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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백인인가? : 미국의 인종 감별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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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미국/캐나다사
저자 진구섭
출판사/발행일 푸른역사 / 2020.10.19
페이지 수 332 page
ISBN 9791156121749
상품코드 34019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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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200년이 채 못 되는 인종 구분의 역사 지은이에 따르면 인종과 인종 혐오의 역사는 짧다. 고전 문학과 고대 언어에는 ‘인종’에 상응하는 낱말이나 개념이 없었다. 중세 이전에는 ‘우리’와 ‘그들’을 가르는 기준은 신체적 특징이 아니라 문명과 종교였다. 이집트ㆍ그리스ㆍ로마ㆍ초대 기독교의 문학과 미술에 나타난 ‘흑인 이미지’를 낱낱이 살핀 프랭크 스노든은 고대 사회에서 검은 피부가 차별의 토대가 된 예가 없다고 주장했다(169쪽). 그러던 것이 16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신대륙의 낯선 사람들을 접하고, 착취를 위한 논리적 근거를 위해 외모의 차이가 기준이 되었다. 결국 ‘인종’은 17세기부터 19세기 초반에 걸쳐 인간이 임의로 만들어낸 발명품이라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1680년대 후반 아메리카 식민지 전역에서 ‘백인’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다든가 남아공에서는 흑인을 구분하기 위해 머리카락에 연필을 찔러 넣는 ‘연필 테스트’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소개한다. 미국의 비백인 차별, 그 뿌리와 실태 책은 미국사는 흑인 차별과 더불어 진행됐음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실증한다. ‘제헌의회’는 흑인의 ‘몸값’을 백인의 5분의 3으로 계산했다. 그렇게 인구수를 따져 각 주의 하원 의석을 배정했다(57쪽). 그렇다고 흑인만 차별한 것이 아니었다. 이탈리아ㆍ그리스 이민자들은 한동안 흑인 학교에 배정되거나 백인 전용 카페 출입이 금지되는 등 ‘앵글로 색슨족’이 아닌 동남부 유럽인들은 2등 백인 취급을 받았다. 1676년 흑인과 백인 노동자가 연합해 일으킨 ‘베이컨 반란’을 계기로 백인 노동자 회유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증조부모 대까지 흑인 한 사람만 포함되어 있어도 흑인으로 간주하는 ‘8분의 1 혈통분수법’, 비백인과 결혼한 백인 여성은 시민권을 박탈하는 버지니아주의 ‘인종 보전법’ 등 위세를 부렸다. 나아가 흑인 피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흑인으로 간주하는 ‘피 한 방울의 법칙’은 1910년 테네시주에서 입법된 이래 1967년 위헌 판정을 받을 때까지 인종 판정의 유일한 기준으로 효력을 발휘했다. 미국의 ‘흑역사’다. 종교ㆍ과학ㆍ법이 합작한 흑인 차별 역사 미국의 인종차별은 제도적ㆍ사회적으로 이뤄졌고 이를 법은 물론 종교와 과학이 이론적 뒷받침을 했음을 지은이는 여실히 보여준다. 교회는 백인은 신에 의해 ‘생래적 주인’으로 점지되었으며 “검둥이는 인간과 다른 별도의 존재”라고 설파해 흑인 노예를 인간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취급하는데 이바지했다. 과학은 인류의 복수기원설을 내세웠다. 흑인은 동물 바로 위라는 ‘존재의 대사슬’에서 흑인은 동물 바로 위라는 이야기였다. 이는 유럽에서 시작됐지만 노예해방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830년대 미국에서 꽃을 피웠다. 법은 말할 것도 없다. 독립 초기 노예법이나 인종 간 금혼법, 귀화법, 그리고 ‘인종 전제조건’ 사례는, 결국 인종 분류가 사회적 구분임을 보여주고 있다. 법원 판사는 판결을 통해 인간 겉모습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인종 ‘창안’에 기여했다(278쪽). 그러나 지난 220년 동안 실시된 미국 인구조사에서 인종 범주가 24번이나 바뀐 사실은 인종의 구분이 얼마나 자의적인지 보여준다. ‘모범 소수인종론’에 포섭된 한국인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접근한 것이다. 