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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는 성 :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원제:Des Sexes Innombrables. Le Genre A L'Epreuve De La Biolo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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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과학철학
저자 티에리 오케 , 티에리 오케 ( 역자 : 변진경, 변진경 )
출판사/발행일 오월의봄 / 2021.03.19
페이지 수 268 page
ISBN 9791190422642
상품코드 34778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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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두 개의 성’만 존재한다는 이분법을 해체하자 성은 몇 개인가? 사람들은 “두 개!”라고 답한다. 과학에서도 “두 개!”라고 답한다. 두 의견은 다행스럽게도 일치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의견이 옳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사람들이 두 개의 성이 있다고 말할 때는 각각의 종마다 오직 두 유형의 개체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태양과 달이 존재하듯이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별에 따라 역할도 규정된다. 여성인 어머니의 역할은 돌봄이고, 남성인 아버지의 역할은 통솔자인 가장이라고 말한다. 이런 틀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징을 설명하고, 동물의 특성을 강조할 때도 이런 성별 고정관념이 투영된다. 그런데 과학에서 두 개의 성이 존재한다고 제시할 때 과학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생물학자에게 ‘수컷’과 ‘암컷’이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렇게 성의 수를 헤아릴 때 우리는 바로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구별해야 하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즉 여성과 남성의 두 가지 특성 계열에서 벗어나는 인간 개체는 ‘비정상’으로 분류되고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 논리로는 동성애도, 인터섹스도, 트랜스젠더도 모두 ‘비정상’이 된다. 두 개의 성에 포함되지 않는 성은 모두 비정상성을 부여받은 채 사회에서 제외되거나 비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강제된다. 동성애자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으므로 동성결혼을 허용해서는 안 되고, 트랜스젠더는 그들의 해부학적 성과 정신적 성 사이의 불일치를 스스로 조화시키도록 강요받고, 남성이라고도 할 수 없고, 여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인터섹스는 외과수술을 통해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저자는 ‘두 개의 성’에 갇혀 있는 사회를 청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은 두 개도, 세 개도 아니며, “셀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즉 개인은 각자 재능이 있는 소중한 개인으로서 인정받아야 하지 그들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트랜스젠더인지, 인터섹스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명확히 두 개의 성, 남성과 여성만으로 구분될 수 없으며, 이성애자, 동성애자, 인터섹스 등 다양한 성으로 세분화될 수 있다. 인간 사회는 정의나 평등 같은 사회정치적 이상의 구현을 목적으로 건설되어야 하지, 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 개인의 삶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즉 ‘성은 두 개다’라고 주장하는 생물학이, 혹은 종교적 논의가 사회의 구축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책은 인식론, 과학사, 페미니즘에서 빌려온 이론적 도구를 교차하면서 “두 개의 성”만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시각을 해체한다.