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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로 산다는 것 : 왕권과 신권의 팽팽한 긴장 속 조선을 이끌어간 신하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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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조선시대
저자 신병주
출판사/발행일 매경출판 / 2023.06.02
페이지 수 0 page
ISBN 9791164845644
상품코드 356739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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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뛰어난 군주 옆에는 언제나 유능한 신하가 있었다! 조선의 역사를 만든 실질적 주역, 참모의 참모습 조선시대 최고 전문가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신병주 교수가 《왕으로 산다는 것》 개정판에 이어 《참모로 산다는 것》 개정판을 출간했다. 전작이 왕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살폈다면 《참모로 산다는 것》은 왕을 도와 조선을 이끌어간 참모를 중심으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본 조선의 역사다. 500년 전의 조선시대, 시간적 거리가 무색할 만큼 정치가 움직이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 정치를 닮아있다. 조선 후기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왕의 참모이면서 당파의 핵심 인물로 활동한 참모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오늘날의 시대에도 여전히 리더와 그 참모들의 갈등은 당쟁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예법과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 드러나는 이권 다툼과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하기 위한 팽팽한 이해관계는 어느 시대에나 공통된 모습이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조선의 문제적 왕 시리즈, 세조와 영조를 중심으로 왕권과 신권의 갈등을 다루었던 신병주 교수, 제대로 된 정통 조선사를 집필하다 이 책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참모들의 등장 배경과 활동, 그리고 그들의 삶이 현재에 주는 의미를 담았다. 건국과 창업의 시기에 개혁을 진두지휘한 킹메이커 정도전을 시작으로 세종 시대와 성종 시대를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기여한 한명회·신숙주·서거정,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과 같은 전란의 시기 전쟁 극복에 힘을 다한 유성룡·최명길·장만, 당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기 당파의 수장이자 왕의 참모로 활약한 송시열·김석주 등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주요 인물이다. 조선시대 굵직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총 7개의 파트로 나누어 대표적인 42명의 참모를 다루었다. “군자 만년 큰 복을 누리리라” _경복궁의 이름을 짓고 조선왕조를 설계한 킹메이커, 정도전 “경의 자신을 위한 계획은 좋으나, 나의 의중은 어찌하려는 것인가” _거듭 사직을 청했지만 집에 누워서 업무를 처리해도 좋다며 세종이 끝까지 곁에 두었던 명재상, 황희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상서로운 구름 같은 것이 선생의 덕이요 꾸미지 않고 소박한 것은 선생의 글이다“ _네 번의 사화라는 정치적 시련기 속에서도 묵묵히 학문에 전념한 왕의 스승, 이황 “원나라 순제 때에 저절로 치는 물시계가 있었다 하나, 만듦새의 정교함이 아마도 영실의 정밀함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이다“ _천민이지만 놀랍도록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 장영실 조선 전기에는 킹메이커형 참모들이 다수 탄생하였다. 태조의 정도전, 태종의 하륜, 세조의 한명회와 신숙주 등이 대표적이다. ‘1부 새 왕조를 설계하다’에서는 건국의 최대 공로자였지만 신권 중심주의를 주장하다 결국 제거되는 운명의 정도전을 소개한다. 정도전은 고려 말에는 혁명가로, 혁명을 성공시킨 후에는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생애를 마쳤다. 그가 태조를 도와 구상한 조선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500년 이상 왕조가 존속하는 기반이 되었다. 