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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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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문화재/유산
저자 정재윤
출판사/발행일 푸른역사 / 2021.10.09
페이지 수 316 page
ISBN 9791156122036
상품코드 354069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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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의문에 싸인 혈통과 탄생 백제 제21대 왕 개로왕의 동생 곤지는 461년 왜로 향한다. 이때 임신한 개로왕의 부인이 동행한다. 일본으로 가는 여정 중 각라도에서 태어나 시마(섬)란 이름이 붙은 소년이 훗날 25대 무령왕이 된다. 곤지가 일본에 간 이유, 시마의 혈연적 부친이 개로왕인지 곤지인지, 시마는 왜 곤지와 떨어져 따로 성장했는지 등을 꼼꼼하게 파고든다. 시마는 규슈 일대에 자리 잡은 유력한 백제계 도왜인 집안 출신의 어머니를 둔 곤지의 서자(135쪽)라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 아스카 지역에서 꽃피운 백제 문화의 유적을 짚는 것은 덤이다. 덕으로 닦은 권력 기반 귀족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정치적 라이벌인 형 곤지를 다시 부른 문주왕의 조치에 따라, 혹은 훗날 동성왕이 된 동생의 귀국에 따라 규슈에서 활동하던 시마 역시 백제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문주왕이 해구에 의해 시해된 후 동생 동성왕의 즉위에 일정 부분 기여한다. 이어 왕권 강화를 추구하며 기근에 시달리는 백성을 외면한 동성왕의 견제를 받았으나 전라도 지역에 파견되어 민심을 얻는다. 《삼국사기》에서 “인자하고 너그러워 백성들의 마음이 그를 따랐다”고 평한 대목에 근거한 유추이다(202쪽). 그 결과 민심을 잃은 동성왕이 중신 백가에게 살해당하자 ‘나라사람들(國人)’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228쪽). 나이 마흔 때 일이다. 갱위강국更爲强國을 선언한 명군名君 왕권을 쥔 무령왕의 위민정책이 돋보인다. 재위 6년(506) 춘궁기에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구휼(252쪽)하고, 재위 9년(509)에 임나 지역 유민의 호적을 복구하는가 하면(255쪽), 재위 10년(510) 봄에 국가 주도로 제방을 완비하고 놀고먹는 자들을 몰아 농사를 짓게 했다(252쪽). 이것이 부국富國을 겨냥한 것이라면 집권하자마자 달솔 우영을 보내 고구려 수곡성을 공격하고(230쪽), 재위 12년(512) 임나 4현을 수복하는 등 섬진강 유역을 확보해 일본과 중국을 향하는 물길을 확보(269쪽)한 것은 강병强兵을 지향한 것이라 하겠다. 그 결과 521년 ‘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되다)’을 선포하고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는 ‘영동대장군’의 작을 받으니 이는 당시 고구려 안장왕보다 높은 품계로(292쪽) 백제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외교적 개가였다. 성근 사실史實을 보완한 합리적 추론 지은이는 한ㆍ중ㆍ일의 사료를 섭렵하고 고고학적 연구를 토대로 무령왕 일대기를 구성했지만 사실史實 자체는 성글다. 망국의 역사를 누가 성실하게 기록했을 것인가. 지은이는 이를 합리적 추론으로 메우는 데 성공한 것으로 읽힌다. 그렇게 해서 무령왕의 이야기를 신화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무령왕릉 발굴품을 살펴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를 지향한 백제 문화에 미래지향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5~6세기 한반도의 전운 I부 백제사의 역주행, 무령왕릉 발굴 1. 1,500여 년 만에 드러난 무령왕릉 운명의 그날, 삽자루에 걸린 벽돌|무령왕릉 발굴, 우연인가 필연인가|무령왕릉 발굴 이후 2. 백제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다 정교하고 화려한 금속공예품|무령왕릉 발굴의 성과 II부 탄생과 설화 3. 위기의 백제를 구하라-왜로 간 곤지 개로왕 즉위의 일등 공신 곤지, 좌현왕에 임명되다|곤지가 왜로 간 까닭 4. ‘섬’을 이름으로 가진 아이 무령왕 탄생 설화는 어디까지 사실일까|무령왕이 태어난 가카라시마의 위치|무령왕의 이름은 왜 사마였을까 5. 