관청의 관료, 사찰의 승려 등으로 이루어진 지식층도 수백만 명으로 증가해 있었다. 결국 이래저래 조선은 매년 적어도 400-500만 부의 책을 공급해야 했다. ‘출판국가’의 조선정부, 사찰, 서원, 사가私家, 상업출판사(‘서사書肆’) 등은 출판혁명을 바탕으로 매년 이 천문학적 서적 수요를 충족시켰던 것이다. 사찰·암자, 서원·사우, 사가·개인이 활인·출판한 서적들에 대해서는 본론에서 상론한다. 민간부문에서 나온 활인본 서적의 총 책종은 이 책의 권말 [부록1] 「조선 500년 활인본 서적 총목록」 내의 ‘민간의 활인본 서책 생산’ 항목에 목록화되어 있다. 상업서점 서사書肆(출판사+책방)는 ‘가내서점’으로부터 ‘시중서점’으로 단계적으로 발전했는데, 비교적 분명한 상업적 정체성을 갖춘 최초의 가내서점은 1541년 『한서열전』을 목활자로 활인活印해서 판매한 ‘명례방’ 서점이다. 그리고 최초의 시중서점은 아마 18세기 초반부터 출판사 간판을 걸고 책을 인출해 진열·판매하기 시작한 완산(전주)의 ‘서계서포西溪書?’일 것이다. 본론에서는 서사書肆에 대한 분석도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된다. 이 책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은 권말부록이 차지하고 있다. 중요한 부록은 조선정부와 민간이 생산한 활인본 서적 총 1만4117종을 목록화한 [부록1] 「조선 500년 활인본 서적 총목록」이다. ‘은근과 끈기’의 10개월 동안 치명적 성실성을 쏟아 부어 작성한 이 총목록은 학계 최초의 사건, 좀 과장하면 이 땅에 금속활자가 생긴 지 800년 만의 일대사건일 것이다. 고려시대 활인본까지 합치면, 『남명화상송증도가南明和尙訟證道歌』를 금속활자로 초인初印한 1211년(고려 희종 7년)부터 1910년(융희 4년)까지 출판한 우리나라 활인본 책종의 총수는 1만4135종(조선 1만4117종+고려 18종)이다. 이 총목록은 아직도 완전하지 못하다. 이 책의 편집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새로 발견되는 활인본 책을 뒤늦게 추가하느라 자다가도 일어나기를 거듭했다. 그리고 ‘최종’이라고 생각하고 책종의 총수를 써넣었다가 고치기를 수백 번 반복했다. 앞으로도 발견되는 대로 책종을 더해 총수를 고치고 또 고쳐야 할 것이다. 조선 500년간 일단 금속활자 출판혁명에 의해 생산된 것으로 파악된 이 1만4117종의 활인본 총목록 작성으로 “우리나라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발명일지라도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처럼 출판혁명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국내외의 그릇된 주장들을 침묵시키기에 충분하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제작해 최초로 라틴어문법서 『도나투스(Donatus)』를 찍은 1440년부터 60년간 서양 16개국에서 쏟아져 나온 활인본 총수의 1개국 평균은 태종이 주자소를 세워 계미자를 주조해 『도은문집』을 처음으로 활인한 1406년(태종6)부터 60년간 활인한 책종 총수의 6분의 1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말에는 시조·가사·소설 등 무수히 쏟아져 나온 목판본과 필사본 한글시문집을 제외한 265종의 조선조 한글활인본 총목록도 [부록6] 「조선조 언문활인본 총목록」으로 제시했다. 필자는 『용비어천가』·『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과 각종 유학경전 언해서 및 의학언역서醫書諺譯書를 비롯한 활인본 한글서적과 임금의 한글 윤음綸音·법령 등 중요한 한글문서들을 망라한 이 [부록6]이 ‘조선 500년 동안 금속활자로 활인된 한글 서적은 별로 없었고 한글은 기껏해야 한문에 대한 보조역할만 했다’는 일부 국내학자들의 근거 없는 허언을 물리치기에 족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265종의 한글 활인본은 조선 500년 동안 정부와 민간에서 간행된 총 277종의 불서佛書 활인본, 총 399종의 성리학 관련 활인본, 총 419종의 