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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 평전 : 광기에 맞선 이성 (원제:Triumph und Tragik des Erasmus von Rot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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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인물사
저자 스테판 츠바이크 ( 역자 : 정민영 )
출판사/발행일 원더박스 / 2022.10.12
페이지 수 280 page
ISBN 9791190136860
상품코드 355536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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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에라스무스로 답하다 20세기 최고의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예리한 시선으로 에라스무스의 삶을 추적한다. 츠바이크는 혼인이 금지된 신부의 자식, 수도원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고 스물여섯에 신학교를 빠져나와 프랑스와 영국,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한 에라스무스의 생애에서 ‘자유’라는 고결한 가치를 발굴한다. 에라스무스는 실로 그 어느 것에도, 그 누구에게도 구속되려 하지 않았다. 편협한 광신은 그가 가장 멀리한 것이었고, “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마지막까지 고수하며 자기 자신만을 대표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에라스무스 평전』은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장악한 1934년에 출간되었으며, 이듬해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다. 망명을 앞두고 종교전쟁의 혼돈 속에서 모든 극단을 거부하며 화합을 도모하고 인류애의 가치를 내세운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삶을 거울삼아 폭력으로 얼룩진 광란의 시대를 고발하고 평화를 향한 자신의 신념을 밝힌 것이다. 종교개혁의 선구자 에라스무스, 종교개혁을 거부하다 에라스무스의 대표작인 『우신 예찬』은 ‘우매함’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사치와 향락에 빠진 교회를 신랄히 풍자한 계몽주의의 효시로 꼽힌다. 동시에 이 책은 가톨릭교회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민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면서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의 의식 깊은 곳에 개혁을 향한 의지를 심어 주었다. 에라스무스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독자적인 성경 번역이었다. 그때까지 성경을 옮기는 일은 교황청의 허락하에 이루어지는, 교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행위였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에 15년이나 앞선 에라스무스의 라틴어 성경 번역은 그리스도의 삶과 멀어지고 있는 교회를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 발굴’이라는 자신의 지론을 실천한 것으로, 그가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자연히 복음주의 신앙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아흔다섯 항목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정문에 때려 박으며 종교개혁의 나팔이 울린다. 그러나 그 일을 예비한 것은 에라스무스였다. “가톨릭 신학자들이 격분해 말하듯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아 주었고, 루터가 그것을 부화시킨 것’이다.” 루터 스스로도 “누구든 자신의 생각이 에라스무스의 사상으로 가득 차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에게서 배우지 않은 자 누구이며, 그에게 지배받지 않는 자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에라스무스가 자신을 지지해 주기를 간청한다. 그렇지만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가톨릭 비판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편을 들지 않는다.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의 거친 격정과 가톨릭교회에 대한 증오 섞인 비난은 그가 가장 멀리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루터가 가톨릭교회에 반기를 든 이후 로마에서는 그를 향한 파문장이 마련되고, 많은 개혁가가 종교재판에 넘겨지며, 곳곳에서 화형대의 불길이 치솟는다. 한편 민중의 거센 혁명 의지를 마주한 개혁가들은 타락한 교회를 바로 세우겠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맹목적인 광신에 사로잡혀 점차 격렬해진다. 그렇게 그리스도교, 그리고 유럽은 둘로 갈라진다. 하지만 에라스무스는 그런 혼란과 분열에 빠져들기를 거부한다. “에라스무스가 원하는 것은 평화, 평화, 평화뿐이다.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비켜서 있겠다는 것, 평온뿐이다.” 