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생물학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이유로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대에 입학하는 것을 막는 사례나, 동성애를 ‘찬성’ 또는 ‘반대’라는 잘못된 질문으로 묻는 사례나, 과잉대표된 종교인들에 의해 제기되는 ‘동성애는 죄’라는 주장에 정치인들이 호응하는 사례는 모두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에 함몰된 시각이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성 개념을 지배하는 주류 담론의 시각을 전복할 수 있는 논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남녀의 이분법적 질서를 뒤흔드는 ‘인터섹스’ 여기 이분화된 질서, 오로지 두 개의 성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동요시키는 존재가 있다. “명백하게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인터섹스다. 인터섹스란 누구인가? 인터섹스의 존재는 굉장히 다양한데, 이들은 남성과 여성의 전형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너무 작은 음경이나 비대한 음핵 또는 결절이 있는 고환이나 미하강(未下降) 고환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고, 한 인간 개체가 XY 염색체와 여성의 성기 모양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있으며(테스토스테론 무감응 증후군), XX 염색체와 남성화된 성기 모양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선천성 부신 증식증). 그들의 존재는 남녀의 이분법적 질서를 뒤흔들고, 이런 질서가 얼마나 정치적이고 폭력적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성의 이원론 모델을 지지하는 사람은 다음의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XX 염색체와 남성적 외형을 가진 경우, 이는 남성처럼 보이는 여성인가, 혹은 여성 염색체를 가진 남성인가? 또한, 이른바 “정상적 개체”라도 전형적 성 특징의 일부를 결여할 수 있다. 예컨대 생식세포 생산 능력은 생애주기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그럼 여성과 남성이란 범주는 특정 생애 시기에만 적용 가능한 것이고, 모든 개체가 인터섹스 시기를 경험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여러 성 특징 중 하나를 기준으로 삼아 여성과 남성을 구별할 수는 있다. 갓 출생한 아기의 성별을 판별하는 결정적 기준은 성기의 외형이다. 그럼 여성과 남성은 단순히 특정 성기 모양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을까? 인간 개체를 성기 모양에 따라 두 가지로 분류하는 것이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별증명서상의 성별 표시를 모두 없애자” “인터섹스들이 존엄하고 완전한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게끔 보장하는 일은 전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공동으로 결정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인터섹스는 자신의 고유한 모습으로 이 사회에서 살 수 없었다. 1970년대에 인터섹스 아동들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규범에 합류할 수 있도록 여러 외과적 치료나 호르몬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실패할 경우,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교정 수술을 받고 성을 재지정받았다. 가령 XY 염색체형을 가지고 있으면서 음경이 너무 작은 아이는 외과적 수술을 통해 성을 재지정받은 후 부모로부터 여자아이로 양육되었다. 반대로 음경 모양의 음핵을 가진 아이는 남자아이로 성을 재지정받지 않고 그대로 양육되었지만, 음핵이 너무 “음경처럼 보인다”고 판단될 때는 절단 수술을 받았다. 이렇듯 인터섹스 아동들은 일찍부터 어른들의 손에 의해 강제로 성을 재지정받았다. 성인인 경우에도 ‘비정상’으로 판정되어 갖은 불이익을 받기 일쑤였다. 이처럼 사회에서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은 인터섹스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긴다. 이뿐만 아니라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결합쌍둥이, 장애인 등도 마찬가지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즉 모두 ‘교정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통념을 깨부수고 이분법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젠더의 이원성에 기대어 있는 사회를 청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성별증명서상의 성별 표시를 모두 없애자고 주장한다. 