열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 제1차 세계대전에도 미군으로 참전했으나 미국 시민권이 거부된 차의석 사건(114쪽)은 여느 인종차별 연구서에서는 만나기 힘들 터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하와이 한국인은 계엄령이 해제되는 1944년 말까지 신분증 지참, 예금 인출 제한, 부동산 매매 금지, 통행 금지, 단파 라디오 소지 금지, 군사 당국 허가 없는 주소ㆍ직업 변경 금지 등 적국 출신 국민에게 적용된 모든 제약을 감내해야 했던 사실(135쪽)은 어떤 책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한국인이 일본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한 과정, 중국인ㆍ일본인과 더불어 흑인보다는 우수한 인종이라는 ‘모범 소수인종론’에 포섭되기까지의 힘든 역정을, 지은이는 촘촘하게 드러낸다. 인종과 인종주의는 미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종과 인종주의는 더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에도 이미 미국식 ‘인종 질서’가 뿌리를 깊게 내린 채, 개개인의 인간관계와 세계관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지 인종이라는 ‘딱지’가 계층ㆍ성ㆍ학연이나 지연ㆍ국적ㆍ장애 등으로 치환될 수 있는 만큼 미국의 인종 담론이 우리 사회의 인종 혐오나 갑질문화를 이해하는 데 통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미 있고 유익하면서 흥미롭기까지 하다.
목차
들머리: 인종주의, 미국사의 응달 1부 만들어진 인종 1장 인종 혐오와 차별은 미국의 전통 이야기 1. 두 보이스의 일갈: “바보야, 문제는 인종이야” 인종화된 미국|인종 패러다임의 대전환 2장 백인 만들기: 누가 백인인가? 이야기 2. 교도소 습격 사건: 미 역사상 최악의 린칭 누가 백인인가?|백인 인종 변천사|마침내 ‘온전한 백인’이 되다 3장 흑인 만들기: 흑인 감별 잔혹사 이야기 3. 타잔과 킹콩, 그리고 백악관 원숭이 미국 헌법과 흑인의 ‘몸값’|전통적 흑인 감별법|피 한 방울 법칙|흑인 민족주의와 흑인의 인종 정체성|누가 ‘흑인’인가? 4장 황인종 만들기: 황색 노예와 명예 백인 사이 이야기 4. 록 스프링스 중국인 학살 사건 아시아인 노동자와 반아시안운동|아시아인의 인종화|황화론과 ‘모범 소수인종론’ 사이|‘아시안 아메리칸’이 되다 5장 한국인의 인종화와 인종차별 이야기 5. 살구농장 한인 노동자 봉변기 한국인의 인종화|연방 인구조사와 한국인의 인종 분류|일본인과 한국인 배척동맹|한국인 박해 사례|한국인, 미국의 ‘적국 국민’이 되다 6장 히스패닉 만들기: 민족집단인가, 인종집단인가? 이야기 6. 멕시코인 대추방 작전 미국에서 가장 몸집 큰 소수집단|스페인 식민통치와 세 개의 전쟁|‘히스패닉’ 혹은 ‘라티노’ 범주 만들기|히스패닉의 맷집과 몸집 2부 인종, 약자 억압의 이데올로기 7장 인종, “인류의 가장 위험한 신화” 이야기 7. 히틀러의 성경책 너희가 인종을 아느냐|인종의 ‘제작 연대’|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인종의 수|편견, 혐오, 차별, 인종, 민족집단 8장 인종의 파란만장한 이력서 이야기 8. 담배와 인종의 뒤얽힌 운명 기원 논쟁|초기 버지니아주: 인종이 없던 사회|흑인의 증가와 신분의 변화|인종 ‘제조’의 촉매제: 베이컨 반란|노예제 수립과 인종‘발명’|‘인종 뇌물’: 유럽계 노동자, 백인이 되다 3부 인종 굽기: 목사와 유사 과학자와 판사 9장 교회, 성경을 비틀어 인종을 짜내다 이야기 9. 남침례교 교단의 참회록 중남미 인디언 홀로코스트|인종을 둘러싼 16세기 ‘종교 논쟁’|대서양 노예무역|북미 인디언, 백인의 발명품|남부 교회, 노예제의 대변인이 되다|‘함의 저주’와 함의 흑인화 |왜곡된 성경 해석 비판 10장 과학, 인종 서열을 지어내다 이야기 10. 아가시와 흑인의 첫 상견례 미국에서의 과학적 인종주의|‘존재의 대사슬’|미국 발 복수 기원설|‘과학적 인종주의’의 3인방|복수 기원설의 유산 11장 눈먼 법, 인종 울타리를 세우다 이야기 11. 조선 청년의 미국 시민권 도전기 인종은 법의 산물|비판적 인종이론 등장|법, 인종 울타리를 짓다|시민권 취득 ‘인종 선행조건’ 판례 |미국 시민권이 뭐길래 끝머리: 혐오와 차별 허물기 주석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노예제는 분명 미국이 내세운 이상과 상충하는 제도였다. 미국은 흑인의 예속을 설명해야 했다. 