평화주의의 선구자인가, 우유부단한 기회주의자인가? 심리 묘사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섬세한 필치로 써낸 에라스무스의 은밀한 내면 이제 시대는 끔찍한 증오로 묻는다. 교황이냐 루터냐, 가톨릭 편에 설 것인가 신교의 길을 걸을 것인가, 교리인가 복음인가. 정신의 자유와 내면의 독립을 추구한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에겐 가톨릭의 부패와 타락도, 루터와 신교의 맹목적인 혁명 의지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으리라. 정신적인 것, 지고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인문주의를 내세운 에라스무스는 양편을 화해시키고자 노력한다. 교황청에 루터를 파문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이며 루터가 지적한 오류와 잘못을 논의할 종교회의를 열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반대로 루터에게 화급하고 거칠게 나서지 말 것을 조언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에라스무스의 비극이다. 정신의 인간 에라스무스는 갈등을 중재할 뿐 해소하지 못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가 보름스에서 종교회의를 열어 루터를 불러들일 때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 머물렀다. 추방당한 루터가 복음을 앞세워 교황과 가톨릭교회의 탈선을 비판하며 그에게 자문할 때에도 자신은 루터의 글을 정확히 읽지 않았다며 빠져나간다. 이와 동시에 교황이 종교전쟁에 내몰리는 독일 민중을 위해 앞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지만 역시 이런저런 말로 둘러댈 뿐이다. 에라스무스는 언제나 결정적인 언사를 피하고, 중립을 지킨다. 바로 여기에 평전의 대가 츠바이크의 진가가 드러난다. 츠바이크는 인물을 찬양하거나 그의 강점만을 드러내지 않고 위대함과 그 한계를 여과 없이 서술한다. 덕분에 역사 속 잠들어 있던 인물이 생동감을 얻고, 읽는 이는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에라스무스 평전』에서도 에라스무스와 인문주의의 성과는 물론 미흡한 부분까지 낱낱이 드러내 보인다. 양쪽에 모두 관계하고 있는 에라스무스 내면의 갈등, 평화와 화합을 향한 고뇌, 양편과 함께 허물어져 가는 그의 상황을 밀도 높게 그려 냈다. 이에 더해 겉으로 드러난 육체에서부터 가장 안쪽 신경에 이르기까지, 에라스무스와 완전히 다른 기질을 타고난 마르틴 루터를 등장시킨다. 판이한 두 캐릭터와 섬세한 심리 묘사, 역사를 바탕으로 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독자를 단숨에 16세기로 인도한다. ‘너는 어느 편이냐’라고 묻는 시대에 에라스무스를 읽는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는 심심치 않게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라는 단테의 말이 유행하곤 한다.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양쪽 모두에 관계하며 설득하려 드는 에라스무스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를 예약한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편 가르기가 극에 달한 시기,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고 몰아붙이는 시대, 격렬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세상에, 이성의 힘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은 에라스무스의 생애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1차 세계대전을 겪고 반전주의자가 된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려 나치의 폭력에 항거하고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20세기 인물 츠바이크가 16세기 인물 에라스무스에 관해 쓴 것이지만,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보여 준 삶의 자세는 시공을 초월해 대립과 반목, 갈등과 혐오로 얼룩진 지금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려 줄 것이다. 1997년 자작나무, 2006년 아롬미디어에서 나온 책을 다시 출간하며 시대에 맞추어 문장을 새롭게 다듬고 오역 수정과 함께 여러 보완 작업을 거쳤다. [ 옮긴이의 말 ] 이 작품이 간행된 1934년은 히틀러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제국 수상이 된 지 1년이 지난 시기이다. 폭력을 부정하고 평화와 자유를 갈구한 휴머니스트 츠바이크에게 나치라는 독선적 광신자들의 움직임은 결코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듬해인 1935년, 츠바이크는 나치를 피해 망명을 해야 했고 자신의 작품이 그들에 의해 금서로 묶이는 뼈아픈 체험을 겪어야 했다. 츠바이크는 망명을 떠나기 전, 그 혼돈의 시대에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려 자신의 사상적 입장과 신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평전이나 전기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혼돈의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작가 츠바이크 자신의 내면적 자화상이며 정신적 상흔의 기록이기도 하다. 