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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독립운동사 : 부록 한국 인도 독립 운동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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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인도사
저자 조길태
출판사/발행일 민음사 / 2017.08.31
페이지 수 764 page
ISBN 9788937434495
상품코드 269456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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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틸락에서 간디에 이르는 인도의 전투적 비폭력 독립운동사, 200년간 지속된 영국의 치밀한 제국주의에 맞서다 40년간 인도사 연구에 전념해 온 역사학자 조길태 교수가 세포이 항쟁 전후 200년간 인도 독립운동의 역사를 방대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술했다. 인도의 독립 운동사는 영국의 제국주의와 인도의 민족주의가 충돌한 역사이다. 영국의 원대하고 치밀한 제국주의 정책은 열강들의 식민 정책의 표본이 되었고, 이에 대한 인도의 저항운동은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전개한 독립운동의 모범이 되었다. 이 책은 국산품 애용운동인 스와데시운동에서 시작하여 자치운동, 농민운동, 간디가 주도한 범국민적 사티아그라하운동 등을 총망라하여 다루었으며, 특히 마하트마 간디와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활동은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서술을 유지하면서도 거침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썼다. 인도 독립운동의 핵심은 간디가 주도한 범국민적 운동이다. 간디의 독립운동은 무기력한 평화주의 이론가의 활동이 아닌, 용감한 아나키스트의 저돌적인 투쟁이었다. 국민회의와 농민 ·노동자가 함께 열광적으로 참여하는 간디의 비폭력비협조운동과 시민불복종운동의 물결 속에서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혁명적 애국운동은 곧잘 묻히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독립운동 또한 자세히 서술했다. 최고의 명예와 부가 약속된 인도문관직을 포기하고 인도국민군의 사령관으로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의 애국 활동은 매우 감동적이며, 모험적이고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마지막 장에는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인도 국민의 애국 투쟁과 비교한 부록을 실어 우리의 역사를 세계사 속에서 조명했다. 1947년, 인도는 200년간의 식민지를 종식하고 자유를 찾았으나 광복과 동시에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립되는 비극을 맞는다. 한 민족이었던 두 국가는 현재 서로 핵무장을 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과 열강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해 그 어느 때보다도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한반도의 현주소에서 이 책은 우리의 역사와 상황을 반추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이 현 난관을 대처해 나아가는 데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이다. 침략적 민족주의인 제국주의와 생존을 위한 민족주의가 처절하게 충돌한 인도 독립운동의 역사 영국의 인도 지배는 약 2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세포이 항쟁(1857~1858)을 경계로 이전 100년은 영국동인도회사가 지배했고 이후는 영국 정부가 직접 다스렸다. 영국 입장에서 볼 때 영국의 인도 통치는 정치적 통일, 법과 질서, 평화, 서구식 교육과 철도의 도입 등, 인류애에 입각한 자랑스러운 역사였다. 인도아대륙은 영국의 스무 배 크기로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체와 견줄 만했다. 영국은 이 광대한 지역을 통합했고 인도 사회의 인종, 계급, 언어, 종교, 풍습 등 수많은 분열상을 극복하도록 도와, 유혈과 폭력의 국가에 통일과 질서를 부여했으며, 법의 지배에 입각한 민주국가의 길을 견고하게 다지는 위업을 달성했다. 산업혁명을 거친 선진 과학 기술을 인도에 도입하여 산업국가의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기도 했다. 그러나 인도 민족주의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영국동인도회사가 처음 벵골 지방으로 진출하여 10여 년 동안 자행한 수탈 행태의 결과는 인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재난이었다. 벵골주민의 3분의 1인 약 1000만 명이 아사 혹은 병사하는 참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증유의 기근은 동인도회사의 무자비한 수탈로 주민이 만성적인 빈곤에 처해 있었으므로 그 피해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는 영국의 원료 공급지이자 수요지인 상품 시장으로서 전형적인 식민지의 모습으로 추락했다. 