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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안석 평전 : 중국 중세의 대 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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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인물사
저자 이근명 , 이근명
출판사/발행일 신서원 / 2021.08.30
페이지 수 297 page
ISBN 9788979404517
상품코드 35377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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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10세기 이후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정치 구조가 혁신되어 종래의 귀족 정치가 종식되고, 대신 지식 계층인 사대부가 정치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도 풍요로워졌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가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양쯔강 이남의 이른바 강남 지방을 두고 ‘지상의 천당’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중국 역사상의 대변화를 역사학계에서는 ‘당송 간의 변혁’이라 부른다. 대당제국이 멸망하고 송 왕조가 들어서며 중국 사회에 커다란 변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당과 송 사이의 변혁, 그래서 ‘당송변혁기’란 말도 생겨났다.
10세기 이후의 중국, 즉 송대는 오늘날의 중국인들에게 자긍심과 탄식을 아울러 불러일으키는 시대이다. 자긍심을 갖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그 사회적, 문화적 발달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이른바 ‘3대 발명품’, 즉 화약 ․ 나침판 ․ 인쇄술이 사실상 모두 송대에 출현하였다. 세계 최초의 화폐인 교자(交子)가 출현했던 것도 이 시대였다.
하지만 이처럼 찬란한 사회적, 문화적 발달과는 달리 송 왕조는 군사적으로 주변 민족에게 극히 나약한 면모를 보였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송대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과 탄식은 이것에서 비롯된다.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대당제국의 위용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10세기 이후 거란과 탕구트 등의 북방 민족은 속속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송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송은 이들 북방 민족의 위협에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막대한 물자를 주고 평화를 구걸하기를 거듭하였다.
송이 건립되고 100여년이 지나자 대외 관계에서 촉발된 문제점이 여타 부문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국면에서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등장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가 집권하여 개혁을 단행하기 전, 조야에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하였다. 누구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왕안석이 개혁을 시작하자, 이전까지 개혁을 부르짖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반대파로 돌아섰다. 왕안석의 개혁을 두고 신법(新法)이라 부른다. 왕안석이 파기하였던 이전의 법제는 구법(舊法)이라 불렸다. 왕안석이 신법을 단행하자, 정계의 명망 있는 원로들은 대부분 신법의 폐지와 구법으로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개혁이 필요하다 여기던 사람들 모두, 정작 개혁이 도입되자 예전의 제도가 더 좋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어찌된 일일까? 당시의 명망 있는 노신과 원로들은, 왕안석의 신법보다는 구법이 더 났다고 여겼다. 다시 말하여 신법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황제 신종(神宗, 재위 1067~1085)은 왕안석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였다. 신종은 황제 즉위 당시 나이 20세의 청년이었다. 의욕과 패기에 넘치던 신종은 왕안석의 이론을 채용하여 중국을 강대하게 변모시키고자 하였다. 왕안석은 신종에게, ‘요순 시대의 태평성세’를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이러한 국가 구조의 개편을 바탕으로 거란과 탕구트로부터 받는 수모도 일거에 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청년 황제 신종은 왕안석의 주장에 설복되어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왕안석의 신법은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그가 도입한 법제는 균수법, 청묘법, 모역법, 시역법, 보갑법, 보마법, 농전수리법, 방전균세법, 장병법, 창법 등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왕안석은 이러한 개혁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일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강한 자의 횡포를 억누르고 그들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던 소농민과 소상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겼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였다.
‘강자에 대한 견제와 약자의 보호’, 참으로 강렬한 인상을 전해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왕안석은 오늘날까지 ‘약자의 친구’로 인식되고 있다. 또 그래서 왕안석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 나아가 왕안석과 신법을 두고 강자인 대지주 대상인의 횡포에 맞서 중소 농민과 중소 상인을 보호하고자 한 개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신법에 반대한 이른바 ‘구법당’은 대지주와 대상인의 이익을 옹호하고자 한 집단이라 타기되었다.