곤지, ‘가와치 신화’를 창조하다 백제인들이 정착한 가와치 지역과 아스카|가와치 지역에 보이는 백제인들의 흔적|백제와 왜, 전략적 동반 관계 구축-곤지 파견의 목적 6. 홀로된 사마, 섬을 무대로 성장하다 사마는 누구의 아들일까-출생의 비밀|섬을 무대로 활동한 ‘도군’, 사마|이와이의 난을 통해 본 규슈 지역 백제계 세력의 실체|사마, 백제 중흥의 뜻을 세우다 7. 천험의 요새 웅진으로 개로왕, 무모한 패장인가 시대의 희생양인가|500년 도읍지 한성이 불타다|웅진, 위기에 빠진 백제의 새로운 터전이 되다 III부 국인공모國人共謀 8. 곤지의 귀국과 죽음, 혼돈의 시대로 곤지는 어떻게 귀국하였나|곤지의 죽음-자연사인가 음모인가|혼돈의 극치, 문주왕 시해 9. 모대와 사마의 입국 삼근왕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모대의 입국|사마의 입국|동성왕 즉위 배경|동성왕의 정치적 기반|동성왕 즉위와 사마의 역할 10. 사마의 국내 활동 동성왕의 왕권 강화 노력과 한계|사마, 위기를 반등의 기회로 11. 동성왕 몰락과 사마의 결단 파국으로 치달은 권력 투쟁|동성왕의 몰락|동성왕 몰락의 전조|사마는 어떻게 살아남아 왕이 되었는가 12. 동성왕 시해와 정변 주도 세력 동성왕 시해 사건의 전모|동성왕 시해와 무령왕의 역할|강에 수장된 역적 IV부 갱위강국更爲强國 13. 준비된 개혁군주 제도적인 왕권 강화로|무령왕 가계의 골족의식|귀족들의 서열화 14. 위민정치의 실천 무령왕의 위민의식|국가 주도의 제방 축조|백성들의 귀환과 호적 정비|백성의 나라임을 선언하다 15. 강을 열고, 바닷길을 잇다 흔들리는 백제의 위상|백제의 기지개, 가야와의 알력|남방 정책, 섬진강 유역을 장악하다|동아시아 교역로를 주관하다 16. 갱위강국의 선포 무령왕 정권의 지향점|숙원인 고구려를 격파하다|《양직공도》에 보이는 백제의 위상|갱위강국을 만방에 선포하다 17. 사마, 잠들다 한성 순무, 시작과 끝|마지막 고뇌, 신라와 가야|웅진 땅에 잠들다 에필로그-무령왕, 끝나지 않은 신화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운명의 그날, 장마철인 7월 5일 송산리 5호분과 6호분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 …… 그런데 작업하던 인부의 삽에 강돌 하나가 걸렸다. 김영일 현장소장은 무덤에 쓰는 돌이 있음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작업을 지켜보았다. …… 벽돌을 따라가자 드디어 무덤의 입구라는 것을 확신할 만한 윤곽이 드러났다. 역사적인 무령왕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29쪽). 김원룡 서울대 교수가 단장에 임명되어 발굴을 지휘하게 되었다. 드디어 7월 7일 오후 4시 무덤의 입구를 막은 폐쇄 벽돌을 들어내는 작업을 했다. …… 단단한 입구를 본 발굴단은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완벽한 백제 왕릉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 드디어 7월 8일 오후 4시 벽돌 한 장을 조심스럽게 빼내자 무덤 내부에서 응집된 공기가 분출되기 시작했다(30쪽). 무령왕릉에서는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과 12종 17점의 국보 등 5,200여 점의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백제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었다(41쪽). 무령왕릉 묘지석은 왜곡이 심하여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일본서기》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묘지석에 나온 무령왕의 사망 연대를 통해 확인된 출생 연도가 《일본서기》에 기록된 출생 연도와 일치했다. 사마라는 무령왕의 이름도 《일본서기》의 탄생 설화와 연관되었다(56쪽). 왕릉에서 나온 화려하고 세밀한 금속 세공품과 고대 한ㆍ중ㆍ일의 교류를 여실히 보여주는 도자기, 관목 등은 무령왕 시대 백제의 역량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생전에 혼란한 백제를 수습하고 중흥을 일구어냈던 무령왕이 죽어서 다시 한번 잃어버린 백제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60쪽). 곤지는 개로왕의 동생이면서 뒤이어 왕에 오른 문주왕의 동생이기도 하다. 그가 역사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라는 점이다. 그의 아들들이 연이어 백제 왕에 올랐고, 게다가 무령왕의 후손이 이후 백제 왕위를 독점하였기에 백제 왕위 계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67쪽). 곤지는 형인 개로왕의 요청으로 461년 왜에 파견되었다. 