츠바이크 자신이 에라스무스의 모습을 빌려 폭력과 혼란의 그 시대에 항의하고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일깨웠듯이, 에라스무스는 다시 21세기의 혼돈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현재의 국내 상황만 보더라도 우리의 주변은 정치를 비롯한 각 분야에서 극한 대립과 분열, 갈등에 싸여 있다. 일방적인 자기주장과 증오만 난무할 뿐인 우리 사회의 모습은 천박함 그 자체로 보인다. 에라스무스의 시선으로 보자면 여전히 우리의 시대는 ‘광신의 격류’를 견뎌 내야 하는 시대다. 올바른 판단과 존중의 정신, 인내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이 소설은 한 외국 작가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역사관에서 쓴 것이지만, 그 시대와 공간의 차원을 넘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목차
사명과 삶의 의미 시대상 어두운 청년 시절 초상 대가의 시절 인문주의의 위대성과 한계 위대한 경쟁자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기 위한 투쟁 위대한 논쟁 종말 에라스무스의 유산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에라스무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 문학과 철학, 책과 예술 작품, 여러 언어와 민족을 사랑했다. 그리고 더욱 숭고한 과제인 교화를 위해 차이를 두지 않고 모든 인류를 사랑했다. 그런 그가 이성에 반하는 정신이라며 증오한 단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광신이었다. _12쪽 세계 분열의 끔찍한 순간에 개인의 의지는 무력해진다. 정신적인 사람은 관찰이라는 격리된 영역으로 자신을 구해 내고자 하지만 헛된 일이다. 시대는 그를 오른쪽으로 또는 왼쪽으로 가라며 혼란 속으로 떠다밀고, 이 패거리 아니면 저 패거리에 들어가라 하며, 이러이러한 주장을 하라거나 어느 한 편에 설 것을 강요한다. _21쪽 이성은 기다릴 줄 알며 견딜 줄 안다. 다른 것들이 흥분해 소란을 피울 때 이성은 침묵해야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성의 시대는 온다. 언젠가, 그리고 언제나, 다시 그 시대는 온다. _27쪽 에라스무스는 시대의 빛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시대의 힘이었다. 그는 길을 밝혀 주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 길을 걸어갈 줄 알았다. 그런 가운데 그 자신은 항상 빛의 근원처럼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새로움으로 들어가는 길을 가리켜 주는 자가 그 길을 최초로 걸어가는 자보다 덜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드러나지 않게 활동하는 자들도 자신의 일을 한다. _85쪽 새로운 것을 건설하려면 항상 존재하는 기존의 것을 먼저 흔들어야만 한다. 모든 정신의 혁명에서는 비판자와 계몽자가 창조자와 개조자에 앞선다. 흙이 부드럽게 부서진 이후에야 땅은 비로소 씨앗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법이다. _102쪽 16세기 초, 에라스무스의 이름은 단순한 문학적 명성에서 벗어나 비교할 수 없는 힘이 된다. 그가 대담했더라면, 그는 그 힘을 세계사를 뒤흔드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은 그의 세계가 아니다. 에라스무스는 어떤 일을 단지 해명해 줄 수 있을 뿐 형상화하지 못하며, 단지 준비해 줄 수 있을 뿐 수행하지 못한다. 종교개혁은 그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것이며, 그가 뿌린 것을 다른 사람이 수확할 것이다. _110쪽 인문주의는 제국주의와 다르며 적이란 것을 알지 못하고 하인을 원하지 않는다. 이 정선된 영역에 속하고 싶지 않은 자는 그냥 바깥에 있어도 좋다. 아무도 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도 이 새로운 이상에 억지로 밀어 넣지 않으며, 몰이해에서 비롯된 모든 편협성은 세계 화합을 교훈으로 삼는 이곳에서는 낯선 것이다. 한편 이 새로운 정신의 조합에 가입하려는 사람은 누구도 거부당하지 않는다. 교육과 문화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인문주의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직위의 사람들, 남자든 여자든, 기사든 신부든, 왕이든 상인이든, 세속인이든 수도사든 누구나 이 자유로운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으며, 누구에게도 어떤 인종인지, 무슨 계급인지.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국적은 어딘지 묻지 않는다. _120~121쪽 전쟁이라는 개념은 결코 정당함과 연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재차 묻는다. 전쟁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단 말인가? 에라스무스에게는 신학의 영역에도, 철학의 영역에도 절대적 진리나 유일하게 유효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 진리는 언제나 다양한 의미와 다양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권리 또한 마찬가지다. _125쪽 “나는 다시 꽃피고 있는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중립의 자세를 지킬 것입니다. 