왕안석에게 ‘강자의 횡포 견제’라는 지향이 존재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약자에 대해 깊은 동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왕안석이 살아간 시기는 11세기 후반이라는 봉건 시대이다. 뿐만 아니라 왕안석은 근본적으로 투철한 유학자였다. 약자에 대한 연민을 지녔다 해도 상대적인 견지에서 그러했을 뿐이다. 봉건 사회를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혁명가는 결코 아니었다. 그가 꿈꾸었던 사회는 굳건한 황제 지배 체제 하에 유교적 안정과 질서가 유지되는 봉건 왕조였다. 신법의 지향점도 국가 체제의 재건에 일차적인 초점이 두어져 있었다. 강자의 횡포를 제거한다는 것도 왕조 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구법당이 신법에 대해 반대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 때문이다. 신법이 강자에게 적대적이었다는 점도 약간의 영향은 미쳤을 것이다. 관료 역시 계층적으로 본다면 향촌 사회에 군림하는 강자였다. 신법은 어찌되었건 지주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이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 신법 반대파의 논리는 신법이 유교적 인정(仁政)과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왕안석이나 신법파의 주장과는 달리 신법이 오히려 소농민 보호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 어찌된 것일까? 일부의 학자들, 특히 과거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모든 현상을 해석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구법당이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것이라 이해하였다. 구법당은 계층적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철두철미 신법을 부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법 조항 내부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법의 취지나 지향과는 무관하게 실제 시행에 당해서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신법 시행의 실적과 지방관의 근무 평가를 결부시킨 것이 문제였다. 그 결과 지방관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신법을 적용하였고, 그리하여 구법당 인사들이 지적하는 폐단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소농민을 보호한다는 신법이 오히려 소농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 한국인에게도 왕안석은 매우 잘 알려진 인물이다. 중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도 적지 않은 분량이 할애되어 왕안석의 개혁이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각은 대단히 우호적이다. 그는 시대를 앞서 개척해간 선구자이자 대지주 대상인의 횡포를 억제한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아직도 케케묵은 이론에 따라 신법과 그 반대파들을 계층적 이익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왕안석에 대해 평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지녀왔다. 그러던 차에 십여 년 전 일본인 학자가 저술한 왕안석 전기 하나가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그것도 결코 일급 학자라 할 수 없는 사람의 저작이었다. 왕안석이 아무리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기로서니 이러한 일본 서적까지 번역되어야 하나 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 학계에도 만만치 않은 중국사 연구의 전통이 있으며, 우수한 중국사 연구자도 적지 않다. 하물며 일본은 우리에게 복잡다단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우리는 일본과 달라야만 할 것이다. 이후 천천히 시간이 날 때마다 왕안석의 평전을 적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평전은 가능한 한 평이하게 적으면서도 약간 저자의 목소리를 담으려 하였다. 교양적인 서적이되 왕안석과 관련한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소개한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더불어 정치가이면서도 문인이었던 왕안석의 면모를 살리고자 하였다. 정치가였던 왕안석에 대해서는 비판과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인으로서의 왕안석을 두고서는 고래로 찬사가 쏟아졌다. 왕안석이란 인물의 종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자신만만하고 독선적이었던 정치가의 면모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치를 구사하는 문학가의 심성도 돌아보아10세기 이후 중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정치 구조가 혁신되어 종래의 귀족 정치가 종식되고, 대신 지식 계층인 사대부가 정치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농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경제도 풍요로워졌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가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양쯔강 이남의 이른바 강남 지방을 두고 ‘지상의 천당’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러한 중국 역사상의 대변화를 역사학계에서는 ‘당송 간의 변혁’이라 부른다. 