즉 개인의 성이 어떠하든지 간에,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드는 게 ‘새로운 정상’이라는 주장이다. 자연주의, 반자연주의, 대안자연주의 이 책은 생물학을 관통한다. 생물학을 단순화하지 않고, 생물학의 풍부한 개념과 발견들을 존중한다. 하지만 생물학이, 즉 자연에는 두 개의 성만 존재한다는 주장이 사회의 구성 방식에 너무 깊게 작용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생물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우리의 목표는 생물학을 사회질서의 구축에 이용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저지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정의나 평등 같은 사회정치적 이상의 구현을 목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저자의 이론적 틀은 대안자연주의다. 대안자연주의는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의 성과를 모두 수용하면서 제3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자연주의는 말 그대로 “사회에는 여성과 남성 두 개의 성만이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 생식세포와 남성 생식세포, 난자와 정자가 있어야 하며, 그리고 이는 사회와 문화가 결코 바꿀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자 자연법칙이라고 말한다. 이 책 전체에서 말하고 있듯이 자연주의는 생물학적 사실을 일종의 미신으로 변질시킨 결과물이다. 일반 사회의 주류 담론을 대표하는 이론이다. 반자연주의를 대표하는 것은 성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는 ‘젠더 연구’ 진영이다. 젠더 연구는 사회가 “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룬다(“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젠더 연구 진영이 성 개념을 사회문화적 구성물에만 “한정”짓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정상적 성 규범을 비판하기 위해 생물학적ㆍ자연적 성을 버리고 문화적ㆍ사회적 성으로 이동한 젠더 연구는 사회를 이해하고 바꾸는 데 매우 큰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성을 생물학의 전유물로 넘겨주었고, 생물학에 근거한 주장들을 논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 결과 젠더 연구가 자연과학이나 생명과학에서 작동하고 있는 과학적 편견을 문제 삼는 동안, 이들 과학 분과는 우리가 줄곧 젠더의 영역이라고 여기던 모든 것, 즉 가정 내 역할, 인지 능력과 정서적 능력, 성적 지향, 강간, 심지어는 아이들의 놀이까지 거침없이 자연화를 행해왔다. 책은 이제 생물학의 연구 결과와 페미니즘의 성과를 모두 수용하면서 거침없이 자연주의로 들어간다. 저자는 이러한 비판적 기획을 대안자연주의라고 부른다. 대안자연주의는 상관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적 성과 비인간의 성을 모두 실재로서 인정한다. 그리고 생물학이 그 실재에 접근할 수 있음을, 또한 인간의 성도 생물학적 성의 실재로서 다룰 수 있음을 긍정한다. 저자는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 사이에서 제3의 입장이 가능한지를 살펴본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대안자연주의가 자연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성의 실재를 인정하고, 그것을 통해 인간의 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자연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예컨대 포유류의 성은 암컷과 수컷이라는 두 유형으로 분류되므로 인간의 성도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가지로 구별된다고 말한다면, 이는 대안자연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주의로 퇴보하는 것이다. 대안자연주의는 포유류의 성이 두 가지라는 믿음이 과연 생물학적 지식인지를 먼저 질문한다. 이 책의 2장과 3장은 성생물학의 최근 연구 전반을 검토하며 “인간의 성은 두 가지다”라는 생물학적 발화의 의미를 엄밀하게 재검토한다. 성이란 무엇인가? 자연주의와 반자연주의의 대립을 거칠게 도식화하면, 3장에 등장하는 수컷/암컷, 남성/여성,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세 가지 개념 쌍의 구별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주의는 남성/여성을 수컷/암컷으로 정의하려는 반면, 반자연주의는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담론 내에서 남성/여성과 수컷/암컷의 구별이 생산된다고 본다. 