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노그라피(두 개의 화병) / 글: 조현철(영화감독) 7 메모리얼(모순화법의 가능성) / 글: 장-피에르 렘(영화평론가) 20 인터뷰(고통의 색) / 글: 레베르 드 파스(로테르담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6 피처(편린들의 고요한 역동) / 글: 이승민(영화평론가) 52 〈얼굴들〉 제작일지 / 글: 이강현(영화감독) 56 세노그라피(예컨대, 몰라도 괜찮아) / 글: 백수장(배우) 70 〈지도를 만드는 사람〉(가제) 제작기 / 글: 최여름(작가) 80 세노그라피(말러를 듣는 시간) / 글: 백종관(영화감독)

영화감독을 무엇으로 인정하게 되는가? 앞에서 우리가 자문했던 질문이다. 감독의 영화 속으로 들어갔을 때, 아무리 작은 디테일조차도 다른 디테일을 반영하고, 롱쇼트가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서 풍요로워지는 그런 제안의 미로 속을 끝도 없이 내달리게 해주는 것 때문에 감독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를 분석하는 엄청난 즐거움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사실로 인해 인정하게 된다. 그 발견이 주는 최초의 놀라움은 각 영화를 다시 보게 될 때 더 많은 놀라움이 찾아올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이강현의 작품들을 보기를, 정말로 다시 보고, 또 보기를 권하는 이유이다. / 10쪽 이강현 감독의 〈파산의 기술記述〉, 〈보라〉, 〈얼굴들〉 세 작품은 문제를 대면해 보았다고 바로 강변하고 나서서 편을 드는 태도가 아니라, 보였고 보았지만 그렇다고 아는 척 나서는 것 또한 배려가 아닐 수 있다는 자기 성찰과 묵묵히 그 문제에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며 함께하는 태도를 가진다. 그래서 의미와 감정을 고정시키고 확정하기보다 분산시키고 열어놓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파악해간다. 이 태도는 영화에게도 마찬가지다 / 35쪽 그렇다면 우선 이제 곧 진행할 네 번째 장편도 역시 세 번째 영화를 만들면서 쌓인 결코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속에서 출발할 것인데, 특별히 앞으로의 새로운 작업은 두 번째 장편 〈보라〉와 세 번째 장편 〈얼굴들〉에서 얻은 근본적인 질문들이 마구 섞여 있는 상태에서 모색하게 될 것 같다. 바라건대 어느 때보다도 더 래디컬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정말 새털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영화를 찍고 싶다/ 53쪽 이강현 감독의 ‘논픽션’ 이미지는 사소하고 주변적이며 우발적인 것들로 눈과 귀를 이끌었다. 그 형상들은 정박된 의미로부터 자꾸 미끄러져 나와 프레임 밖을 향하는 것 같았고, 사운드 또한 눈앞에 보이는 것들과 자연스레 어울리기보다는 프레임 안팎에서 균열을 일으키며 나름의 주장을 펼치는 것 같았다. 반면 정작 감독 본인은 이 비결정의 사태들을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듯 입버릇처럼 ‘당신의 관건은 무엇입니까’라거나 ‘그것의 본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솔직히 새삼스럽기도 부담스럽기도 한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곤 했고,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단일한 의미와 그것을 결정할 통제적 상황에 대한 감독의 의지를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 61쪽 어느 날 이강현 감독은 제게 지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지도를 한번 나열해 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세계지도, 전국지도, 관광지도, ... 하나 둘 나열을 하자, 그는 아니 그런 거 말고 좀 다른 건 없을까요? 라며 재차 물었습니다. /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