대당제국이 멸망하고 송 왕조가 들어서며 중국 사회에 커다란 변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당과 송 사이의 변혁, 그래서 ‘당송변혁기’란 말도 생겨났다. 10세기 이후의 중국, 즉 송대는 오늘날의 중국인들에게 자긍심과 탄식을 아울러 불러일으키는 시대이다. 자긍심을 갖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그 사회적, 문화적 발달 때문이다.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이른바 ‘3대 발명품’, 즉 화약 ㆍ 나침판 ㆍ 인쇄술이 사실상 모두 송대에 출현하였다. 세계 최초의 화폐인 교자(交子)가 출현했던 것도 이 시대였다. 하지만 이처럼 찬란한 사회적, 문화적 발달과는 달리 송 왕조는 군사적으로 주변 민족에게 극히 나약한 면모를 보였다. 오늘날 중국인들이 송대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과 탄식은 이것에서 비롯된다.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대당제국의 위용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 10세기 이후 거란과 탕구트 등의 북방 민족은 속속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송을 군사적으로 압박하였다. 송은 이들 북방 민족의 위협에 무기력하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막대한 물자를 주고 평화를 구걸하기를 거듭하였다. 송이 건립되고 100여년이 지나자 대외 관계에서 촉발된 문제점이 여타 부문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 국면에서 왕안석(王安石, 1021~1086)이 등장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가 집권하여 개혁을 단행하기 전, 조야에는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팽배하였다. 누구나 변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왕안석이 개혁을 시작하자, 이전까지 개혁을 부르짖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반대파로 돌아섰다. 왕안석의 개혁을 두고 신법(新法)이라 부른다. 왕안석이 파기하였던 이전의 법제는 구법(舊法)이라 불렸다. 왕안석이 신법을 단행하자, 정계의 명망 있는 원로들은 대부분 신법의 폐지와 구법으로의 복귀를 주장하였다.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다. 개혁이 필요하다 여기던 사람들 모두, 정작 개혁이 도입되자 예전의 제도가 더 좋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어찌된 일일까? 당시의 명망 있는 노신과 원로들은, 왕안석의 신법보다는 구법이 더 났다고 여겼다. 다시 말하여 신법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 인식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압도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황제 신종(神宗, 재위 1067~1085)은 왕안석을 절대적으로 신임하였다. 신종은 황제 즉위 당시 나이 20세의 청년이었다. 의욕과 패기에 넘치던 신종은 왕안석의 이론을 채용하여 중국을 강대하게 변모시키고자 하였다. 왕안석은 신종에게, ‘요순 시대의 태평성세’를 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 이러한 국가 구조의 개편을 바탕으로 거란과 탕구트로부터 받는 수모도 일거에 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청년 황제 신종은 왕안석의 주장에 설복되어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왕안석의 신법은 정치,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를 뜯어고치는 것이었다. 그가 도입한 법제는 균수법, 청묘법, 모역법, 시역법, 보갑법, 보마법, 농전수리법, 방전균세법, 장병법, 창법 등 일일이 그 이름을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왕안석은 이러한 개혁을 통해 사회의 병폐를 일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강한 자의 횡포를 억누르고 그들로부터 억압을 받고 있던 소농민과 소상인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겼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국가의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였다. ‘강자에 대한 견제와 약자의 보호’, 참으로 강렬한 인상을 야만 할 것이다. 이 평전에서는 명시, 명문장이라 평해졌던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왕안석의 생애와 행동을 살펴본다는 방침을 지니려 하였다.
하지만 재주가 없다 보니 그다지 쉽지도 않고 그렇다고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닌 어설픈 내용이 되어 버렸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왕안석이란 인물, 그리고 중국 중세사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관심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왕안석은 11세기 중엽을 살아간 중국 역사상 최대의 개혁가이다. 그가 주도한 개혁은 ‘신법’이라 일컬어진다. 신법으로 말미암아 중국 중세의 역사는 커다란 굴절을 맞이하였다. 왕안석의 개혁은 통상, ‘강자의 횡포 견제와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구법당의 신법 반대도, 그들이 강자인 대지주 및 대상인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듯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매우 복잡한 면모를 가진다. 