의서醫書 활인본과 대비해도 결코 적은 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유교국가 조선은 학교이자 출판사였고, 금속활자는 ‘학교국가·출판사국가’의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목판본은 많을 것처럼 생각되지만, 활인본을 그대로 복제한 번각본을 뺄 때 조선 500년 동안 나온 목판본 책종은 실은 도합 2675종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목판본 책종의 총수는 조선 500년 활인본 책종 총수(1만4117종)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학교국가·출판사국가’를 뒷받침해준 버팀목의 백두대간은 관·민이 제작한 금속활자와 목활자 및 이에 기초한 활인·번각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규장각과 장서각에 소장된 책종의 총수는 필사본, 고려 목판본과 활인본, 지도, 비명碑銘탁본, 영사본影寫本, 일제 강점기 출판서적까지 싸잡아 29만 종에 육박한다. 개인 도서관과 기타 공공 도서관에도 조선시대 서적들이 일부 소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이 고려·조선시대 서적의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규장각과 장서각의 전체 소장서적의 십중팔구는 조선·대한제국 518년간의 『승정원일기』와 『승선원일기』, 『규장각일기』, 『궁내부일기』, 『정치일기』, 『일성록』, 『비서원일기』, 미고필기眉皐筆記, 『비변사등록』 및 수많은 기타 각사등록, 각종 의궤, 『홍재전서』를 비롯한 무수한 필사본, 고려서적, 지도·비명탁본, 영사본,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출판된 서적들일 것이다. 이것들을 제외하고 눈대중으로 필자는 조선 518년의 인쇄본(활인본+목판본+석판본) 총수를 약 3만 종으로 추산한다. 이 책종의 약 절반은 출판주체의 정체가 분명한 1만6792종(활판본 1만4117종+목판본 2675종)이고, 나머지 1만3000여 종은 정체불명의 출판주체들이 제작한 활인본(금속활자·목활자·도陶활자·표瓢활자)·목판본·석판본일 것이다. 조선은 500년 동안 관·민이 매달 5종의 새 책을 찍어낸 것이다. 이 수치가 ‘부수’가 아니라 ‘책종 수’인 까닭에 그때 그 시절의 출판역량치고는 세계최고일 수밖에 없다. 중국 인쇄서적의 책종 수는 조선을 능가했겠지만, 가령 한 달에 100종을 찍어냈다고 하더라도 명대 중국의 인구가 조선보다 약 25배 이상, 그리고 청대 인구가 조선보다 30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이 인구 격차를 감안하면 중국의 1인당 책종 수는 조선에 미칠 수 없었다. 금속활자는 조선에서 출판혁명을 일으켜 조선을 ‘문헌지방文獻之邦’, ‘책의 나라’로 격상시켰고, 또 조선에 ‘문헌지방’이라는 국제적 명성을 안겨주었다. ‘학교와 출판사로서의 유교국가’에서 학교는 조선후기로 갈수록 삶의 일부가 되었고, 조선인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민족으로 변했다. 한민족은 ‘책의 나라’ 조선 500년을 경과하면서 학교에 가서 책을 읽고 외는 ‘책의 민족’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광화문 네거리에 세운 세종대왕의 동상을 용상에 앉아 왼손으로 펼친 책을 들고 앞을 보며 말하는 듯이 오른손을 들고 있는 좌상坐像으로 빚었고, 이 문교文敎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이순신 장군의 동상조차도 갑옷을 입었지만 칼을 칼집에 정갈히 집어넣고 칼집을 비스듬히 잡고 서서 앞을 쏘아보며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단호한 태도의 ‘성웅군자’ 모습으로 빚었다. 한국적인, 그야말로 한국적인 이 이미지들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서있는, 칼을 하늘높이 치켜들고 세상의 모든 책을 단번에 싹둑 다 잘라버릴 것 같은 ‘마상馬上의 넬슨 제독’ 동상으로 표현된 영국 군웅軍雄의 용맹한 전투적 이미지와 진정 상반된다. 