또 이방원이 왕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하륜, 세종과 함께 태평의 시대를 이끌었던 황희, 신분을 넘어 과학 조선을 이끈 장영실,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고자 한 사육신 성삼문, 성삼문과는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역사에 변절자로 남았지만 누구보다 유능했던 관료 신숙주를 다루었다. 특히 세종은 자신을 돕는 참모형 인재들을 적극 발탁하였다. 천민 출신의 과학자 장영실, 명재상 황희, 집현전의 중심 성삼문이 그들이다. “경상도관찰사는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장악원의 제조는 성현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_《악학궤범》을 편찬한 음악과 예술 분야 최고의 참모, 성현 "나의 원고를 불태워다오“ _권력에 눈이 멀어 사림파 학자들을 어육으로 만든 기묘사화의 주동자, 남곤 훈구파와 사림파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성종은 서거정, 김종직, 김일손 등에게 고르게 역할을 맡겨 15세기 제도와 문물 정비를 완성하였다. ‘2부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에서는 조선 초기 최고의 문장가이자 관중과 포숙의 관계였던 서거정과 강희맹을 참모이자 문장가의 관점에서 살폈고, 간신·칠삭둥이 등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세조를 보좌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면모를 보인 한명회, 피비린내 나는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쓴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과 그의 제자 김일손, 《악학궤범》을 편찬한 대표적인 예술 분야의 참모 성현을 다루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에 의해 쫓겨난 왕에게도 참모는 있었지만, 왕의 판단을 더욱 흐리게 하는 간신이었다. 장녹수, 임사홍, 김개시 등이 대표적인 인물로, 불통의 리더십을 보인 왕들을 더욱 혼군의 길로 가게 하였다. ‘3부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에서는 실록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시세 참모 장녹수, 폭정에 기름을 부은 간신 임사홍과 '대은암' 속 익살스러운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중종의 간신으로 기억되는 남곤, 중종의 절대적인 총애를 받다가 ‘주초지왕’의 역모 혐의를 쓰고 나락으로 떨어진 조광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와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으로 활약한 조식을 다루었다. “나의 몸은 다만 나라를 위할 뿐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하여 병이 더 심해져도 역시 운명이다” _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도 국방에 누구보다 진심이었던 예지자, 이이 “바다를 건너온 모래를 걸러 금을 얻었다” _일본군 선봉장에서 누구보다 충직한 조선 장군이 된 귀화인, 김충선 임진왜란이나 정묘호란, 병자호란과 같은 국가적 위기의 시기에도 왕을 보좌하면서 이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보인 참모들이 있었다. 유성룡처럼 영의정으로서 전시 정부를 이끌어간 인물, 조헌처럼 의병장으로 직접 행동한 인물, 이덕형과 같이 외교적 능력으로 위기를 해결한 인물이 있었다. ‘4부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에서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비화되기도 했던 ‘십만양병설’에 대한 다양한 기록을 중심으로 선조 시대 최고의 참모 이이를 살폈고, 선조와 애증의 관계, 가사문학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긴 정철, 문신이자 돌격적인 의병장 조헌, 일본 장수 ‘사야가’에서 조선의 충신이 된 김충선, 7년에 걸친 임진왜란 과정을 《징비록》으로 남긴 유성룡을 다루었다. ‘5부 광해군의 그늘 속 참모들’에서는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을 유지했던 뛰어난 외교 참모 ‘오성과 한음’의 이덕형, 그 개혁적인 성향으로 실록에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홍길동전》의 허균, 인조반정 이후 사라진 북인 세력의 중심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 상궁의 신분으로 국정을 좌지우지한 광해군의 참모 김개시, 조선의 관료로서 최고위 직책인 영의정을 여섯 번 지낸 이원익을 다루었다.