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성의 의미를 분석해나가면 전혀 다른 지평이 펼쳐진다. 4장에 등장하는 다섯 개의 표를 면밀히 살펴보자. 〈표1〉은 《그랑 로베르 사전》이 정의한 프랑스어 단어 sexe의 여섯 가지 의미다. 일상 언어에서 “성”이라는 말이 사용될 때, 그 의미는 대략 이 여섯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는 한국어 사용자에게도 익숙한 것이지만,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 번역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뒤틀림을 고려하자. 한국어는 한자 ‘性’을 쓰므로, 여성과 남성을 특정 대상이 지닌 성질이나 본성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흔히 남성은 ‘남’이라는 본성, 여성은 ‘여’라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프랑스어 ‘sexe’나 영어 ‘sex’의 라틴어 어원은 구별과 분리를 의미한다. 즉 라틴어 언어권에서 성이란 본성이 아니라, ‘차이’를 지시하는 개념이다. 특히 〈표1〉의 1.1이 정의하듯이, 생식을 가능케 하는 종 내부의 차이를 의미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성이 본성으로 이해될 때가 있지만, 그것은 다른 본성과 차이 나는 것으로서의 본성이다. 〈표2〉의 열 가지 층위는 내분비학자 질베르-드레퓌스가 일차원적 성 개념에 반대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다. 처음 두 개의 표가 인간의 성을 다루는 반면, 생물학적 성 개념을 요약한 〈표3〉은 생명체 일반을 대상으로 한다. 4장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이 세 번째 표의 일곱 가지 의미다. 생물학적 성의 첫 번째 의미(3.1)는 박테리아의 성이다. 박테리아는 자기 분열하면서 생식(재생산)하므로, 성 개념은 생식과 아무 관련이 없다. 이 경우 “성”이라는 말은 다른 박테리아 개체 혹은 바이러스와 DNA 교환을 할 때 사용된다. 두 개의 성이라는 익숙한 의미는 3.2와 3.3에 등장한다. 3.2의 성 개념은 무성생식과 구별되는 유성생식을 지시하며, 3.3에서 성이란 두 가지 생식세포의 구별을 의미한다. 생식세포의 구별로부터 생식선의 구별(의미 3.3', 즉 고환과 난소의 구별)과 생식기의 구별(의미 3.3'')이라는 성 개념이 파생된다. 〈표5〉에서 설명하듯이, 3.2와 3.3은 두 개의 성이라는 이분법을 적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두 종류의 생식세포는 그냥 구별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감수분열을 통해 생산되어, 수정을 통해 이배성 과정으로 들어간다(의미 3.4). 〈표3〉의 가장 중요한 함축은 3.1에서 3.7에 이르는 성 개념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결정적 단절은 3.5에서 일어난다. 생식세포가 두 유형이라고 할지라도, 개체를 두 유형으로 분류할 이유는 없다. 자웅동체의 경우, 한 개체가 두 유형의 생식선을 가지고 두 유형의 생식세포를 생산할 수도 있고, 생애주기에 따라 다른 생식세포를 생산할 수도 있다. 식물의 성 체계는 훨씬 더 복잡해서, 단순히 자웅동체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또한 성 개념은 짝짓기에서 나타나는 행동의 차이, 즉 넓은 의미의 섹슈얼리티를 지시하기도 하는데(3.7), 이러한 차이가 생식세포의 차이에서 연역되지는 않는다. 〈표3〉의 일곱 가지 생물학적 성 개념 사이에 필연적 연관이 없다는 것은 인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다음의 발화를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생식세포는 오로지 정자와 난자만 있을 뿐 제3의 생식세포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 두 가지 생식세포의 결합으로 생식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로부터 인간은 오로지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며, 제3의 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단순히 생각해서 난자/정자를 바탕으로 개체로서의 여성/남성을 정의한다면, 생식세포를 생산하지 않는 인간 개체의 성은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혹은 두 유형의 생식세포만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 회음부의 해부학적 특성이나 성적 행동도 두 유형으로 구별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가? 저자는 4장을 마무리하며 서론에서 제기한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성은 몇 가지인가? 〈표2〉는 인간의 성을 구성하는 열 개의 층위를 보여주지만, 대부분 두 개의 성을 전제한다. 〈표3〉은 인간의 성을 넘어, 생명체 일반의 성을 일곱 개의 개념으로 요약한다. 