왕안석의 신법을 과거 유물사관의 시각대로 오로지 계층적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해석하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전해주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왕안석은 오늘날까지 ‘약자의 친구’로 인식되고 있다. 또 그래서 왕안석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 나아가 왕안석과 신법을 두고 강자인 대지주 대상인의 횡포에 맞서 중소 농민과 중소 상인을 보호하고자 한 개혁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신법에 반대한 이른바 ‘구법당’은 대지주와 대상인의 이익을 옹호하고자 한 집단이라 타기되었다. 왕안석에게 ‘강자의 횡포 견제’라는 지향이 존재하였던 것은 분명하다. 약자에 대해 깊은 동정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왕안석이 살아간 시기는 11세기 후반이라는 봉건 시대이다. 뿐만 아니라 왕안석은 근본적으로 투철한 유학자였다. 약자에 대한 연민을 지녔다 해도 상대적인 견지에서 그러했을 뿐이다. 봉건 사회를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것을 지향하는 사회혁명가는 결코 아니었다. 그가 꿈꾸었던 사회는 굳건한 황제 지배 체제 하에 유교적 안정과 질서가 유지되는 봉건 왕조였다. 신법의 지향점도 국가 체제의 재건에 일차적인 초점이 두어져 있었다. 강자의 횡포를 제거한다는 것도 왕조 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구법당이 신법에 대해 반대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 때문이다. 신법이 강자에게 적대적이었다는 점도 약간의 영향은 미쳤을 것이다. 관료 역시 계층적으로 본다면 향촌 사회에 군림하는 강자였다. 신법은 어찌되었건 지주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면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이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 신법 반대파의 논리는 신법이 유교적 인정(仁政)과 배치된다는 것이었다. 왕안석이나 신법파의 주장과는 달리 신법이 오히려 소농민 보호에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 어찌된 것일까? 일부의 학자들, 특히 과거 유물사관에 입각하여 모든 현상을 해석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구법당이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것이라 이해하였다. 구법당은 계층적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철두철미 신법을 부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법 조항 내부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법의 취지나 지향과는 무관하게 실제 시행에 당해서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다. 무엇보다 신법 시행의 실적과 지방관의 근무 평가를 결부시킨 것이 문제였다. 그 결과 지방관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신법을 적용하였고, 그리하여 구법당 인사들이 지적하는 폐단이 여기저기서 발생하였던 것이다. 소농민을 보호한다는 신법이 오히려 소농민의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로 변질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 한국인에게도 왕안석은 매우 잘 알려진 인물이다. 중고등학교의 역사 교과서에도 적지 않은 분량이 할애되어 왕안석의 개혁이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각은 대단히 우호적이다. 그는 시대를 앞서 개척해간 선구자이자 대지주 대상인의 횡포를 억제한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아직도 케케묵은 이론에 따라 신법과 그 반대파들을 계층적 이익에 입각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왕안석에 대해 평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지녀왔다. 그러던 차에 십여 년 전 일본인 학자가 저술한 왕안석 전기 하나가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그것도 결코 일급 학자라 할 수 없는 사람의 저작이었다. 왕안석이 아무리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기로서니 이러한 일본 서적까지 번역되어야 하나 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우리 학계에도 만만치 않은 중국사 연구의 전통이 있으며, 우수한 중국사 연구자도 적지 않다. 하물며 일본은 우리에게 복잡다단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나라가 아닌가? 중국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도 우리는 일본과 달라야만 할 것이다. 이후 천천히 시간이 날 때마다 왕안석의 평전을 적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평전은 가능한 한 평이하게 적으면서도 약간 저자의 목소리를 담으려 하였다. 교양적인 서적이되 왕안석과 관련한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를 충실히 소개한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더불어 정치가이면서도 문인이었던 왕안석의 면모를 살리고자 하였다. 정치가였던 왕안석에 대해서는 비판과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인으로서의 왕안석을 두고서는 고래로 찬사가 쏟아졌다. 왕안석이란 인물의 종합적 이해를 위해서는 자신만만하고 독선적이었던 정치가의 면모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치를 구사하는 문학가의 심성도 돌아보아야만 할 것이다. 이 평전에서는 명시, 명문장이라 평해졌던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왕안석의 생애와 행동을 살펴본다는 방침을 지니려 하였다. 