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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 대외교역의 형성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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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삼국시대
저자 김창석
출판사/발행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12.31
페이지 수 343 page
ISBN 9788952115478
상품코드 21389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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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한국 고대 대외교역의 여러 형태와 특성의 변화 과정 추적 이 책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적극 수용하면서 한국 고대 대외교역의 여러 형태와 특성, 그리고 그 변화 과정에 대해 필자 나름의 이해 체계를 제시하였다. 대외교역이 발생하여 점차 국제교역의 체제가 갖춰지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그려 보고자 했다. 특히 고대국가가 성장하고 주변의 종족 및 정치체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대외교역의 목적과 성격이 전환을 맞게 되는 계기와 그것이 국내 사회에 끼친 영향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무역 활동은 근세 이후에 전면화되지만 그 싹은 고대사회에서도 움틀 수 있으므로 그 단초를 찾고 시대적 의의를 고찰하는 데도 유의할 것이다. 출판사 서평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고대국가들의 관계를 교역 측면에서 분석한 역작 김창석 교수가 2004년에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 연구』를 발표한 이후 9년 동안 준비 끝에 내놓은 이 책은 고대국가의 교류를 다루고 있다. 기존의 연구서들이 고대국가의 교류를 정치적 측면에서 다루었다면 이 책은 경제적 측면에서 조명하였다.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동아시아에서 정치체 간의 증여가 무역 행위로 이행하는 과도적 형태로 국가교역을 제시하였다. 저자는 대외교역의 형태와 성격이 단일하지 않고 지역에 따라, 정치체가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고,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갔으리라는 추정 아래 한국 고대사를 구성한 여러 종족과 국가의 대외교역 양상을 분석하여 서로 어떤 차이와 공통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였다. 또한 고대국가가 성장하고 주변의 정치체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대외교역의 목적과 성격이 전환을 맞게 되는 계기와 그것이 국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주목하였다. 교역 형태의 변천에 대한 명쾌한 설명 김창석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대외교역의 흔적을 자료로써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예로 동해 특산물의 하나인 명태 뼈나 밥조개가 두만강 유역인 동관리 수남, 회령 오동, 무산 범의구석, 연길 소영자, 왕청 천고령 등의 집 자리와 무덤에서 나오는 것을 들었다. 특히 두만강 유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신석기시대의 玉 제품은 시베리아와 만주 지방에서 생산된 원석을 들여온 것이라 보고 광역에 걸친 대외교류 또한 활발하였음을 주장하였다. 이 시기뿐만 아니라 청동기시대 나아가서 삼국시대까지 초기 교역의 중요한 형태로 침묵교역을 주목하였다. 그는 뒷 시기에서도 발전된 사회와 언어가 다른 미발달 부족 간에는 침묵교역이 많이 이루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 예를 고구려와 읍루의 교역을 들고 있다. ‘한나라-위만조선-임둔, 진번’으로 이뤄지는 국제교역망은 삼국시대에 진?수?당-고구려 또는 백제-읍루 또는 왜로 연결되었고, 그 이후에는 당-신라 또는 발해-말갈 또는 에미시, 길리야크, 일본으로 연결되는 국제교역망을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신라와 왜의 교역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국가교역 위주로 진행되었지만 점차 무역 단계로까지 성격이 변화해 갔다고 파악하였다. 