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는 일본 천황의 통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일본 천황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때부터 최근까지 시대별로 개관하여 독자들이 천황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집필했다. 그동안 한국에서천황 관련 서적이 몇 권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주로 근대 천황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또 고대 천황이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설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들이 학문의 성과를 반영한 것을 아니었다. 특히 중세와 근세의 천황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 안개 속에 가려져 있었다. 필자가 ‘천황의 일본사’를 간행함으로써 비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천황상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천황 가문의 역사를 조명한 것이 아니다. 천황은 일본 역사의 핵과 같은 존재이다. 일본 역사의 중심에는 항상 천황이 있었다. 천황을 빼놓고 일본 역사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천황을 중심으로 일본사를 개관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러한 작업이 일본사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장 왕의 출현 1. 역사의 여명 1)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바닷길 2) 조몬 문화 시대 2. 새 시대를 연 도래인 1)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 2) 벼농사 전래 3) 야요이 토기와 금속기 3. 왜국의 왕 1) 권력자 출현 2) 왜인과 왜국 3) 야마타이국의 여왕 제2장 일본사의 공백기 1. 왕권의 성장 2. 초기 야마토 정권 3. 야마타이국과 야마토 정권 1) 규슈 설 2) 기나이 설 4. 기마민족정복설 제3장 가와치 왕조 1. 새로운 왕권의 성립 2. 왕조의 창립자 3. 왜의 5왕 4. 야마토 천도 5. 도래인과 왕권 제4장 게이타이 왕조 1. 게이타이 천황 2. 오오미 · 오무라지 제도 확립 3. 게이타이 왕조와 한반도 1) 게이타이 시대 2) 긴메이 시대 4. 호족의 반란 제5장 대왕에서 천황으로 1. 아스카 시대 2. 소가씨의 권세 3. 을사의 변 4. 개혁 정책 5. 동북아 정세의 급변 6. 임신의 난 7. 텐무 천황 8. 지토 천황 9. 율령 편찬 제6장 나라 시대 1. 후지와라씨 출현 2. 천도 계획 3. 헤이조쿄 조영 4. 나라 시대의 정치 제7장 헤이안 시대 1. 간무 천황 2. 섭관 정치 1) 후지와라씨 북가 대두 2) 초기 섭관 정치 3) 섭관정치의 전성 3. 원정 시대 1) 고산조 천황 2) 원정의 성립과 전개 4. 무사의 세상 1) 미나모토씨 동향 2) 다이라씨 동향 3) 무사의 난 5.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의 싸움 1) 다이라씨 정권 2) 내란 일어남 3) 다이라씨 멸망 제8장 가마쿠라 시대 1. 고시라카와 법황과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2. 조정과 막부의 관계 3. 고토바 상황 4. 천황의 즉위 문제와 가마쿠라 막부 5. 고다이고 천황 6. 겐무의 신정 제9장 무로마치 시대 1. 남북조 내란 2. 남북조 통일 3. 오닌 난과 그 영향 4. 전국시대 천황 1) 고카시와바라 천황 2) 고나라 천황 3) 오기마치 천황 제10장 오다 · 도요토미 시대 1. 오다 노부나가와 천황 2.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천황 제11장 에도 시대 1.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천황 2.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천황 3. 막부의 조정 통제 4. 막부와 조정의 협력 시대 5. 존왕론의 전개 6. 막부 말기의 정세와 천황 제12장 근대 · 현대 1. 메이지 천황 1) 메이지 정부 수립 2) 모습을 드러낸 천황 3) 황민화 교육과 천황 4) 헌법과 천황 5) 군대와 천황 2. 쇼와 천황 1) 우익세력과 천황 2) 군부와 천황 3) 전쟁과 천황 4) 패전 후의 천황 참고문헌 역대천황125대 색인