이런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독일 마인츠의 구텐베르크 동상조차도 ‘내 꺼야!’라고 일갈할 듯이 큰 책을 한손으로 왼쪽 가슴에 움켜 안고 앞을 응시하고 서 있을 뿐이고 책을 펴볼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조선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부모라도, 그리고 자신은 배우지 못했더라도, 또는 자신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더라도,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자식을 좋은 서당,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애썼고, 청소년은 무조건 과시科試·입시·고시考試의 ‘시험지옥’ 속에서 책과 씨름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여겼다. 이것은 조선의 불문헌법이었고, 부모의 교육열과 청소년의 향학열·학구열은 한국인의 집단적 ‘DNA’였다. 한민족의 청소년들은 1860-90년대 ‘민란의 시대’에도 7만8318개소의 서당과 333개소의 향교에서 책을 읽었고, 대한제국 시기에도 2236개소 공·사립 신식학교와 1만5000곳의 서당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끼니를 잇기 어려운 식민지시대의 적빈 속에서도 책을 읽었고, 또 6·25 전후의 극빈 속에서도 “먹어야 산다”가 아니라 “배워야 산다”는 일념에서 책을 끼고 살았다. 말하자면,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불잉걸로 내면화된 집단적 DNA의 내적 충동으로부터 분출되는 교육열과 향학열에서 한국인들은 기꺼이 적빈도, 극빈도 뚫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결같이 학교에 갔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교육열과 향학열은 어느 민족에게나 있겠지만, 한국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특별하다. 이 특별함은 18-30세 한국 청년들의 대학·대학원 진학률이 80%를 웃도는 반면, 미국 청년은 겨우 40%, 독일 청년은 28%, 즉 한국의 2분의 1, 또는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간단한 통계수치의 국제적 비교만으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리하여 한국 백성들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民惟邦本)”, “하늘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으로부터 보고, 하늘은 우리 백성이 듣는 것으로부터 듣는다(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백성은 임금을 표준으로 삼아 자치하는 것이다(百姓則君以自治)”, 그러므로 임금은 백성을 “작위作爲 없이 다스려야 한다(無爲而治)”, “인간의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학습이 서로를 (귀한 자와 천한 자로) 멀게 할 따름이다(性相近 習相遠)”, 그러므로 “교육에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有敎無類)”, “천하에 나면서부터 귀한 자는 없는 법이다(天下無生而貴者也)”는 등의 만고불변의 철학명제들을 공자경전에서 배워 일상의 생활도덕과 정치도덕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 역사의 전면으로 뛰쳐나와 나라의 운명을 자기 손에 움켜쥐려고 어떤 간고한 투쟁도 불사했다. 