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 _실물 경제 감각을 갖추고 조선에 화폐를 유통한 경제 관료 학자, 김육 “인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아무리 요순의 법이라도 실시할 곳이 없을 것이다” _유배의 아픔을 학문으로 승화한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 선조에서 인조에 이르는 시기는 장만과 같이 국방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참모도 있었으며, 최명길처럼 명분론보다 실리론을 관철시켜 병자호란의 희생이 더 이상 커지지 않도록 공헌한 참모도 있었다. 피폐해진 민생 경제 회복을 우선적으로 추진한 참모로는 김신국, 조경, 김육 등을 소개하였다. ‘6부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에서는 광해군의 폭정에 반정을 일으켜 왕의 자리에 오른 인조를 중심으로 명과 청의 갈등 속에서 조선이 처한 상황과 병자호란의 과정과 극복을 다루었다. ‘7부 당쟁의 시대와 실학’에서는 비상한 실물 경제 감각을 토대로 수차·화폐 등을 도입하여 민생의 안정을 꾀했던 경제학자 관료 김육,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대립하던 숙종시대 정치공작의 달인 김석주, 독특한 글씨 풍으로도 알려져 있는 소신과 원칙의 학자 허목, 정치와 사상의 중심이자 신권의 핵심이었지만 숙종에게 사약을 받은 송시열, 현실적인 정치가이자 《구수략》을 쓴 조선시대 최고의 수학자 최석정, 개혁정치를 추구하던 정조의 참모이자 실학자로 이름을 남긴 정약용 등을 다루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최측근에서 왕을 보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저히 견제하기도 했던 조선시대 참모들의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제공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참모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서 정치적, 학문적 능력을 발휘하거나 국난을 극복한 인물이 대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왕의 판단을 흐리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국정 농단의 주역이 된 참모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참모들의 모습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왕조시대가 끝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사회가 도래했지만, 조선시대 참모들이 갖추었던 덕목들은 반복이라는 역사의 속성 앞에 여전히 큰 의미를 지닌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는 물론 조선을 공부해야 하는 목적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서도 쉽고 재미있고 정확하게 조선의 역사를 한눈에 알려주는 유용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목차
들어가며 1장 새 왕조를 설계하다 정도전, 혁명가에서 왕조의 설계자로 하륜, 태종의 킹메이커 황희와 태종, 그리고 세종 세종의 믿음에 보답한 과학자, 장영실 성삼문,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다 신숙주, 변절한 지식인 vs 정치·문화 정비의 주역 2장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 세종에서 성종 대까지 ‘문병’을 장악했던 학자, 서거정 서거정과 쌍벽을 이룬 조선 전기 문장가, 강희맹 한명회, 세조에서 성종까지 권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다 영남사림파의 영수이자 문장가·관료, 김종직 ‘직필의 사관’ 김일손, 사화로 희생되다 성종의 학술·예술 참모, 성현 3장 폭군의 실정에 흔들리다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실세 참모, 장녹수 연산군의 최측근 임사홍, 반정으로 날아가다 중종의 대리인 남곤, 영원한 간신으로 기억되다 조광조, 개혁가의 꿈과 좌절 16세기 호남 사림의 자존심, 김인후 나아감과 물러남을 실천한 퇴계 이황 명종에게 올린 조식의 상소문, 정국을 흔들다 쉬어가는 페이지_연산군의 잔인한 악행 4장 임진왜란, 조선의 위기를 겪다 선조에게 위기 상황을 역설한 참모, 이이 선조와 정철, 그 애증의 관계 문신이자 유학자이자 돌격적인 의병장, 조헌 일본군 선봉장에서 조선 장군이 된 김충선 북인의 영수이자 실용의 관료학자, 이산해 위기 극복의 참모, 유성룡과 《징비록》 5장 광해군의 그늘 속 참모들 선조·광해군 시대,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이덕형 허균과 광해군, 총애와 배신 사이 의병장이자 광해군의 남자, 정인홍 광해군의 참모, 김개시의 국정 농단 영원한 영의정, 이원익 쉬어가는 페이지_광해군, 정상에서 벼랑까지 6장 명분과 실리 사이, 인조반정 위기의 시기, 국방의 최일선에 섰던 장만 인조반정의 공신, ‘인조의 남자’ 이귀 광해군·인조 시대 국방과 경제 전문가, 김신국 17세기 소신과 원칙, 직언의 정치인 조경 최명길, 실리론으로 나라를 구하다 7장 당쟁의 시대와 실학 실물 경제 감각으로 성과를 보인 학자 관료, 김육 ‘남인의 영수’ 허목, 고학에 심취하다 숙종 시대 정치 공작의 달인, 김석주 실록에 삼천 번 넘게 등장하는 인물, 송시열 현실 가능한 정책을 제시한 소론 정치가, 최석정 이건창, 조선시대 당쟁의 역사를 정리하다 정조의 참모 정약용, 관료와 실학자 두 길을 걷다