하지만 재주가 없다 보니 그다지 쉽지도 않고 그렇다고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닌 어설픈 내용이 되어 버렸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왕안석이란 인물, 그리고 중국 중세사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관심을 지닐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왕안석은 11세기 중엽을 살아간 중국 역사상 최대의 개혁가이다. 그가 주도한 개혁은 ‘신법’이라 일컬어진다. 신법으로 말미암아 중국 중세의 역사는 커다란 굴절을 맞이하였다. 왕안석의 개혁은 통상, ‘강자의 횡포 견제와 약자에 대한 보호’라는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이른바 구법당의 신법 반대도, 그들이 강자인 대지주 및 대상인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집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삼라만상이 다 그러하듯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은 매우 복잡한 면모를 가진다. 왕안석의 신법을 과거 유물사관의 시각대로 오로지 계층적 이해관계에 입각하여 해석하는 것은 결코 온당치 않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지방관 역임 시기

제1장 청년 시절과 과거 응시
1. 출생과 가족관계
2. 왕안석의 고향
3. 학업과 과거 합격
제2장 지은현 시기의 활동
1. 최초의 관직 - 첨서회남판관 시기
2. 은현 지사로의 부임
3. 은현을 떠나가는 아쉬움
제3장 서주통판으로부터 강동제형까지
1. 서주통판 재임 전후의 일들
2. 최초의 중앙관 생활 – 군목판관
3. 지상주와 강동제형 시기
제4장 <만언서>와 <명비곡>의 작성
1. <만언서>의 상주
2. <명비곡>과 이를 둘러싼 논란
제5장 짧은 중앙관 생활과 모친상
1. 5년여에 걸친 중앙관 생활
2. 모친상과 낙향

제2부 신법의 주도와 당쟁

제1장 신종의 발탁과 신법 시행
1. 청년 황제 신종의 즉위
2. 왕안석의 발탁과 부재상 임용
3.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의 설립과 폐지
제2장 신법의 내용
1. 재정 확보책과 관련한 개혁
2. 군사력 강화를 위한 개혁
3. 신법의 재정절감 효과
제3장 구법당의 비판과 당쟁
1. 신법에 대한 구법당의 비판
2. 왕안석과 사마광의 결별
3. 신법당 진영의 사람들
제4장 대외 전쟁의 전개
1. 북송 초기의 대외 관계
2. 서하 공략을 위한 준비
3. 베트남과의 전쟁과 국경 교섭
제5장 실각과 정계 은퇴
1. 1070년대 초의 정계와 왕안석
2. 여혜경의 왕안석 공격
3. 왕안석의 정계 은퇴

제3부 만년의 생활과 타계

1. 만년의 거주지 반산원(半山園)
2. 은퇴 후의 유유자적과 교유
3. 와병과 작고

제4부 왕안석에 대한 평가

1. 북송말의 정국 변화와 당쟁
2. 남송 시대 왕안석을 둘러싼 논란
3. 원대 이후 왕안석 평가의 변천

왕안석 관련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머리말 제1부 지방관 역임 시기 제1장 청년 시절과 과거 응시 1. 출생과 가족관계 2. 왕안석의 고향 3. 학업과 과거 합격 제2장 지은현 시기의 활동 1. 최초의 관직 - 첨서회남판관 시기 2. 은현 지사로의 부임 3. 은현을 떠나가는 아쉬움 제3장 서주통판으로부터 강동제형까지 1. 서주통판 재임 전후의 일들 2. 최초의 중앙관 생활 - 군목판관 3. 지상주와 강동제형 시기 제4장 〈만언서〉와 〈명비곡〉의 작성 1. 〈만언서〉의 상주 2. 〈명비곡〉과 이를 둘러싼 논란 제5장 짧은 중앙관 생활과 모친상 1. 5년여에 걸친 중앙관 생활 2. 모친상과 낙향 제2부 신법의 주도와 당쟁 제1장 신종의 발탁과 신법 시행 1. 청년 황제 신종의 즉위 2. 왕안석의 발탁과 부재상 임용 3. 제치삼사조례사(制置三司條例司)의 설립과 폐지 제2장 신법의 내용 1. 재정 확보책과 관련한 개혁 2. 군사력 강화를 위한 개혁 3. 신법의 재정절감 효과 제3장 구법당의 비판과 당쟁 1. 신법에 대한 구법당의 비판 2. 왕안석과 사마광의 결별 3. 신법당 진영의 사람들 제4장 대외 전쟁의 전개 1. 북송 초기의 대외 관계 2. 서하 공략을 위한 준비 3. 베트남과의 전쟁과 국경 교섭 제5장 실각과 정계 은퇴 1. 1070년대 초의 정계와 왕안석 2. 여혜경의 왕안석 공격 3. 왕안석의 정계 은퇴 제3부 만년의 생활과 타계 1. 만년의 거주지 반산원(半山園) 2. 은퇴 후의 유유자적과 교유 3. 와병과 작고 제4부 왕안석에 대한 평가 1. 북송말의 정국 변화와 당쟁 2. 남송 시대 왕안석을 둘러싼 논란 3. 원대 이후 왕안석 평가의 변천 왕안석 관련 연표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이근명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주로 중국 중세사(송대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역사학회 회장, 송원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주된 저작으로, &#-9342;&#-9132;남송시대 복건 사회의 변화와 식량 수급&#-9342;&#-9131;(신서원, 2013), &#-9342;&#-9132;왕안석 자료 역주&#-9342;&#-9131;(HUine, 2017), &#-9342;&#-9132;아틀라스 중국사&#-9342;&#-9131;(공저, 사계절, 2007), &#-9342;&#-9132;송명신언행록&#-9342;&#-9131;(편역, 전4권, 소명출판, 2019), &#-9342;&#-9132;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1 ․ 2&#-9342;&#-9131;(공저, 신서원, 2010) 등이 있다.
이근명
서울대학교 문학박사, 중국 중세사 전공.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아틀라스 중국사 | 이근명 | 사계절
   시대를 넘어서다 | 이근명 | 지식의날개
   왕안석 자료 역주 | 이근명 | HUINE
   송원시대의 고려사 자료 2 | 이근명 | 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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