전란 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은 ‘배운’ 백성들은 민란과 농민전쟁, 의병전쟁과 국민전쟁, 3·1만세운동과 6·10만세운동, 독립전쟁과 광복전쟁을 통해 근대화와 해방을 쟁취하고, 4·19민주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항쟁, 6월민주항쟁 등 일련의 치열한 유혈투쟁을 통해 미국과 서유럽제국보다 더 선진적인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다. 한국인을 ‘배운 민족’으로 만들어 오늘날 IQ 세계 1위의 국민으로 격상시키고, 60년간의 민족수난으로 야기된 가난을 단기간에 극복하게 만들고, K-Culture, K-Democracy, K-기업, K-기술, K-방산, K-뷰티를 세계인의 관심과 각광 속에서 글로벌화하게 만들고, 오늘날 일본을 앞질러 세계 6대 강국으로 우뚝 서게 만든 비밀동력은 조선시대에 우리의 유전자로 체질화된 향학열과 교육열인 것이다. 금속활자와 한글을 발명한 전통을 이어받은 역사적 영감과 집단적 창의력에서 조선인들은 조선을 중국보다 더 완벽하고 더 충실한 도덕적 유교국가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조선정부는 학교체계를 중국보다 더 철저하게 완벽화했고, 1인당 서책을 중국보다 더 많이 찍어 책값을 세계 최저로 만들고 이 반도 땅에 ‘문헌지방’을 건설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세계적 진출과 석권의 ‘비밀병기’는 바로 이와 같은 세계 최고의 출판능력과 문교 성과를 달성한 ‘책의 나라’ 조선에서 500년을 살면서 내면화된 ‘집단적 교육문화 DNA’다. 끝으로, 오랜 세월 조선의 활자, 활인본 서적, 교육제도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 크나큰 업적을 쌓은 서지학자·역사학자·국문학자·교육학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필자는 정치철학자로서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천혜봉·김두종·남권희·윤병태·이태진·김성수·옥영정·이민희·이성심·우정임 등과 외국학자 쿠랑·전존훈錢存訓·장수민張秀民 등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학자들로부터 음양으로 큰 학은學恩을 입었다. 이분들 중에는 이미 작고한 분들도 있는 바, 고인들에게는 충심으로 명복을 빌고, 여전히 젊음과 노익장의 열정으로 활동 중인 분들에게는 양양洋洋한 학운學運을 빈다. 필자는 아무쪼록 이 『책의 나라 조선의 출판혁명』으로 한국 정치학·서지학·역사학·국문학·교육학 등 인문·사회과학의 가일층적 발전에 저분들만큼 기여할 수 있기를, 또 이런 이유에서 그만큼 독자의 사랑을 받기를 기원한다. 서울 바람들이에서 2023년 2월 모일某日 죽림竹林 황태연 지識
목차
머리말 들어가기 제1장 유교국가와 교민복지 이념 제1절 유교국가의 고유과업 1.1. 국가의 존립기반과 고유 과업 ■ 플라톤의 정의로운 군사국가: 야경국가의 기원 ■ 아담 스미스의 정의지상주의적 야경국가와 자가당착 ■ 국가의 존립기반 ‘민신民信’과 두 고유과업 ‘양민’과 ‘교민’ 1.2. 교민국가로서의 유교국가 ■ ‘교敎’ 또는 ‘교육’의 유학적 개념 ■ 유학을 뛰어넘는 온갖 지식의 습득과 온갖 서적의 출판 제2절 교민의 두 가지 수단: 책과 학교 2.1. 교민을 위한 서적출판과 학교설립의 문제 ■ 교민의 제1수단으로서의 ‘책’과 인쇄술의 발명 ■ 고려의 금속활자 발명과 서책의 보급 ■ ‘유교적’ 국가로서의 고려: 대단한 ‘책의 나라’ ■ 교민의 제2수단으로서의 ‘학교’: 고려의 학교제도 2.2. 학교와 출판사로서의 유교국가 조선 ■ ‘학교로서의 국가’ 조선과 무상교육 ■ ‘출판사로서의 국가’ 조선과 금속활자 ■ ‘출판국가’의 출판독점? - 민간출판의 번창 제2장 조선 금속활자와 출판혁명 제1절 활자인쇄의 본질 1.1. 목판술에 대한 활판술의 특유한 본질적 우월성 ■ 목판에 대한 금속활자의 기술적 장점: 재활용성과 반半영구성 ■ 목판에 대한 금속활자의 출판공법적 장점: 다책종 생산 1.2. 한자·한글문자와 국·한문의 본질적 우월성 ■ 서구 문어에 대한 국·한문의 언어적 우월성 ■ 알파벳 자모字母활자에 대한 국·한문 조립활자의 우월성 ■ 활자 종류의 다수多數 문제 제2절 금속활자 출판혁명의 구조 2.1. 