1) 권력이 없는 천황이라고 하지만, 천황의 존재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의 가슴 속에 천황은 ‘살아있는 신’이라는 신앙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서문) 2) 무소불위의 권력을 천황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 근대 천황제는 일본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입니다. 전근대 천황은 그런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6세기 말부터 일본의 역사서에 조정朝廷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조정의 의미는 중국이나 한반도 국가의 그것과 성격이 달랐습니다. 조정은 지방의 호족들로 구성된 정치적 연합체였다. 대왕(천황)은 조정의 구성원인 호족을 정신적으로 통합하고, 호족 상호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권위적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서문) 3) 우리 민족의 불행 뒤에는 일본 침략이 있었습니다. 특히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은 ‘천황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범죄였습니다. 천황은 우리에게 공포심과 수치심을 동시에 안겨준 일본제국의 수괴입니다. 우리에게는 천황에 대한 거부반응이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天皇의 ‘皇’ 자에 대한 저항감도 있을 것입니다. (서문) 4) 한반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본 열도로 건너왔을까? 도쿄대학 이학부 교수를 역임한 하니와라 가즈로埴原和？(1927-2004)의 연구에 따르면, B.C 3세기에서 A.D 7세기 사이에 약 1000년간 토종 일본인과 주로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온 도래인의 비율이 1 : 9 정도였다. 10명 중 9명이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온 사람의 혈통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21p) 5) 연구자들은 10대 스진은 실재한 인물로 보고 있다. 『일본서기』에 그의 일본식 시호가 하스쿠니시라스스메리미코토御肇？天皇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쓰쿠니는 ‘처음으로 나라를 열었다’는 뜻이고, 스메라미코토는 통치자를 이르는 말이다. 한자로 ‘天皇’라고 쓰고 스메라미코토로 읽었다. 『고사기』에는 하쓰쿠니시라스미마키스메리마코토初？御？木天皇라고 되어 있다. 天皇을 ‘미코토’로 읽기도 했다. 미마키御？木는 한반도 남부의 가야를 이르는 말인데, 일본인들은 가야 지역을 미마나로 표현하기도 한다. 요컨대, 스진은 ‘처음 나라를 연 가야의 천황’이라는 뜻이다.(38p) 6) 일본을 점령한 북방 기마민족이 구체적으로 어떤 민족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고구려 · 부여 · 예맥 종족이 모두 만주에 거주하던 퉁구스 계통이므로, 바다를 건너 일본을 침략한 민족도 역시 퉁구스 계통의 종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야마토 정권과 백제의 왕족이 아주 각별한 관계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천황 가문은 물론 유력한 호족 가문도 부여 계통이었을 것이다.(49p) 7) 아스카 시대부터 조정朝廷이라는 말이 역사서에 자주 나오는데, 이 시대의 조정은 중국의 그것과 성격이 달랐다. 조정은 야마토 지방의 호족들로 구성된 정치적 연합체였다. 대왕(천황)은 조정의 구성원인 호족을 정신적으로 통합하고, 호족 상호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권위적 존재에 불과했다. 중국과 한반도 국가의 군신관계와 달랐다.(89p) 8) 천황이 양위하고 권좌에서 물러나면 태상천황이라고 한다. 태상천황이 정식 호칭이고 상황은 약칭이다. 이런 관례는 고려나 조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법황이라는 개념은 일본사에만 있다. 일본에서는 상황이 출가해 승려의 신분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경우 태상법황이라고 했다.(163p) 9) 가마쿠라 막부는 교토에 천황과 귀족을 감시하는 기관을 설치하며 조정의 개혁에 착수했다. 막부에 협조적인 귀족이 실권을 장악하게 했다. 조큐의 난을 계기로 조정과 막부의 이원적 지배가 크게 변화했다. 막부로 대표되는 무사정권이 조정으로 대표되는 천황 · 귀족 정권을 압도했다. 막부의 정치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천황이 즉위할 때도 막부가 깊이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193p) 10) 오닌의 난은 무로마치 막부가 붕괴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막부는 일본사회를 통괄하는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쇼군의 명령은 유명무실해졌다. 쇼군의 영향력이 미치는 지역은 겨우 교토 일대에 불과했다. 