수 세기 동안 세계 최고의 지위를 자랑하던 전통 면직물 산업은 비참하게 몰락했다. 반면, 상업·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동인도회사가 보인 집요한 상업적 이익 추구와 수탈은 계속되었다. 인도 민족주의자들의 눈으로는 인도의 처참한 빈곤과 모든 어두운 문제들은 영국의 제국주의 통치와 그 정책에서 파생된 것들이었다. 인도국민회의가 출범한 1885년은 ‘새 인도’가 시작하는 해였다. 국민회의는 인도 민족주의운동의 구심점으로서 독립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범국민적인 독립운동은 항상 국민회의가 뒷받침해 주었다. 간디가 곧 국민회의이고 국민회의가 곧 간디였다. 그러나 영국인 관리에 의해 전략적으로 설립된 국민회의는 처음에는 매우 온건하고 영국 정부에 충성적인 집단으로 출발했다. 처음으로 인도의 일반 대중이 다수 참여한 애국운동인 스와데시(국산품 애용)운동은 인도 국민운동과 국민회의의 성격에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벵골주민이 분기(奮起)한 것은 벵골 지방의 민족주의 세력을 양분하려는 책략에 대한 정치적 항거일 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전통 면직물 산업이 붕괴된 데 대한 경제적 항거였다. 국민회의가 인도의 지식층에게 조국에 대한 고상한 애국심을 심어 주었다면 스와데시운동은 다수의 신세대에게 민족적 자각의 씨앗을 심어 주었다. 스와데시운동은 인도인들에게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고 협동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이 위력적인 애국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국민회의 내에서도 영국 정부에 친화적인 국민회의의 활동에 비판이 일어났다. 온건파와 과격파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고칼레와 온건파는 국민회의를 변질시키려는 틸락과 오로빈도 등 소수 과격파를 폭력으로 축출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이 전개되면서 틸락을 비롯한 과격파는 10년 내에 권토중래하여 자치운동을 이끌며 국민회의로 되돌아왔고 온건파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간디의 출현과 범국민적 사티아그라하운동의 전개 간디의 출현은 인도 독립운동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했다. 인도 국민회의의 온건파와 과격파는 간디를 통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세력으로 하나가 되었다. 간디는 온건파와 과격파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를 전국적으로 규합하여 위력적인 독립운동으로 몰아갔다. 비폭력을 무기로 들고 나온 간디는 처음으로 범국민적인 사티아그라하운동을 시험 무대에 올렸다. 간디의 첫 번째 범국민적 사티아그라하(“진리의 힘”)운동인 비폭력비협조운동은 펀잡 지방의 영국군의 학살과 연합국의 터키에 대한 응징에 반항한 것이었다. 비폭력비협조운동은 행정부와 법원 및 학교 등을 배척하고 이것들을 새로이 민족적 근거 위에 재건하는 것이었다. 힌두와 무슬림이 함께 참여한 비협조운동은 일반 대중을 인도 전역의 시민 광장으로 집결시켰으며 새로운 단계의 독립 투쟁의 가능성과 자신감을 일으켜 준 범국민적 운동이었다. 1930년에 2차 사티아그라하운동인 시민불복종운동이 일어났다. 인도의 완전 독립을 주장한 시민불복종운동은 간디의 권위와 영향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추진되었다. 간디는 앞장서서 법을 위반하는 행동, 즉 염세를 전국적인 규모로 위반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비폭력적 시민불복종은 법이 규정한 처벌을 의도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운동을 통해 오랫동안 두려움에 사로잡혀 온 국민에게서 공포심을 제거하고 억압자에게 저항하는 용기와 힘을 심어 주려 했다. 이는 인도의 사회적 개혁 내지 혁명으로 연결하는 길이었다. 국민운동을 통하여 간디는 불가촉천민과 여성들을 직접 어울려 행동하는 협력자로 만들었다. 학대받는 사람 편에 서서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간디의 필생의사명이었다. 인도철퇴운동은 영국에 대항한 마지막 자유 투쟁이었다. 독립운동의 최종 단계가 될 수 있는 투쟁에서 고귀한 생명까지도 희생할 수 있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인도제국의 독립과 인도·파키스탄으로의 분립 인도철퇴운동은 폭동으로 진화했고 종전 후 종파적 충돌이 격화되어 갔다. 인도철퇴운동 이후 간디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독립이 가까워짐에 따라 간디와 국민회의 사이의 긴장 관계는 되돌릴 수 없게 악화되었다. 국민회의 지도자들은 영국인 통치자들이 넘겨줄 엄청난 전리품에 대한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다. 일단 주도권이 국민회의로 넘어가자 간디는 정치적 으로 효용 가치가 없었다. 아무런 사심이나 정치적 야욕이 없는 간디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립으로 나아가는 정치적 현실이었다. 영국 정부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도 분명히 획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정권 이양을 완료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약 200년의 영국 지배를 종식시키고 영광의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역사적 전통을 함께해 왔던 인도가 종교가 다르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립되어 버린 날이기도 했다. 이날은 영광스러운 독립기념일이지만 그보다는 인도아대륙이 분열하는 인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목차