조선의 활인·번각 시스템과 출판혁명 ■ ‘활인·번각 시스템’과 ‘다책종 대량생산’ ■ 상업출판의 발판으로서 번각본 2.2. 구텐베르크식 출판의 부진과 19세기 지형·연판 시스템 ■ 구텐베르크 활판술의 결함과 ‘지형·연판 시스템’의 출현 ■ 구텐베르크와 서양 출판문화 부진의 실상 제3절 조선시대 활자의 종류와 전모 3.1. 정부의 활자 ■ 정부의 한자 금속활자와 그 수량 ■ 정부의 한자 목활자 3.2. 정부의 한글활자 ■ 정부의 한글 금속활자 ■ 정부의 한글 목활자 ■ 19개소에 달했던 다양한 정부 출판소 3.3. 민간의 사주·사제 활자 ■ 민간의 사주私鑄 금속활자 ■ 민간의 사제私製 목활자·도활자·포활자 3.4. 서양활자에 대한 조선 활자의 끈질긴 경쟁력 ■ 해방 후에까지 계속 사용된 조선 금속활자 ■ 1883년 이후 붐을 맞은 조선 목활자의 경쟁력 ■ 일제강점기에서 조선 목활자의 활약 ■ 해방 후 1963년까지 계속 사용된 조선 목활자 제3장 학교의 발달과 출판혁명의 요청 제1절 서당의 발생과 발전 1.1. 서당의 기원 ■ 고려조 아동교육의 답습과 사설 ‘서재’ 또는 ‘서원’ ■ 의무교육의 법제화와 동몽학 시대 1.2. 사립서당과 관립서당의 출현 ■ 서당시대의 개막 ■ 관립서당 ‘면학서당’의 등장과 확립 ■ 전국 서당의 총수와 서당학생 총수 제2절 향교의 발달과 전국적 규모 2.1. 사학의 기원과 발전 ■ 고려조 오부학당의 답습 ■ 서울 ‘사학’의 성립 ■ 사학기재생 제도 2.2. 지방 향교와 전국적 규모 ■ 향교의 발달 ■ 전국 향교·사학의 정원과 향교·사학 학생 실제 총수 2.3. 국·공립대학 성균관과 영학 ■ 조선 국립대학 성균관의 성립과 발전 ■ 팔도 공립대학 ‘영학營學’의 기원과 발달 제3절 학생·지식층의 증가와 천문학적 교재수요 3.1. 서당·향교·영학(성균관)의 교재 ■ 서당의 교재들 ■ 향교와 영학·성균관의 교재들 3.2. 조선의 백만 학도와 천문학적 서적수요 ■ 조선의 백만 학도와 기백만 명의 식자층 ■ 천문학적 서적수요와 출판혁명의 요청 제4장 출판사와 서점의 기원과 변천 제1절 가내서점의 기원과 발달 1.1. 책쾌의 성쇠 ■ 15세기 책쾌의 등장과 성행 ■ 18세기 말 책쾌의 이른 소멸 1.2. 가내서점의 출현과 발달 ■ 정부의 서적판매와 국영서점 설치기도 ■ 16­18세기 ‘가내서점’의 출현과 전개 ■ 선조조의 조보: 세계 최초 활인본 일간 상업신문 제2절 19-20세기 시중서점의 출현과 발전 2.1. 시중서점과 근대적 출판사의 출현 ■ 1820년대 서울의 치안 불안정 ■ 시중 무뢰배의 소탕과 서울 시중서점의 급성장 2.2. 전주·태인·서울·대구의 시중서점들 ■ 전주와 정읍 태인의 시중서점들 ■ 서울과 대구의 시중서점
본문중에서
제1장 유교국가와 교민복지 이념 제1절 유교국가의 고유과업 1.1. 국가의 존립기반과 고유 과업 국가는 안보를 책임지지만 안보는 국가의 고유한 과업이 아니다. 100여 명 단위의 원시집단, 그리고 국가에 이르지 못한 각종 부족집단과 종족집단들도 모두 안보를 위해 전사戰士들로 구성된 자위自衛기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의 고유한 본질적 과업은 무엇인가? 국가는 전前국가적 인간집단들이 하지 못하는 국가 고유의 과업, 즉 양민養民과 교민敎民의 과업을 수행한다. 공자와 맹자가 희망한 유교국가는 고대국가의 전통을 잇는 이 양민과 교민을 국가 고유의 본질적 과업으로, 즉 국가의 ‘존재이유’로 이해한 국가다. ‘교민’은 국가의 급선무인 ‘양민’ 단계를 뛰어넘는 보다 고차적인 과업이고, 국가의 궁극 목적은 이 ‘교민’에 있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말엽에 ‘야경국가’로 비난받은 서양의 안보국가(=군사·경찰국가)와 대척적으로 다른 것이다. 