궁여지책으로 미국은 ‘인종’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 미국 지배집단은 흑인은 본래부터 열등하게 태어났다는 설화를 유포했다. …… 흑인의 지적 수준은 인간과 짐승 중간쯤에 위치하기에, 흑인은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노라고도 했다(21쪽).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유전자의 99.9퍼센트가 서로 같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종’에 상관없이 인류가 유전적으로 아주 동질적이라는 의미다. 이 기념비적 연구는 사람을 몇 개의 특정 인종으로 유형화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줬다(25쪽).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은 인류를 백인과 비백인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백인을 ‘앵글로’와 ‘색슨’족으로 좁게 정의했다. 그는 아예 ‘앵글로’와 ‘색슨’족만이 지구상에서 “가장 중추적인 백인”이라 단언했다. 프랭클린의 눈에는 독일인이나 프랑스인, 스페인, 스웨덴인, 아일랜드인은 그저 피부가 “가무잡잡”한 종족일 뿐이었다(37쪽). 19세기에 지배계층이 참정권을 거의 모든 유럽계 남성에게까지 확대한 것이 백인성의 첫 번째 확장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19세기 중반경 백인 울타리의 두 번째 확장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독일계와 북유럽계, 그리고 아일랜드계 등 흔히 ‘구 이민자’로 불리던 주민이 진정한 백인 반열에 오르게 됐다(40쪽). 사학자 뢰디거는 이들(동남부 유럽계 및 유대인)의 백인 편입이 1930년대부터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뉴딜정책과 산별노조운동이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대공황 기간 중 실시된 공공 프로젝트에 남동부 유럽 이민자는 기존 백인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흑인이나 아시아계 등 다른 소수인종 노동자는 배제됐다(48쪽). 혈통 분수는 ‘백인’으로 인정된 사람에게 허용된 최대치의 흑인 피함량을 의미한다. 만약 몸속의 흑인 피 분량이 그 이상을 넘으면, 그는 비백인으로 분류되었다. …… 가장 흔히 채택된 혈통 분수는 8분의 1이었다. …… 몸에 8분의 1 혹은 그 이상의 흑인 피가 흐르면 그는 법적으로 흑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친증조 부모와 외증조 부모 여덟 명 가운데 한 명이 흑인이며 나머지 직계 자손은 모두 백인과 결혼한 상황에 해당한다. 플로리다, 메릴랜드, 조지아, 인디애나, 켄터키, 테네시, 미주리, 미시시피, 텍사스주가 8분의 1 혈통 분수법을 채택했다(63쪽). ‘혈통 분수법’과 ‘외모의 법칙’은 인종 판정 기준으로 널리 쓰였다. 일부 법원에서는 1940년대와 1950년대까지도 이 두 원칙을 인종 결정의 판결 기준으로 사용했다. 법원 판결을 통해 백인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자는 이 두 개의 장애물을 모두 통과해야 했다(64쪽). 1910년 테네시주 의회가 ‘피 한 방울 법칙’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안은 흑인을 “검은 피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으로 못 박았다. 그러자 다른 주들도 서로 경쟁하듯 ‘피 한 방울 법’을 채택했고, 연방 정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피 한 방울 독트린은 1967년 연방 대법원이 위헌 판정을 내릴 때까지 반세기 이상 인종 판정의 유일한 기준으로 행세해왔다(67쪽).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는 1988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흑인을 ‘아프리카계 아메리칸African American’으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아프리카에 뿌리를 둔 흑인이되, 미국 땅에서 노예제와 인종분리와 차별을 경험한 집단의 후손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78쪽). 중국인은 한때 흑인으로 취급됐다. 이주 초기, 남부 미시시피 지역에 정착한 소수 중국인이 있었다. 