이 두 개의 표를 교차시킨 결과가 〈표5〉다. 이 표는 이원론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원론자들은 통계적으로 많은 수의 인간이 두 특성 계열로 나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의 성을 두 가지로 분류할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특성 계열에서 벗어나는 인간 개체는 비정상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표5〉에서 이원론이 특권적 지위를 갖는 것은 생식세포(2.3)와 내부 생식체(2.4)뿐이다. 나머지 여덟 가지 층위는 이원론과 다원론 모두 적용 가능하다. 다원론은 방금 언급한 두 가지 특성 계열을 인정하지 않으며, 성의 유형을 세는 것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정상적 성’이란 무엇인가? 4장이 성의 정의를 다루었다면, 5장은 성결정의 문제를 제기한다. 즉 생물학적 성이란 다양한 성 특징들 사이의 차이를 지시하는데, 개체가 그중 어떤 특징을 가질지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흔히 성염색체를 떠올린다. XX 염색체가 암컷의 특징, XY 염색체가 수컷의 특징을 결정한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성결정 체계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첫째, “유전자형”과 “표현형”(발달을 끝낸 개체의 특성)의 구분이라는 유전학의 문제를 고려하자. 〈표3〉의 일곱 가지 성 개념 대부분이 표현형에 관한 것이고, 그것들은 염색체에 의해 자동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표현형 결정에는 유전자뿐 아니라 환경적 요인도 개입하기 때문이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성을 결정하는 방식은 생물 종에 따라 달라지고, 인간의 성결정에도 유전자와 호르몬이 모두 개입한다(물론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쟁점이다). 둘째, 〈표7〉이 보여주듯이, 유전 체계도 다양하다. 그동안 Y 염색체에 위치한 SRY 유전자가 인간의 성결정 요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X와 Y 염색체에 존재하지 않는 다른 유전자의 영향도 고려한다. 요컨대 생물학은 성 특징을 다양한 수준에서 정의하며, 그러한 성 특징들이 결정되는 체계도 다양하다. 이러한 다양성을 증언하는 것이 바로 인터섹스의 존재다. 인터섹스라는 개념은 여성과 남성의 전형에서 벗어나는 성 특징을 지시하는데, 거기에는 성기의 외형, 염색체의 구조, 호르몬의 작용을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실재가 포함된다. 인터섹스는 몇 가지로 정형화할 수 없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저자가 7장에서 앤 파우스토-스털링을 인용하며 설명하듯이, 성기의 해부학적 구조에서 인터섹스의 전형적 범주를 뽑아내기는 어렵다. 8장의 〈표8〉은 염색체 수준의 인터섹스를 여덟 가지 유형으로 요약하지만, 모든 인터섹스가 이 중 하나의 유형으로 분류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호르몬은 유전적 요인과 결합하여 다양한 인터섹스를 발생시킨다. 사실, 인터섹스 자체가 여성과 남성의 성별 이분법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생물학적 성에 이원론을 적용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표5〉에 따라 “생물학적 여성”은 ‘XX-난소-난자-자궁-클리토리스-에스트로겐-여성적 행동 방식’이라는 특성 계열로, “생물학적 남성”은 ‘XY-고환-정자-전립선-페니스-안드로겐-남성적 행동 방식’이라는 특성 계열로 정의될 수 있다. 이러한 두 개의 특성 계열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 즉 인터섹스로 분류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원론의 단순한 예외가 아니라, 이원론의 근거 자체를 파괴하는 힘이다. 무엇보다 인터섹스의 존재는 전형적 성 특징들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없음을 증언한다. 이 책은 7장과 8장에서 인터섹스 문제를 다루고, 9장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여기서 잠깐 다소 복잡한 개념 간 관계를 정리하자. 일단 “정상적”과 “규범적”을 구별해야 한다. “정상적”으로 번역된 normal의 기초적 의미는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은” 중간 상태이지만, 이 말에는 다층적인 의미가 중첩된다. 그래서 “정상적인 것”이 곧 “규범적인 것”을 의미할 때도 있다. “규범적”으로 번역된 normatif는 가치판단에 관련된다. 