교역의 주도권 싸움 김창석 교수는 교역집단으로서 한반도 중북부에서 삼국시대 중반까지 존재했던 예족(동예, 영서예)을 주목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에 나오는 ‘동해고’가 바로 교역집단으로서 예족 사람을 지칭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고구려와 수나라 간의 전쟁은 동아시아 교역의 주도권을 놓고 다툰 전쟁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삼국시대 초중반 경남 남해안 지역에 산재했던 포상팔국 및 금관가야와 관련하여서는 교역장의 중립성 개념을 내놓았다. 이후 이 지역은 신라의 대외 관문 의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청주, 강주로 지역 명칭의 변천이 있게 되고 신라 하대에는 독립적인 지방세력이 성장하기도 한다. 발해와 일본 간의 교역에서도 일본 혼슈 중북부지역의 토착민이었던 에미시(아이누족의 조상)와의 교류를 둘러싸고 일본조정과 발해 간의 첨예한 대립과 알력을 소개하면서 일본율령체제를 설명하였다. 여기서 그는 기존에 소개되었던 발해와 일본의 교통 루트를 반박하고 주된 루트를 (말갈족을 대동한) 발해 사절단이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함흥 부근에서 계절풍을 이용하여 울릉도 부근을 지나 일본 혼슈 중부에 도착하는 것으로 추정하였다. 신라가 6세기 초에 우산국을 정벌한 것도 이러한 루트가 상고기부터 존재해 왔기 때문이라 해석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고대사회에서 대외교역의 본질을 집단의 통솔자가 자신이 공동체의 한계를 넘어서 다른 공동체 즉 미지의 다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지위를 과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대외교역을 통해 이질의 문화를 만나고 이것이 새로운 문화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자극을 중시했다. 그는 이 책의 말미를 대외교역이 인류 사회 발전의 특정 시점에서 발생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역도 교역의 전개 과정에서 나타난 역사 현상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장식하였다.
목차
책을 펴내며 / v 서론 1 제1장 초기 대외교역의 모습 9 제1절 침묵교역 11 제2절 濊族의 분포와 문화 양상 18 제3절 沃沮ㆍ東濊의 服屬儀禮와 교역 활동 50 제2장 3~4세기 加耶聯盟體의 교역 전략과 정치체제 71 제1절 서구 학계의 交易場 이론 75 제2절 金海 지역의 交易港 81 제3절 交易場의 중립성과 聯盟의 형성 89 제3장 국제교역망의 형성과 구조 103 제1절 古朝鮮과 百濟의 국제교역상의 위치 105 제2절 高句麗 초ㆍ중기의 對中 교섭과 교역 125 제3절 高句麗ㆍ隋 전쟁의 경제적 배경 142 제4장 8세기 南ㆍ北國과 日本의 교역 및 교통로 161 제1절 남북국시기 新羅ㆍ日 關係의 전개와 교역 162 제2절 752년 교역의 진행 과정과 물품 181 제3절 渤海의 對日 交通路와 蝦夷 세력 197 제5장 羅末麗初의 대외교역 양상 229 제1절 이슬람 諸種族의 來往과 교역 활동 230 제2절 신라의 對日 交通路와 菁州의 사회 변동 258 결론 281 제1절 대외교역의 전개 과정 282 제2절 교역과 무역 286 참고문헌 290 찾아보기 310 Abstract 325
본문중에서
책봉국과 피책봉국이 물품을 교환함으로써 상호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호혜적 교역의 측면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양측이 과연 정치ㆍ군사ㆍ문화적 요구를 배제한 채 조공품과 회사품의 授受만을 가지고 등가의 가치가 교환된 것으로 인식하였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自國을 상징하는 물자를 相互 贈與한 것이라고 보아야 마땅하고, 교역의 범주가 아니라 외교교섭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6쪽 초기에는 읍락공동체의 首長이 교역을 주도했으나 고구려 혹은 백제에게 복속당한 지역에서도 수장 주도의 대외교역이 지속되었는지는 미상이다. 