사회학자 제임스 로웬은 당시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신분이 ‘준準흑인near-Negro’이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백인 농장주와 주민은 중국인 노무자를 흑인처럼 취급했다(93쪽). 아시아 이주민은 먼저 극히 부정적 이미지로 인종화된 뒤, 곧이어 아주 긍정적 이미지로 인종화되는 반전을 경험한다. 바로 ‘황화론’과 ‘모범 소수인종론’으로 표현되는 독특한 체험이다. 두 인종화 담론의 내용은 사뭇 다르지만, 그 본질은 똑같다. 둘 다 주류집단의 소수집단 길들이기이자 그 결과였다(97쪽).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미국 조야엔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이 급격히 퍼지고 있었다. 특히 대학 캠퍼스는 반전운동의 중심이었다. 많은 아시안 2세 대학생이 두 운동에 참여했다.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의 세례를 받으며, 이들은 아시아인의 권리와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아시안 아메리칸 운동’이 태동했다(104쪽). 지난 220년간 모두 23차례 인구조사가 실시됐다. 그런데 매번 인구조사 때마다 인종 분류 방식이 달랐다. 인종 결정 기준이 번번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모두 24번이나 인종 범주가 바뀌었다. 이것은 인종 울타리가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117쪽). 한국인 이주자는 인종적으로는 비백인집단, 법적으로는 비시민권자(1952년 전까지), 문화적으로는 미국 사회에 동화할 수 없는 이방인, 경제적으로는 불공정한 경쟁자로 각인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초기 한인 이주자에 대한 인종차별의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초기 한인 이주자는 적대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차별을 겪으며 일상을 영위해야만 했다(123쪽). ‘히스패닉Hispanic’은 신조어다. 미국 행정부 훈령에 따라 만들어진 범주다. 물론 이 단어 자체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다 1970년대 중반 인구조사국이 자료 수집 방식을 바꾸고 이 용어를 빌려 쓰면서, 새 의미를 띠게 됐다. 이후 ‘히스패닉’은 중남미 여러 국가 출신을 지칭하는 포괄적 분류로 사용됐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미국에서만 그렇게 통용될 뿐이다. 정작 이들의 본국에서는 자신들을 ‘히스패닉’으로 부르지 않는다(144쪽). 중세시대의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 정서가 근대에 들어와 인종주의로 전환됐다고 주장한다. 즉, 중세 때의 종교적 불관용이 르네상스 시기와 ‘발견의 시대’에 들어와 초기 인종주의의 모태가 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럽에 인종주의가 만연한 시점을 17세기 중엽부터라고 명토 박는다. 여기서 보듯, 이교도에 대한 반감과 차별은 종교에 토대를 둔 것이었지, 신체적 특징에 기인한 게 아니었다(172쪽). 흑인과 백인 노동자가 함께 연합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을 당시 백인 인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로 해석한다. 사실 농장주가 가장 두려워한 일이 바로 유럽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의 연합이었다. 1676년에 일어난 ‘베이컨 반란’ 사태는 지주계층이 직면한 위협의 심각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201쪽). 이들은 통상적으로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중반부터 ‘영국인’이나 ‘자유인’이라는 말로 기울었다. 이어 1680년대 후반 식민지 전역에서 ‘백인’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났다. 이때 이후로 영국계 거주민은 자신을 ‘백인’으로 불렀다. 1690년에는 식민 의회가 채택한 법안 속에 백인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202쪽). 