본문중에서
1383년(우왕 9) 가을 정도전은 함주막사로 들어가 동북면 도지휘사로 있던 장군 이성계를 찾았다. 이성계는 거듭되는 외침 속에서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혁혁한 무공을 세우면서 신흥 무인세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특히 1380년 소년장수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를 전라도 지리산 일대 운봉 지역에서 섬멸한 황산대첩은 그의 명성을 보다 높인 사건이었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휘하 군대를 보고, “이 군대로 무슨 일인들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라는 말을 던졌다고 한다. 이성계가 재차 무슨 일이냐고 묻자, 정도전은 “왜구를 동남방에서 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이 순간 정도전은 이성계의 군사력에서 혁명의 성공을 보았을 것 같다. 결국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은 정도전의 ‘문文’과 이성계의 ‘무武’가 조화되면서 새로운 혁명의 길로 가는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_ '정도전, 혁명가에서 왕조의 설계자로' 중에서 특히 장영실의 아버지가 중국의 항주 사람이고 어머니가 신분이 천한 동래현의 관기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간 장영실을 발탁해서 힘을 실어준 세종의 애정이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다. (……) 세종은 장영실에 대해,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서, 매양 강무할 때에는 나의 곁에 가까이 모시어서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고 하여 장영실이 실질적으로 세종의 참모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장영실의 당시 임무는 가마의 제작 감독이었다. 가마는 세종이 타기도 전에 부서졌는데, 사헌부에서는 왕이 다친 것은 아니었으나 안위와 관련된 일이므로 장영실을 비롯한 참여자들을 불경죄로 관직에서 파면했고, 장영실은 곤장까지 맞아야 했다. 1442년 대호군 직책에서 파면된 이후 그의 만년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한때는 세종에게 그토록 총애를 받았던 장영실의 갑작스러운 해임과 처벌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투성이다. 일설에는 장영실의 과학적 재능을 견제한 명나라로부터 장영실을 보호하기 위한 세종의 배려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구체적인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천문 과학 기구 프로젝트가 끝나고 세종이 다른 사업에 역점을 두면서 장영실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_ ‘세종의 믿음에 보답한 과학자, 장영실’ 중에서 예방승지는 성삼문에게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는 직책이었다. 1455년 윤6월 수양대군의 압박 속에서 단종이 상왕으로 물러나던 날 성삼문은 바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상징하는 옥새를 전해주는 비서의 자리인 예방승지의 직책에 있었던 것이다. 훗날 죽음으로 대항한 상대에게 옥새를 주는 임무를 수행했던 것은 성삼문의 기구한 운명으로밖에 풀이할 수 없을 것 같다. 《연려실기술》은 “세조가 선위를 받을 때에, 자기는 덕이 없다고 사양하니, 좌우에 따르는 신하들은 모두 실색하여 감히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성삼문이 그때에 예방승지로서 옥새를 안고 목 놓아 통곡하니, 세조가 바야흐로 부복하여 겸양하는 태도를 취하다가 머리를 들어 빤히 쳐다보았다”고 하여 두 사람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_ ‘성삼문, 죽음으로 단종을 지키다’ 중에서 성삼문과 신숙주는 사후에도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죽음으로 의리를 지킨 성삼문이 충신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추앙을 받은 반면, 신숙주는 뛰어난 학문적 자질에도 불구하고 수양대군에게 협조했다는 이유로 변절한 지식인이라는 꼬리표가 늘상 따라다니고 있다. 원래 녹두의 싹을 내어 먹는 나물로서, 두아채豆芽菜란 이름으로 불렸던 나물이 조선 후기 이후 ‘숙주나물’로 바뀐 것에도 신숙주의 행적을 응징하고자 하는 백성들의 증오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만두 속을 만들 때 이 나물을 짓이기기 때문에 신숙주에 대한 분노를 풀어보고자 한다는 것이다. _ ‘신숙주, 변절한 지식인 vs 정치·문화 정비의 주역’ 중에서 1506년(연산군 12) 8월 23일, 연산군은 후원에서 나인들과 잔치를 하다 시 한 수를 읊었다. “인생은 풀에 맺힌 이슬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이라며 읊기를 마치자 연산군은 갑자기 눈물을 두어 줄 흘렸다. 