복속국의 왕권이 어떤 식으로든 이에 간여했을 것이고, 이에 따라 재래의 수장층 대신 豪民과 같은 부유층이 교역을 주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지역 주민을 東海賈라고 인식할 정도였다면, 전통적인 공동체가 단위가 되어 그 주민이 교역 대상품을 모으고 교역단에 참여하기도 하는 集團的 形態를 예족의 대외교역 활동의 특징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68쪽 허왕후 일행이 탄 배는 붉은 깃발을 날리며 金海灣으로 진입하여 別浦(主浦)에 정박했다. 여기서 상륙한 후 높은 언덕(綾峴)에 올라 휴식을 취하고, 山靈에게 폐백을 바치며 의례를 올렸다. 그리고 행궁에 나아가 수로왕을 만나 합혼한다. 수로왕 측을 보면, 望山島와 乘岾(古浦)에 신하를 파견하여 허왕후의 도착을 확인한 후 행궁을 만들고 행차하여 허왕후를 맞았다.87쪽 이와 대비되는 것이 고대 집권국가의 교역정책이다. 예컨대 고구려의 경우 ?溝?를 설치하여 대외교섭과 교역의 창구를 일원화함으로써, 교역 채널을 유지하면서도 예하 집단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전략을 택했다. 결국 3~4세기의 가야연맹체는 교역장의 중립화 정책을 구사하여 韓半島 中ㆍ南部와 日本 列島에 걸친 광역의 교역망의 중핵으로서 번영하였지만, 주변국이 그 이권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가시화하는 4세기 후반의 변화된 국제정세 속에서 종래의 중립화 전략을 固守함으로써 국제정세의 변동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여 해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생각된다.101쪽 隋는 대운하를 완성하여 강남과 화북을 잇는 유통망을 구축한 다음 이를 주변 제국과의 대외교역망과 연결시키고자 했다. 吐谷渾, 돌궐과의 상쟁에는 분명 그러한 의도가 작용했다. 이를 동북방에도 적용하여 요서 지역을 장악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서 營州總管府를 설치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이미 대외교역의 거점을 마련하고 읍루, 남실위 그리고 남조에 걸쳐 광역의 교역망을 운영하고 있던 고구려도 이를 방관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598년 1차 전쟁은 영주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고수전쟁은 동북아와 남조까지 포괄하는 고구려 중심의 교역망을 장악하려는 수와 이를 유지하려는 고구려 사이에 벌어진 경제 패권의 쟁탈전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159쪽 동예와 옥저의 交易圈은 일찍이 高句麗가 장악했지만,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동해 중ㆍ북부 나아가 오호츠크해를 사이에 둔 교역 활동은 말갈족, 길리야크인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변동이 생기는 것은 8세기에 들어선 다음부터다. 698년 건국한 발해가 서서히 말갈족들을 복속시키면서 교역체제에도 변화가 일어났다.218쪽 685년에 설치된 菁州는 지금의 경남 서부와 경북 남부의 일부 지역을 포괄하였다. 7세기 말까지 다른 州 지역과 다름없이 중앙의 통제를 받으며 통상적인 통치ㆍ행정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8세기 들어 청주는 변화를 맞게 된다. 王室이 이 지역 특히 지금의 진주, 사천, 거제도 등 남해안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278쪽 이렇게 볼 때 동아시아에서 국가교역은 우선 국내적으로 集權體制가 수립되고 국가 간에 외교관계의 틀이 잡힌 이후에 성립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여러 국가가 대외교역 체제에 연계된 국제교역망이 형성되면, 예컨대 중계 차익과 같은 經濟的 誘因이 발생함으로써 국가교역을 강력하게 추동하고 또 이를 촉진하였다. 국가교역은 초기에 王權과 王室이 주도하다가 나중에는 일부 高位 貴族도 여기에 동참한다.285쪽

저자
김창석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박사(한국고대사 전공)
하버드 대학교 방문학자
현재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부교수

대표 논저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 연구](일조각, 2004)
[백제와 영산강](공저, 학연문화사, 2012)
'한국 고대의 복수관(復讐觀)과 그 변화'([역사와 현실] 88, 2013) 등
   삼국과 통일신라의 유통체계 연구 | 김창석 | 일조각
   한국 고대사 1: 고대 국가의 성립과 전개 | 김창석 |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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