그가 왜로 건너간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 권력 서열 2위인 곤지를 시기하거나 그의 역량을 높이 산 사람들이 곤지의 왜국행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고, 곤지 또한 군사 지원책을 모색하는 동시에 백제계 도왜인들을 규합하여 왜에서 자신의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하였으리란 것이 실상에 가까울 것이다(70쪽). 《일본서기》에 의하면 곤지는 4월에 백제에서 출발하여 6월 가카라시마에서 무령왕의 탄생과 관련된 행적을 보이고, 7월에 왜의 수도인 야마토에 입성하였다(71쪽). 《일본서기》에 의하면 그의 친아버지는 개로왕이고, 의붓아버지가 곤지다. 개로왕이 어느 날 동생인 곤지를 불러 왜로 갈 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곤지는 수락조건으로 개로왕의 부인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요구다. 그런데 개로왕은 이를 수락하면서 만약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돌려보내라는 조건을 달았다(76쪽).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묘지석에는 무령왕의 이름이 ‘사마斯麻’이고, 62세로 사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 작은 단서가 후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먼저, 무령왕은 523년 사망하였는데 당시 62세란 점에서 461년 탄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령왕 탄생 설화를 전하고 있는 《일본서기》 유라쿠 5년은 461년에 해당하여 묘지석의 무령왕 탄생 시기와 일치한다. 나아가 가카라시마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은 그의 이름과도 통한다. ‘섬’은 일본어로 ‘시마’이고, 백제어로는 ‘서마’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76쪽). 《일본서기》에 의하면 무령왕은 각라도各羅島에서 태어났다. 각라도라는 지명은 현재 존재하지 않지만, 그 음운이 ‘かからしま’이어서 발음이 같은 현재의 사가佐賀현 히가시마츠우라東松浦군 가당도加唐島가 유력한 지역으로 거론되고 있다(78쪽). 무령왕의 탄생 설화를 전하고 있는 《일본서기》 본문에서는 각라도(가카라시마)에서 태어났고, 이로 인해 아이의 이름을 도군嶋君이라 하였고, 이 섬을 주도主嶋라 하였다 한다. ‘시마’를 이름으로 하고 있고, 섬을 임금의 섬이라 하는 것이다(84쪽). 왜로 파견된 곤지는 치카츠아스카 지역에 정착하였다. …… 치카츠아스카는 세토나이카이와 야마토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야마토 정권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관문에 해당하는 곳이다. 백제계 도왜인들이 이곳에 집중적으로 정착한 것은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지였기 때문이다(92쪽). 461년 4월 백제에서 출발한 곤지는 6월 가카라시마에 도착하여 사마를 낳았다. 그런데 곤지가 야마토로 입성할 때에는 사마와 헤어진 상태였다. 그렇다면 사마는 왜 곤지와 헤어졌을까?(112쪽) 《백제신찬》에는 무령왕은 곤지의 아들이며 동성왕의 이모형異母兄이라고 기술하였다. …… 실제 무령왕과 동성왕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무령왕이 곤지의 첫아들이고, 동성왕이 둘째 아들이라면 정황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무령왕이 18세면 그 동생인 동성왕은 유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114쪽). 사마가 홀로 남았다면 당연히 그의 어머니도 곤지와 헤어졌을 것이다. 이는 사마의 어머니가 곤지의 정실부인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가족을 데리고 야마토로 향하는 마당에 부인과 아들, 즉 직계가족을 홀로 섬에 두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동성왕은 곤지가 정착한 가와치 지역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이며, 그가 사마보다 먼저 왕위에 오른 것도 곤지의 적자임을 말해준다(115쪽). 무령왕을 개로왕의 아들로 연결하면 이를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한성 시대의 계보와도 이어진다. 이는 무령왕 즉위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다. 더욱이 무령왕은 동성왕이 시해된 후 즉위하였기 때문에 그를 옹립한 한성에서 내려온 귀족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게 된다. 