즉 어떤 것이 규범적이라는 말은 “그렇게 되어야만 함”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다른 한편, “비정상적(anormal)”과 “이상한(anomal)”을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 두 단어는 철자와 의미가 비슷해서 상호 교환 가능한 경우가 많은데, 사실 어원부터 다르다. 이 책에서 “이상한 것”은 통계적으로 희귀한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 간 관계를 고려하며, “정상”의 네 가지 의미를 구별한 〈표11〉을 살펴보자. 첫째, 통계적 의미에서 정상적인 것이란 곧 평균적인 것을 말한다. 평균에서 벗어난 이상하거나 드문 경우는 비정상으로 간주된다. 둘째, 의학에서 정상적인 것은 건강한 것이고, 비정상적 것은 병리적인 것이다. 여기서 정상적인 것의 통계적 의미와 의학적 의미가 분리된다. 빈도가 적다고 해서 병리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완벽한 건강 상태는 희귀하므로, 의학적 정상 상태가 통계적으로는 비정상일 수도 있다. 셋째, 생물학에서 정상적인 것은 캉길렘적 의미에서 규범적인 것이다. 즉 생명이 자기 보존을 위해 따라야 하는 상태가 생물학적 정상이다. 이상한 개체나 돌연변이도 생존을 위한 새로운 규범을 제시한다면, 정상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넷째, 저자가 푸코를 인용하며 말하듯이, 정치적 의미에서 정상이란 권력에 의해 “정상화”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성과 남성의 성 특징 계열이 정상적인 성의 기준이라면, 이때 “정상”이란 위 네 가지 의미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아마도 통계적 의미에서는 남성과 여성을 정상으로, 인터섹스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적 빈도의 낮음이 병리적 상태를 함축하지는 않는다.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전형적인 남성이나 여성 중에 불임인 경우가 있고, 인터섹스로 분류되지만 임신 가능한 사람도 있다. 그럼 생식 능력의 측면에서 둘 중 어느 쪽이 병리적 상태일까? 클라인펠터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골다공증에 걸렸다면, 그는 클라인펠터증후군 환자인가, 아니면 골다공증 환자인가? 사실 통계적 평균을 정상적인 것으로 정의하고, 통계적 희귀함과 병리적인 것을 연결해 비정상을 구성하는 것은 권력의 정상화 방식 중 하나다. 물론 다른 식의 정상화도 가능하다. 예컨대 여성은 남성에 비해 통계적으로 적지 않지만, 가부장적 권력은 남성과 여성을 각각 정상과 비정상에 대응시킨다. 〈표11〉에서 나머지 세 가지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것의 생물학적 의미에만 집중해보자. 그럼 정상적인 성은 두 가지이며,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비정상적인 성이라고 말할 생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생물학적 성은 매우 다양한 수준의 실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표3〉의 일곱 가지 성 개념들은 각각 다른 생물학적 실재에 대응한다. 더구나 그것들은 개체의 생애주기에 따라 질적 변화를 한다. 예컨대 2차 성징 이전과 이후의 난소나 고환이 동일한 실재인지 질문할 수 있다. 실재의 다양한 수준과 생애주기 전체를 관통하는 성별 이분법을 생물학적으로 수립하기는 어렵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예외(인터섹스)라는 이분법이 규범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정치적 정상화의 결과물이다. 자연주의로부터 생물학을 구해내기 이 책이 제안하는 대안자연주의는 젠더 연구의 반자연주의를 부정하고 자연주의로 돌아가려는 기획이 아니다. 메이야수가 상관주의에 맞서 사변적 물질주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독단주의와 순진한 실재주의에 대한 상관주의적 비판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안자연주의는 자연주의에 대한 반자연주의적 비판이 수행된 이후에만 생물학적 성의 실재를 인정할 수 있다. 자연주의적 생물학과 대안자연주의적 생물학은 같은 수준이 아니라는 점, 이 둘이 전제하는 생물학적 성도 동일한 실재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생물학을 자연주의로부터 구해내는 일이다. 저자가 10장에서 바슐라르의 인식론을 참조하며 생물학적 성 개념을 다섯 가지 인식론적 수준으로 분류한 것은 이런 이유다. 대안자연주의는 생물학을 그중 다섯 번째 수준, 즉 초합리주의에 옮겨놓으려는 기획이다. 요컨대 그 목적은 단지 생물학을 이용해 사회를 지배하는 규범적 성 담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애니미즘적 본질주의에서 자유로운 생물학을 통해 시원적 성에 접근하는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성은 몇 개나 될까? 지나간 시간의 케케묵은 냄새 | 몇 개의 성이 존재하는가? I. 자연주의를 제자리에 놓기 1. 