유교국가는 독서·학습·단련을 통해 백성들의 타고난 본성을 개발하는 ‘교민’을 ‘양민’보다 고차적인 국가목적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독서·학습·단련에 필요한 서책의 원활한 유통을 국가의 ‘정신적 핏줄’로 여기고 서책의 출판·공급을 국가의 본질적 과업으로 설정했던 것이다. ■ 플라톤의 정의로운 군사국가: 야경국가의 기원 플라톤은 국민의 지지와 무관하게 노예제사회의 상상력으로 이상국가를 기획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분업적 정의에 기초한 노예제국가이자 군사국가였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머리·가슴·배의 3등분으로 구성된 신체의 유기체적 비유에 따라 철학자, 전사, 영양계급(상공신분과 노예)으로 삼분된 사회를 ‘수호자집단’이라 불리는 전사들과 철학자가 다스리며 영토를 넓히고 노예를 확보하기 위해 정복전쟁을 일삼는, 따라서 상공신분과 노예로 구성된 백성들의 생계복지와 교육복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침략적 군사안보·정복국가였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 「정의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붙여놓고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 트라시마코스의 “정의는 강자强者의 이익”이라는 세속적 강자정의론을 분쇄하고 대신 머리·가슴·배의 유기체적 위계분할에 따라 국가구성원들의 기능적 능력을 ‘적절하게 분업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진정한 정의로 내세운다. 백성의 신임이나 동의에 따라서가 아니라 기능적 능력에 입각한 ‘적절한’ 분업적 배치(분업적 정의)에 따라 치자治者의 지위를 차지한 철학자와 수호자(전사)들은 이 노예제적 사회분업 체계를 무력에 의해 안팎으로부터 지키고 유지하는 파수꾼들이고, 바로 이런 분업적 카스트국가가 플라톤이 그리는 이상국가다. 이 국가의 두드러진 특징은 분업적 노예제국가로서 상공신분과 노예의 생계복지와 교육복지에 대한 국가의 배려가 전무하고 전사와 철학자들만이 교육의 대상일 뿐이라는 점, 백성에 대한 사랑(仁), 즉 애민愛民을 완전히 배제하고 알량한 ‘분업적 정의’만 추구하는 불인不仁·무례無禮한 정의국가라는 점, 군사적 안보와 정복을 최고로 치는 침략적 전쟁국가라는 점, 민심을 고려치 않는, 즉 백성으로부터 동의와 신임을 구하지 않는 불평등한 기능분업적 독재국가라는 점 등이다. 플라톤주의적 이상국가의 이 모든 특징·기능·작태들은 모조리 국가에 고유하지 않는 기능들이거나, 해서는 안 되는 기능들, 또는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부작위 기능들이다. 국가는 일반적으로 안보를 책임져야 하지만 안보는 국가의 고유한 과업이 아니다. 모든 원시공동체와 국가 이전 단계의 각종 부족·종족집단들도 모두 안보를 위해 전사들의 자위自衛기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침략적 정복활동도 이 전前국가적 인간집단들이 마찬가지로 자행할 수 있는 기능, 그렇지만 ‘해서는 아니 되는 기능’이다. 그리고 동의와 신임의 민심을 고려치 않는 불평등한 기능분업적 반反민주·독재 기능은 인디언 부족사회에서도 흔치 않았던 ‘해서는 아니 되는’ 무뢰한적 작태다. ‘분업적 정의’만 추구하고 백성에 대한 사랑이라는 공동체적 국가이념을 완전히 배제한불인·무례 작태는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 부작위’다. 그리고 상공신분과 노예의 생계복지와 교육복지를 배려하는 기능이 전무한 것도 부작위다. 그리고 전사와 철학자들만 가르치는 교육은 계급차별교육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유사하기 때문에 교육(수신)은 치자와 백성을 망라하는 보통교육이어야 마땅한 것이다. 정의만을 유일시하는 이 플라톤 정의국가의 연장선상에서 18세기 말엽 아담 스미스는 정의를 국가의 법적 원리로 내세우고 ‘인혜仁惠(beneficence)’의 ‘복지’ 기능을 국무에서 제외하고 경제사회를 자유방임한 채 대내 치안과 대외 안보만을 챙기는 정의지상주의적·자유주의적 안보국가를 기획했다. 이런 까닭에 페르디난트 라살레(Ferdinand Lassale, 1825-1864)는 1862년 4월 베를린에서 가진 강연문 『노동자강령(Arbeiter-Programm)』에서 스미스의 정의지상주의적 안보국가를 대변하는 19세기 자유방임주의 국가를 도둑을 막는 야경꾼 노릇만 하는 ‘야경국가夜警國家(Nachtwachterstaat)’라는 딱지를 붙이며 실컷 조롱거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스미스적 야경국가는 바로 애민복지를 모르는 플라톤의 정의유일주의적 안보국가에서 기원했던 것이다. ■ 아담 스미스의 정의지상주의적 야경국가와 자가당착 아담 스미스에 의하면, 국가의 고유 과업은 국방·사법·사회간접자본 투자의 세 가지다. 