다른 여인들은 몰래 서로 비웃었으나, 장녹수와 전비는 슬피 흐느끼며 눈물을 머금었다. 연산군은 장녹수의 등을 어루만지며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에 변이 있겠느냐마는, 만약 변고가 있게 되면 너는 반드시 면하지 못하리라” 하였다. 두 사람은 앞날을 예견하였던 것일까? 이날은 바로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이 일어나기 열흘 전이었다. _ ‘연산군의 마음을 뒤흔든 시세 참모, 장녹수’ 중에서 남곤이 자신의 죄악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정황도 나타난다. 남곤은 옥사를 주도한 후에 친척과 후배들에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고 여러 차례 질문을 던졌다. 남곤은 “응당 소인이 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라는 답을 듣고는 하인을 시켜서 평생에 쓴 초고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중종 시대 제일의 문장가였지만 그의 작품이 대부분 사라져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남곤이 이미 사림을 얽어서 해치고서 스스로 만세 뒤에 죄를 받을 줄을 알고, 자기 문장이 세상에 나오면 거듭 사람들의 치욕을 받으리라 여겨, 죽을 때 자기의 원고를 모두 불살라 없앴으니, 그 죽은 뒤의 계획도 또한 간교하다 하겠다”라고 하여, 남곤이 원고를 스스로 불태운 모습을 더 강하게 비판하였다. (……) 남곤은 마음이 행실과 어긋났다고 스스로 후회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림파 학자들을 어육으로 만들어 놓은 엄청난 결과에 대해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남곤의 모습이 낯설지 않는 것은 현대 정치권이나 고위공직자 중에도 재주는 넘치지만 그 재주를 부정적인 곳에 쏟는 인물이 곳곳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총애와 권력 때문에 자신의 명성과 그 원고까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남곤의 사례를 경계로 삼았으면 한다. _ ‘중종의 대리인 남곤, 영원한 간신으로 기억되다’ 중에서 이황은 69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학문에 전념하다가 70세 되던 해 11월 종가의 시제 때 무리를 해서인지 병환이 악화되었다. 그달 8일 아침 평소 사랑하던 매화나무에 물을 주고 침상을 정돈했다. 그리고 단정하게 앉은 자세로 숨을 거두었다. 조선성리학 최고 인물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_ ‘나아감과 물러남을 실천한 퇴계 이황’ 중에서 조식은 잘못된 정치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선비의 책무로 여겼다. 왕에게 불경한 표현이 될지언정 직선적인 상소문을 올린 것은 이러한 생각에서였다. 이 상소문으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특히 문정왕후를 과부로, 명종을 고아로 표현한 대목에 대해서는 명종이 ‘군상불경죄君上不敬罪’로 역정을 낼 만큼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정왕후에 대한 불만이 벽서의 형태로 나타난 경우는 있었지만, 조식처럼 직언하는 상소문으로 비판하는 경우는 없었다. 조식에 대한 처벌 주장이 제기되고, 목숨까지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상당수의 대신이나 사관들이 “조식이 초야에 묻힌 선비여서 표현이 적절하지 못한 것이지 그 우국충정은 높이 살 만하다”거나, “조식에게 죄를 주면 언로가 막힌다”는 논리로 조식을 적극 변호함으로써 파문은 가라앉을 수 있었다. (……) 조정의 대신들과 언관, 성균관 유생들까지 나서며 조식을 처벌한다면 왕이 언론을 탄압하는 것이라며 비호하였고, 결국 명종은 조식을 처벌할 수가 없게 되었다. 조식의 상소문 파문은 명종 시대에 재야의 언론까지 수용하는 정치 문화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_ ‘명종에게 올린 조식의 상소문, 정국을 흔들다’ 중에서 사야가는 넓디넓은 천하에서 어찌하여 오랑캐의 문화(좌임향, 격셜풍)를 가진 일본에 태어났는가에 대해 탄식했으며, 그래서 아름다운 문물을 보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을 정벌하러 가게 되면서 그를 선봉장으로 임명하였다. 사야가는 이 전쟁이 의롭지 못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예의지국 조선을 한번 구경하고자 선봉장이 되어 조선에 오게 되었다. 