대안자연주의로 자연사를 재검토하기: 대안자연주의 입문 서구중심주의와 남성중심주의 | 생물학은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간다 2. 성에서 젠더로, 젠더에서 성으로? 젠더의 우위? | 성의 귀환? | 시원적 성, 성 개념에 대한 진지한 고찰 3. 여성이 곧 암컷은 아니다 여성이란 누구인가? | 가부장적인 생물학에 대처하는 방법 | 왜 모든 종을 암컷과 수컷으로만 구분할까? Ⅱ. 성의 미로 4. 성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인가? 성기에 대한 극도의 집착 | 성을 형성하는 열 개의 층위 | 일곱 가지 생물학적 성 개념 | 그렇다면 몇 개의 성이 존재하는가? 5. 무엇이 성을 결정하는가? 유전적 결정 또는 환경적 결정? | 유전자가 성을 결정한다? 6. 동물의 젠더에 대하여 일반성에서 개별성으로: 퀴어 동물 이야기 | 어디에나 있는 성의 무지개 | 인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Ⅲ. 인터섹스 혁명: 이분법을 흔들어놓는 것 7. 모든 아이는 동일한 가치와 존엄을 갖는다 성에 대한 부모들의 집착 | 그렇기는 하지만, 인터섹스의 문제 | 이론들에 점령당한 인터섹스 | 이분화에 반대하는 인터섹스 8. 두 개의 성만 있는 건 아니다: 인터섹스의 다양성 ‘정상적인 것’은 통계적으로 정의된다? | 염색체와 인터섹슈얼리티 | 호르몬과 인터섹슈얼리티 | 매우 다양하고, 다소 회귀한 9. 새로운 정상 다리 없는 인류 | 인터섹슈얼리티는 새로운 규범인가? | 정상적인 것: 통계적인 것에서 의학적인 것으로 | 정상적인 것: 생물학적인 것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 일탈, 불구, 기형 | 결합쌍둥이의 반증 | 정상적인 것에는 역사가 있다 Ⅳ. 노아의 방주에서 벗어나기 10. 생물학의 성 개념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11. 이분법이여, 안녕 “아빠 암탉”? | 이분법에서 빠져나오기 | 우리가 질문을 제대로 제기했다면 | 사회를 해방하기 감사의 말 해제: 성이란 무엇인가?-과학의 이름으로 주
본문중에서
일단 아기의 성이 확인되면, 아기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세계는 바뀐다. 어떤 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에 연결된 사회적 가치들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로 태어나는 아이는 결코 아이라는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없다. 항상 여자아이 아니면 남자아이다. 성은 모든 것을 바꾼다. -15쪽 동성애는 “반자연적”이라는 주장의 핵심 논거는 이렇다. 현 인류의 존재는 이성애를 현명하게 잘 준수해온 덕택에 가능했으며, 동성애 합법화와 동성 결혼의 제도화는 “자연법칙”의 위반이다. 보다시피 다소 명시적으로 자연적 사실들이 기존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소환되고 있다. 인간의 행동과 사회의 조직 원리가 결국에는 모두 자연의 명령에 따른 것이고, 결혼은 사회제도 중 하나가 아니라 생식활동이라는 자연현상과 관련된 생물학적 필연이라는 것이다. -22쪽 생물학에서 “성”을 단수로 표현하는 경우는 많아도 쌍수 또는 복수 형태로 ‘성들’을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인간 종에게 명백해 보이는 것에서 빠져나와 다른 수많은 형태의 생명체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생물학적 현상으로 성을 고려하게 된다면, 우리가 가졌던 성의 명증성은 흐려진다. 우선 성은 유일한 생식 방법이 아니다. 자연에는 성이 없어도 복제나 꺾꽂이를 통해 번식하는 생명체가 많이 있다. 다음으로 생물학에서 성관계란 개체 사이의 유전자 교환을 의미하는데,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암수 구분 없이 무성생식으로 번식한다. -30쪽 우리의 목표는 생물학을 사회질서의 구축에 이용하려는 일체의 시도를 저지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정의나 평등 같은 사회정치적 이상의 구현을 목적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31쪽 이처럼 페미니즘의 입장에서 보자면, 생물학은 모든 비판적 사유를 가로막는 장벽으로 기능하면서 성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잘못된 길로 이끌어갈 뿐이다. 