책머리에 서언 1장 인도 스와데시운동 1절 인도 스와데시운동 1 스와데시운동의 태동 2 벵골주 분할 정책 3 스와데시운동의 전개 4 스와데시운동의 효과 5 국민회의의 반응과 바드라록 계층 6 무슬림의 반응 7 맺음말 2장 자치운동 1절 틸락의 자치운동 1 스와라지(자치) 이론 2 인도자치연맹의 활동 3 틸락의 ‘상응하는 협조’ 이론 4 맺음말 2절 애니 베산트의 자치운동 1 자치연맹의 결성과 목표 2 자치운동의 전개 3 정부의 탄압 4 맺음말 3장 간디의 독립운동 1절 간디의 사상 1 남아프리카에서 사티아그라하의 실험 2 사티아그라하의 의미 3 사티아그라하의 실천적 목표 4 맺음말 2절 인도에서의 첫 사티아그라하운동 1 참파란의 사티아그라하운동 2 아메다바드의 사티아그라하운동 3 케다의 사티아그라하운동 4 맺음말 3절 비폭력·비협조운동 1 간디는 고칼레의 계승자인가, 틸락의 계승자인가? 2 라우라트법, 암리차르 학살, 킬라파트운동 3 국민회의가 간디의 비협조 계획을 수용 4 비폭력·비협조운동의 전개 5 비폭력·비협조운동의 한계 6 맺음말 4절 시민불복종운동 1 사이먼위원회와 국민회의의 반응 2 소금 행진 3 정부의 탄압 정책과 시민불복종 4 간디·어윈 협정과 원탁회의 5 시민불복종의 재개 6 맺음말 5절 인도 철퇴(撤退)운동 1 2차 세계대전과 인도의 정세 2 일본군의 침공 위협과 크립스 사절단 3 인도 철퇴운동의 결의 4 폭동 5 정부의 탄압 6 맺음말 4장 수바스 찬드라 보스와 인도 국민군 1절 수바스 찬드라 보스와 인도 국민군 1 인도문관직을 버리고 독립운동의 길로 2 벵골 투사에서 국민회의 의장으로 3 국외 탈출에서 잠수함 밀항까지 4 인도 국민군 사령관 5 인도 영내로 진격 그러나 철수 6 맺음말 5장 인도 농민운동 1절 인도 농민운동의 성격 1 조세 제도 2 농민의 지위 3 농민 폭동 4 맺음말 2절 농민운동과 독립운동 단체들과의 관계 1 농민협회의 성립과 그 활동 2 농민운동과 국민회의와의 관계 3 농민협회와 급진 세력과의 관계 4 맺음말 결론: 독립의 영광과 분립의 비극 부록: 한국과 인도 독립운동의 비교(試論) 한국과 인도 독립운동의 비교(試論) 1 대서양권 혁명, 아시아권 민족주의운동 2 인도국민회의와 한국의 연정회 3 인도와 한국의 지방자치제 4 인도 스와데시운동과 한국 물산장려운동 5 인도와 한국의 비폭력운동 6 국외에서의 인도와 한국의 독립운동 7 인도의 테러리스트 활동과 한국의 의열 투쟁 8 맺음말 지도 화보 영국의 벵골 지사, 인도 총독, 인도국민회의 의장 인도 독립운동사 연표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간디의 철학과 정치적 활동은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다. 간디를 위대한 성자(聖者)로 혹은 약삭빠른 정치적 조정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간디는 항상 인도라는 생각과 함께 나아갔지만 동시에 가장 세계화된 사람으로서 그의 비폭력과 세계 평화의 이념은 오늘날 전 인류의 신조이다. 그는 전통주의를 고수하면서도 근대적 시민 사상을 외치는 보수주의자이자 급진주의자였다. 간디는 소박한 애국자로 혹은 철학적 아나키스트로 평가받기도 했다. 간디는 인도 국민의 힘을 강화하고 영국의 통치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비폭력을 사용했다. 비폭력 행동은 소극적 저항이 아닌 적극적 투쟁이었다. 통치권에 대한 국민의 협조와 복종을 철회함으로써 지배자의 힘의 원천을 차단해 버리는 것이었다. 간디는 폭력의 지지자도 아니었고 양심적인 반대자도 반전(反戰)주의자도 아니었으며 ‘폭력 없는 전쟁’의 실험자였다. 그는 자신도 인정한 바와 같이, 시위, 하르탈, 피케팅을 곧잘 주동하는 출중한 조직 능력을 갖춘 아나키스트였다. 간디가 독립운동을 이끌어 가면서 무력 투쟁 대신에 비폭력 저항운동의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에 영국도 폭력 진압 일변도가 아닌 자제심을 보일 수 있었다. 간디의 비폭력운동은 영국인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나아간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저자
조길태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인도 델리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과 강원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거쳐 아주대학교 사학 전공 교수로서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명예교수로서 아주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인도사], [인도 민족주의 운동사], [영국의 인도 통치정책], [인도와 파키스탄 —그 대립의 역사], [세계문화사](공저), [개관 동양사](공저), [인도의 오늘](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서양 문명의 제 문제](공역), [서양사 신론](공역), [봉건제도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공역) 등이 있다.
   영국의 인도 통치 정책 | 조길태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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