이때, 그는 맹세코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마음속으로 결단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예의의 나라 조선을 흠모하다가 가토의 선봉장이 되어 출정함에 귀화의 결단을 내리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후에 그가 조선의 예의와 문물을 사모하여 당호를 ‘모하慕夏’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_ ‘일본군 선봉장에서 조선 장군이 된 김충선’ 중에서 강화도로 피난을 가면서 인조는 이원익을 도체찰사로 삼았다. 고령으로 사양하는 이원익에 대해 인조는 “누워서 장수들을 통솔해도 될 것”이라며 부탁했다. 이미 80세가 넘어도 그는 여전히 국가에서 필요로 했던 재상이었다. 1634년 1월 88세를 일기로 이원익은 사망했다. 마지막까지 그의 삶은 소박했다. “금천에 돌아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의 초가집에 살면서 떨어진 갓에 베옷을 입고 쓸쓸히 혼자 지냈으므로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는 기록은 최후까지 청백리의 삶을 살았던 그의 모습을 증언한다. _ ‘영원한 영의정, 이원익’ 중에서 김신국의 경제정책은 양전의 철저한 시행으로 농업경제의 기반을 튼튼히 한 바탕에서 국가의 비용을 절감하는 절제와 생산 확대를 통한 국부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안이었다. 이것은 화폐유통과 함께 국용을 절제하고, 어업과 염업과 같은 바다에서 생산되는 이익을 국가재정으로 적극 확보하려는 정책에서도 두드러진다. 김신국은 고려 성종 대 이래로 화폐를 사용한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외국과는 달리 우리만 쌀이나 옷감으로 유통한다면 백성이 곤궁하고 국가가 가난해진다고 파악하였다. 그는 ‘주식환무지법酒食換貿之法’을 제정하여 배고픈 사람들이 동전을 가지고 시장에서 쉽게 술 마시고 먹을 수 있게 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즐길 때 동전 사용의 묘미를 알 것이라 하였다. 김신국의 건의는 인조에 의해서 수용되어 그해 11월에 호조의 요청으로 인경궁에 주전청을 설치하고 동전의 주조 사업에 착수하였다. 김신국은 성중에 가게를 설치하고 술과 음식을 동전으로 사고팔게 하는 등 동전 유통의 현실성까지 미리 검토하였다. 17세기 중엽에는 강화·교동·연백 등 개성을 중심으로 중국 동전이 원활히 유통되고 의주와 안주 등 중국 접경 지역에서도 동전이 유통되었다. 숙종 대에 이르러 상평통보가 전국에 널리 유통되는데, 이러한 유통의 기반에 김신국과 같은 선구적인 관료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_ ‘광해군·인조 시대 국방과 경제 전문가, 김신국’ 중에서 차가운 겨울 추위 속에 전세도 계속 불리해지자 인조는 마침내 최명길로 하여금 항복을 청하는 국서의 작성을 명했다. 최명길의 국서를 본 김상헌은 그 자리에서 이런 치욕을 당할 수 없다면서 국서를 찢어버리면서 실성통곡을 하였다. 최명길은 “대감이 찢었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주워야 한다” 하고, 오랑캐에게 보내는 답서를 주워 모아 붙였다. _ ‘최명길, 실리론으로 나라를 구하다’ 중에서 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정약용과 부인의 무덤이 있다. 실학박물관도 바로 옆에 조성되어 조선시대 실학의 흐름을 한눈에 접할 수 있다. 생가 쪽을 조금 나와 강변가에 조성된 수변 공원 일대는 정약용이 거닐면서 사색을 하고, 배를 타면서 벗들과 교유했던 곳이다. 2018년은 정약용이 해배된 지 정확히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정약용이 지금 시대에 재평가되고 있는 것은 그가 《목민심서》 등에서 제시한 민생 경제의 어려움과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 하향식 조직 문화 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_ ‘정조의 참모 정약용, 관료와 실학자 두 길을 걷다’ 중에서

저자
신병주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역사를 쉽게 전달해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KBS 〈역사저널 그날〉, KBS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조선시대의 전염병과 리더십’, ‘연산군과 광해군’ 편에 출연했다. 현재 KBS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재재단 이사, 문화재청 궁능활용 심의위원, 외교부 의전정책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참모로 산다는 것》, 《조선 산책》, 《왕으로 산다는 것》,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 《조선과 만나는 법》, 《조선평전》,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조선을 움직인 사건들》 등이 있다.
   고전소설 속에 담긴 역사를 찾아라 | 신병주 | 주니어김영사
   왕으로 산다는 것 | 신병주 | 매일경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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