천황의 권위도 실추되었다. 막부의 쇼군과 다이묘는 천황을 돌보지 않았다. 조정은 겨우 전통적인 권위를 유지할 뿐이었다. 천황의 생활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궁핍했다.(219p) 11) 막부의 경제적 지원이 끊긴 천황과 조정에 봉직하는 귀족의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주고, 시가를 가르쳐 주고 약간의 돈을 받아 생활하는 귀족도 있었다. 약을 제조하여 생계를 잇는 귀족도 있었다. 고나라 천황도 가난을 피하지 못했다. 고나라는 직접 족자나 병풍에 글씨를 써서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225p) 12) 노부나가는 천황과 쇼군의 권위를 영악하게 이용했다. 노부나가는 천황에게 자신이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1570년 4월 노부나가는 오미 지방을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천황은 궁중에서 며칠 동안이나 기도하면서 노부나가의 전승을 기원했다. 천황이 응원하는 노부나가군은 이미 관군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237p) 13) 1585년 7월 히데요시가 관백의 지위에 올랐다. 천황은 이때부터 이세 신궁에 명하여 히데요시가 출진할 때마다 무운장구를 기원하도록 했다. 유서 깊은 신사나 사원에서도 히데요시를 위해 기도했다. 히데요시의 출진 그 자체가 성스러운 전쟁으로 여러 신과 부처의 가호를 받았다. 심지어 히데요시가 병에 걸렸을 때도 사원에서 기도회가 열렸다.(248p) 14) 1603년 3월 25일 이에야스는 고요제이 천황을 알현하기 위해 궁전으로 향했다. 정이대장군 서임에 대한 답례 형식이었다. 귀족들은 궁전의 정문까지 나와 이에야스를 맞이했다. 이에야스는 고요제이 천황에게 은화 1,000매, 천황 비 2명에게 각각 은화 200매, 왕자에게 은화 100매, 상궁에게 은화 80매 등을 헌상했다. 하급 궁녀들에게도 신분에 따라 빠짐없이 은화를 나누어주었다.(259p) 15) 다케우치 시키부는 학생들에게 유학 서적 외에 『일본서기』의 신대권神代卷, 아사미 게이사이의 저서 등을 교재로 사용하며 명분론과 존왕론을 고취했다. 시키부는 세상 사람들이 “쇼군이 있는 것은 알고, 천황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시키부의 천황을 존숭하는 강의는 오랫동안 무가 정권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귀족 자제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286p) 16) 일본의 조정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개원 즉, 연호를 바꾸었다. 어떤 천황 치세에는 여러 번 개원하기도 했다. 18세기 말부터 여러 유학자가 일세일원제 즉, 천황 재위에 한 번의 연호를 사용해야 좋다고 주장했다. 근대국가가 성립된 후, 메이지 정부는 일세일원제를 채택했다.(305p) 17) 1868년 정월 신정부의 실력자 오쿠보 도시미치가 궁정 개혁안을 제출했다. 오쿠보는 다음과 같이 제언했다. (1) 천황이 관료 회의에 참석할 것 (2) 천황이 정무를 볼 때는 궁녀의 출입을 금할 것 (3) 매일 정부 수뇌부와 접촉할 것 (4) 지식인을 측근으로 두어 국내외 정세를 공부할 것 (5) 말을 타눈 훈련을 할 것. 오쿠보는 천황의 일상생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려고 했던 것이다.(309p) 18) 제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제2조 천황의 지위는 황실전범이 정한 바에 따라 천황 자손이 이를 계승한다 제3조 천황은 신성神聖하여 범할 수 없다(324p) 19) 천황은 도조 히데키에게 당부했다. “헌법의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라. 시국이 극도로 중대한 사태에 직면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육군 · 해군은 더욱 협력해야 한다는 것에 유의하라.” 내대신 기도는 천황의 집무실에서 나온 도조를 따로 불러 말했다. “국책의 대본을 결정할 때는 9월 6일의 어전회의에 구애되지 말고 내외의 정세를 다시 넓고 깊게 검토해서 신중하게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천황의 명령에 따라서 그 뜻을 전한다.”(364p) 20) 1946년 정월 1일 쇼와 천황이 조서를 발표했다. 쇼와 천황은 조서에서 천황과 국민은 “상호 신뢰와 경애”로 맺어지는 것이며, “단지 신화와 전설”에 의한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리고 “천황을 살아있는 신으로 받들고, 또 일본인을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공의 관념”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소위 천황의 ‘인간선언’이었다.(38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