이런 ‘야경국가’의 맥락에서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서로에게 이익을 베푸는 ‘적극적 덕목’인 ‘인혜仁惠(beneficence)’보다,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방지하는 ‘소극적 덕목’인 ‘정의’를 우선덕목으로 규정하고 이 정의의 집행을 위한 ‘정확한 사법행정’만을 근본적 국가기능으로 강조한다. 인간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제각기 다른 사람의 부조扶助가 필요하기도 하고, 마찬가지로 상호적 위해危害에 처해 있기도 하다. 필요한 부조가 사랑·보은·우정·존경심으로부터 상호적으로 제공되는 곳에서 사회는 번영하고 행복하다. 모든 구성원들은 사랑과 애착의 기분 좋은 유대에 의해 서로 묶여있고, 교호적 선행의 공통 중심을 향해 구심적으로 견인된다. 그러나 필요한 부조가 이러한 관대하고 사심 없는 동기들로부터 제공될 수 없을지라도, 사회의 서로 다른 구성들 간에 상호적인 사랑과 애착이 없을지라도 비록 사회가 덜 행복하고 덜 기분 좋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와해되지는 않는다. 사회는 다른 상인들 사이에서처럼 유용성의 감각에서, 상호적 사랑이나 애착 없이 상이한 사람들 간에 존속할 수 있다. 사회 안의 아무도 어떤 의무를 짊어지지 않고 남에 대한 보은의 마음에 묶여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회는 합의된 가치평가에 따라 선행의 금전적 교환에 의해 여전히 지탱될 수 있다. 그러나 서로를 항상 해치고 침해하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회가 존속할 수 없다. 침해가 시작되는 순간, 상호적 분개와 적개심이 발생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는 산산조각이 나고,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구성원들은 말하자면 자기들 간의 어긋난 감정들의 침범과 대립에 의해 멀리 이산되고 흩어지게 된다. 강도와 살인자들의 사회가 있다면, 그들은 적어도 서로 강탈하고 살해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그러므로 인혜는 정의보다 사회의 존속에 덜 본질적인 것이다. 사회는 가장 편한 국가 안에 있지 않을지라도 인혜 없이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의 만연은 사회를 철저히 파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연은 응분의 보상에 대한 기쁜 의식에 의해 인류에게 인혜의 행동을 권고할지라도 이것을 소홀히 할 경우에 상응한 처벌의 공포에 의해 인혜의 실천을 지키고 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혜는 건물을 지탱해 주는 기초가 아니라 건물을 아름답게 하는 장식이다. 그러므로 장식은 권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결코 강제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정의는 전체 구조물을 받쳐 주는 주된 기둥이다. 정의가 제거된다면, 인간사회의 커다랗고 엄청난 조직은 ­ 내가 이렇게 표현해 본다면, 이 조직을 키우고 지탱하는 것이 이 세계 안에서 자연의 특유하고 친애하는 보살핌인 것으로 보이는 바 ­ 한 순간 원자들로 부스러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해 자연은 악에 대한 응보의 의식, 즉 정의의 침범에 따르는 마땅한 처벌의 공포를, 약자를 보호하고 폭력적인 자들을 족쇄물리고 죄 있는 자들을 벌주기 위한 인류 연합의 위대한 파수꾼으로서 인간의 가슴속에 심어놓았다.