남미 대륙 원주민을 예속시키고 아프리카 대륙 흑인을 노예로 만드는 과정에서, 가톨릭 신학이 이들의 복속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고, 두 학자는 진단했다. 즉, 유럽인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온전한 인간인 반면, 인디언은 야만인으로 어쩌면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는 종교적 독트린이 인종 형성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211쪽). 교회는 노예제를 옹호하기 위해 두 가지를 시도했다. 첫째는 흑인의 비인간화다. 당시 목회자는 점차 흑인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흑인의 인간 신분을 박탈했다. …… 흑인은 에덴동산의 뱀처럼 죄악의 선조이자 문명사회에 부담이 되는 존재라는 거였다. 이에 따라 기독교 세계관 속에 아프리카인은 본질에서 흠결이 많고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며, 자연적 노예로 태어난 열등한 부류로 자리 잡아갔다. 이런 메시지는 흑인 노예를 인간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취급하는 풍토 조성에 이바지했다(220쪽). 미국 남부 목회자는 1830년대 이후 ‘함의 저주’에 새로운 의미를 덧입혔다. 함을 흑인의 직계 조상으로 만든 것이다. 고로 함의 후손은 저주의 결과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음이 성경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226쪽). 미국에서는 독립 쟁취 후 ‘존재의 대사슬’ 개념이 크게 유행했다. 자유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노예를 소유하는 데 대한 비난이 일자, 이를 옹호하는 과정에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퍼진 하나의 문화적 사조였다. 자연 속 위계라는 ‘존재의 대사슬’ 패러다임은 특히 과학자가 인간집단에 적용할 때 요긴하게 사용됐다(243쪽).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백인 여성이 비백인 외국인과 결혼하면, 마치 반역죄를 범한 것처럼 취급됐다. 또한, 비백인과 결혼한 백인 여성의 시민권도 결혼과 동시에 자동 상실됐다. 버지니아주의 〈인종 보전법〉은 1967년 연방 대법원이 ‘러빙 대 버지니아주Loving vs. Virginia’ 재판에서 위헌 판정을 내릴 때까지 계속 유지됐다(266쪽). 한국인을 비롯한 모든 아시아 이민자에게 시민권 취득의 길이 열린 것은 1952년이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귀화법〉에 인종적 제한을 두는 나라는 독일과 미국뿐이었다. 〈귀화법〉의 인종 차별적 요소에 대한 국내외의 비판이 늘면서, 〈귀화법〉 개정의 필요성이 더욱 드러났다. 결국, 연방 의회는 〈귀화법〉의 전면적 개혁에 착수해, 1952년 〈이민과 국적에 관한 법〉을 통과시켰다(278쪽).

저자
진구섭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KBS America(당시 KTE)의 저널리스트로 근무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립대(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에서 인종관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와 비교미국문화 프로그램, 미시간대 사회학과 초빙 조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은 맥퍼슨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학생과 교수가 뽑은 ‘올해의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30여 년간 미국 인종관계와 사회 불평등, 이민과 초국가주의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매달려 왔다. 특히 아시안 아메리칸 등 소수인종의 역사, 그리고 이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 왔다. 또한 미국의 인종주의와 한국의 혐오 표현이나 갑질 현상 사이의 유사성에 주목해, 이를 아우르는 글을 쓰고 있다. 《누가 백인인가?》는 이런 시도의 첫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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