나는 격한 간섭보다는 현명한 자제의 자세를 통해 더 많은 것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_168쪽 그는 양편 중 어느 편에도, 교황 편에도 루터 편에도 서지 않는다. 에라스무스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어느 편의 지지자라 밝히려 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평화, 평화, 평화일 뿐이다. 어느 편에도 들지 않고 비켜서 있겠다는 것, 평온뿐이다. 오직 온 인류를 보호하는 작업만을 원한다! “나는 나의 평온을 원한다. Consulo quieti meae.” _196쪽 어느 곳에서도 파벌에 가담하지 않으려 했기에 어디에서도 편안치 못했던 이 중립의 남자를 위해 역사는 웅대한 상징을 만들어 줄 수 없었다. 에라스무스는 뢰벤이 너무도 가톨릭 쪽이었기에 그 도시에서 도망쳐야 했고, 바젤은 신교도의 도시가 되어 나와야 했다. 어떤 독단에도 관계하려 하지 않고, 어떤 파를 위한 결정도 하지 않으려는 이 자유로운 정신, 어디에도 예속되지 않는 이 정신은 지상 어디에서도 정착지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_239쪽 인류애의 사상이, 인간을 더 사랑하고 더 정신적이 되어야 하며 더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인류의 가장 숭고한 과제라는, 소박하지만 동시에 영원한 그 사상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글로써 길을 놓아 준 것은 에라스무스의 명예로 남을 것이다. 비록 현세의 공간에서는 패배했을지라도. _269쪽

저자
스테판 츠바이크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유대인 부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섬유 공장을 경영하던 아버지 모리츠는 독일어 외에도 영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은행가의 딸인 어머니 이다 역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여성으로서 이탈리아어에 능통했다. 이처럼 좋은 환경과 빈의 문화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츠바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연극과 오페라를 감상하거나 많은 고전 작품을 탐독하면서 문학적 감수성과 예술적 재능을 키워 나갔다. 1900년에 츠바이크는 빈 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업보다는 글쓰기에 몰두하면서 작가로서 준비 작업을 시작한다. 일찍이 보들레르와 베를렌의 시에 심취한 츠바이크는 이듬해인 1901년 시집 『은빛 현』을 발표하지만, 이후 시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소설과 전기(또는 평전)에서 훨씬 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소설집 『에리카 에발트의 사랑』을 시작으로 단편소설 「불타는 비밀」, 「모르는 여인의 편지」, 「광란」, 소설집 『감정의 혼란』 등을 발표하며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츠바이크 소설의 매력은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인간의 내적인 감정과 심리를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서술하는 그만의 특유한 재능에서 나온다. 여기에 시적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성애 묘사와 에로티시즘적 소설은 동시대의 어느 산문작가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당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엔 히틀러를 피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그리고 다시 브라질로 건너갔다. 하지만 전쟁과 나치즘으로 인해 점차 인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리게 된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을 노트에 적은 뒤, 부인과 함께 약물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1942년 2월 22일, 그의 나이 60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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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정민영
1962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하이너 뮐러의 희곡에 나타난 역사관과 극작 기법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현대 독문학을 수학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현재 한국외대, 배재대, 인하대 독문과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하이너 뮐러 연구>(공저), <하이너 뮐러 극작론>, 역서로 <하이너 뮐러 선집> 등이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하이너 뮐러의 교육극 '마우저'-브레히트의 교육극 '조치'와의 비교』 등이 있다.
   뮐러 산문선 | 정민영 | 지식을만드는지식
   저 사람은 알레스 | 정민영 | 지식을만드는지식
   저 사람은 알레스(큰글씨책) | 정민영 | 지식을만드는지식
   이름/키타맨 | 정민영 | 지만지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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