이처럼 무령왕의 가계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정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116쪽). 사마의 어머니가 규슈 일대를 배경으로 한 유력한 백제계 도왜인의 집안이었고, 곤지는 이들과 정략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았나 추정된다. 규슈는 백제와 야마토 교류의 통로였고, 백제는 이들의 도움이 매우 절실했기 때문이다. 사마 어머니의 가문도 백제의 확실한 실력자와 연결될 필요가 있었고, 점점 조여오는 야마토의 입김을 막기 위해서도 방패막이가 절실했다(135쪽). 사마 가문은 후쿠오카 일대에서도 활동했지만, 6세기 전후에는 구마모토 일대가 주 무대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물과 유적에서도 그 흔적이 보이지만, 에다후나야마 고분의 입지가 마치 한성과 웅진처럼 강을 끼고 자리한 곳과 유사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백제의 전란이 점차 격화되면서 살 곳을 찾는 백제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고, 고향과 비슷한 곳에 터전을 잡았던 것은 아닐까. 요컨대 사마는 규슈 일대의 가카라해에서 태어났고, 주 활동 무대가 점차 아리아케해 연안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137쪽). 문주는 신라의 구원병 만 명을 이끌고 한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한성은 폐허가 된 참혹 그 자체였다. 개로왕이 참수를 당했다는 비보를 접하고 …… 문주는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 문주왕은 혹시라도 있을 고구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로 도읍을 옮기고,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그해 10월 웅진으로의 천도를 단행했다(147쪽). 해구가 군사력을 장악하자 유약한 문주왕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문주왕은 자신의 힘으로 해구를 제어할 수 없음을 깨닫자,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안을 구상했다. 힘 있는 자를 불러들여 해구의 전횡을 억제하려고 한 것이다. 해구를 제어할 수 있는 인물로는 곤지가 가장 유력했다(159쪽). 곤지가 귀국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그가 477년 4월 내신좌평에 임명되었다는 사실만 전할 뿐 그 이전 곤지의 행적이 보이지 않으니 477년 4월 직전에 귀국한 것으로 추측된다. …… 마침내 17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159쪽). 곤지는 어렵사리 귀국하여 내신좌평이 되었지만 귀국한 지 불과 3개월 만에 죽었다. …… 곤지의 죽음을 자연적인 사망으로 보기에는 그의 나이가 비교적 젊다. 큰아들인 사마가 당시 17세인 점을 고려하면 곤지는 아무리 많아도 50세는 넘기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곤지가 귀국한 다음 달인 5월에 검은 용이 나타난 사실이다. …… 기사는 좌현왕이었던 곤지의 신상에 이상이 나타난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 드러내어 말할 수 없는 권력에 의한 일종의 희생양이라는 것이다(162쪽). 《일본서기》 유라쿠 49년 조에 의하면 곤지의 아들 모대(동성왕)는 479년 4월 입국한 것으로 나온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모대의 입국 시기와 동성왕(재위 479~501)의 즉위가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 동성왕 즉위년 조에는 479년 11월 삼근왕이 죽은 후 모대가 동성왕으로 즉위한 것으로 기술되었다(172쪽). 《일본서기》에는 모대가 츠쿠시국築紫國 군사 5백의 호위를 받으며 입국했다 한다. 이는 태자인 전지왕이 405년 귀국할 때와 유사한 상황이다. …… 모대는 곤지의 적자로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다. 유력한 왕위 계승자였던 곤지가 사망했고, 문주왕 또한 시해되어 그 아들인 삼근왕만 남은 상황에서 가장 왕위에 근접한 인물이었기에 왜에서 귀국할 때 각별한 대우를 받은 것 같다(175쪽). 사마는 곤지 ?

저자
정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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