저자
황태연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외교학과에서 「헤겔에 있어서의 전쟁의 개념」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91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괴테대학교(Goethe-Universitat)에서 『 지배와 노동(Herrschaft und Arbeit)』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4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현재까지 동서양 정치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며 가르치고 있다. 그는 30여 년 동안 동서고금의 정치철학을 폭넓게 탐구하면서 공자철학과 한국·중국근대사에 관한 광범하고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공자철학의 서천西遷을 통한 서구 계몽주의의 흥기와 서양 근대국가 및 근대화에 관한 연구에 헌신해 왔다. 공자철학 저서 또는 동서정치철학 연구서로는 『 실증주역(상ㆍ하)』(2008), 『 공자와 세계(1~5)』(2011), 『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1-2)』(2014·2015), 『 패치워크문명의 이론』(2016), 『 공자의 인식론과 역학』(2018), 『 공자철학과 서구 계몽주의의 기원(1-2)』(2019), 『 17-18세기 영국의 공자숭배와 모럴리스트들(상·하)』(2020), 『 근대 프랑스의 공자열광과 계몽철학』(2020), 『 근대 독일의 유교적 계몽주의』(2020), 『 공자와 미국의 건국(상·하)』(2020), 『 유교적 근대의 일반이론(상·하)』 (2021) 등이 있다. 그리고 ‘충격과 탄생’ 시리즈로 『 공자의 자유·평등철학과 사상초유의 민주공화국』(2021)과 이 책 『 공자의 충격과 서구 자유·평등사회의 탄생(1-3)』, 『 극동의 격몽과 서구 관용국가의 탄생』, 『 유교의 충격과 서구 근대국가의 탄생』 등 4부작 전6권이 거의 동시에 공간되었다. 해외로 번역된 책으로는 중국 인민일보 출판사가 『 공자와 세계』 제2권(2011)의 대중판 『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2015)를 중역中譯·출판한 『 孔夫子與歐洲思想?蒙』(2020)이 있다. 논문으로는 「공자의 중용적 주역관과 우리 역대국가의 시서蓍筮 관행에 대한 고찰」(2005), 「서구 자유시장·복지국가론에 대한 공맹과 사마천의 영향」(2012), 「공자와 서구 관용사상의 동아시아적 기원(상·하)」(2013), 「공자의 분권적 제한군주정과 영국 내각제의 기원(1·2·3)」(2014) 등이 있다. 한국정치철학 및 한국정치사상사 분야로는 『 지역패권의 나라』(1997), 『 사상체질과 리더십』(2003), 『 중도개혁주의 정치철학』(2008), 『 대한민국 국호의 유래와 민국의 의미』(2016), 『 조선시대 공공성의 구조변동』(공저, 2016), 『 갑오왜란과 아관망명』(2017), 『 백성의 나라 대한제국』(2017), 『 갑진왜란과 국민전쟁』(2017), 『 한국근대화의 정치사상』(2018), 『 일제종족주의』(공저, 2019), 『 중도적 진보, 행복국가로 가는 길 』(2021), 『 사상체질, 사람과 세계가 보인다』(2021) 등 여러 저서가 있다. 서양정치 분야에서는 Herrschaft und Arbeit im neueren technischen Wandel(최근 기술변동 속에서의 지배와 노동, Frankfurt am Main: 1992), 『 환경정치학』(1992), 『 포스트사회론과 비판이론』(공저, 1992), 『 지배와 이성』(1994), 『 분권형 대통령제 연구』(공저, 2003), 『 계몽의 기획』(2004), 『 서양 근대정치사상사』(공저, 2007)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논문으로는 “Verschollene Eigentumsfrage”(실종된 소유권 문제, Hamburg: 1992)”, “Habermas and Another Marx”(1998), “Knowledge Society and Ecological Reason”(2007), 「근대기획에 있어서의 세계시민과 영구평화의 이념」(1995),「신新봉건적 절대주권 기획과 주권지양의 근대기획」(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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