일단 성이 생물학에 근거하고 나면 더는 이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성을 “생산”하는 주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잊어버린 채 성을 우리와 무관한 것으로 “물신화”하게 된다. -43쪽 성생물학에 대한 무지는 인간과학과 자연과학 간의 단절을 그대로 드러낸다. “성” 개념에 일관되게 인용부호를 붙이는 관행은 인간과학을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위치로 몰아가는데, 정작 생명과학은 그로부터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고 인간과학만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젠더 연구가 “자연”과학이나 생명과학에서 작동하고 있는 과학적 편견을 문제 삼는 동안, 이들 과학 분과는 우리가 줄곧 젠더의 영역이라고 여기던 모든 것, 즉 가정 내 역할, 인지 능력과 정서적 능력, 성적 지향, 강간, 심지어는 아이들의 놀이까지 거침없이 자연화를 행한다. -50쪽 성 개념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인류와 그 밖의 다른 동물류, 식물류, 박테리아류 모두에게 있는 공통된 토대를 유념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의 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인류에 그대로 적용하거나 반대로 인간의 성에 대해 안다고 믿는 것을 자연에 투사해서도 안 된다. 성 개념을 거부할 수 없다면, “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어디까지, 어떤 측면에서 인간에게 적용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재적이면서도 비판적인 이 이중의 기획을 우리는 ‘대안자연주의’라고 부른다. -55쪽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도 오랫동안 이분화의 논리에 순응해야 했다. 트랜스젠더는 “젠더 불쾌감”이라는 논리에서 그들의 해부학적 성과 정신적 성 사이의 불일치를 밝혀야 했고, 순응하게 하거나 일치시키도록 요구함으로써 해부학적 성과 정신적 성이 마침내 “조화되도록” 하는 담론만이 지지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동성애자 역시 이분법화에 편입하게 되었다. -69쪽 “인터섹스”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적으로는 성기가 표준적인 식별에 맞지 않는 개체를 가리킨다. 전통적인 정의에 따르면 “명백하게 남성의 것도, 여성의 것도 아닌 성기를 갖고 태어난 아기”를 말한다. 이 용어에 포함된 여러 실재에 대해서는 다시 검토하겠지만, 우선은 인터섹스의 삶이 여러 이론에 편입된 방식에 주목해보자. -132쪽 동성애는 오랫동안 “기형”, “반反자연” 현상, 나아가 “퇴행성 질환”으로까지 불리며 조소를 받았다. 한동안은 영향력이 높은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1980년 판에 다시 등재되기는 했지만, 그전에 1973년 판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에서 제외하기로 했던 결정은 확실히 게이와 레즈비언이 벌인 정치 행동과 관련되어 있었다. 동성애자들의 강한 문화적 정체성과 정치적 행동력이 정신의학계의 시선을 바꾸어냈던 것이다. -174~175쪽 아이들에게 자연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주는 많은 책에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강조한다. 자연은 그렇게 되어 있다면서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포유류는 임신과 수유를 하므로 새끼가 젖을 뗄 때까지 어미가 돌본다. 조류의 경우, 알을 낳고 대개 품는 것은 어미로, 요컨대 아비는 부재해 있다. 그리고 책의 페이지마다, 예시마다, 갈리마르 출판사를 통해 자연이 우리에게 반복해 말하는 것은 어미는 양육 아니면 교육을 맡고, 아비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09쪽 전혀 그렇지 않다. 생물학은 인간의 문제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우리의 사회조직은 생물학의 결과에 영향받지 않으며, 다른 원칙에 따라 구성된다. -215쪽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전해진 기호와 말을 통해 그리고 우리에 대한 꿈을 통해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인다.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문화적인 인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수정되자마자 자기 몫의 물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떤 인간도 자연이나 문화 없이 살 수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16쪽

저자
티에리 오케
파리 10대학 철학교수로 생물철학과 생물사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셀 수 없는 성》을 통해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구분을 넘어서 다양한 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서로 《다윈 대 다윈》(2009), 《사이보그 철학》(2011), 《섹수스 눌루스, 또는 평등》(2015)이 있고, 《생물학적 성: 역사 및 비판 인류학》(2013)을 기획했다. 다윈의 《종의 기원》(2013)과 러프가든의 《친절한 유전자》(2012)를 번역했다.
티에리 오케

역자
변진경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옮긴 책으로 『악한 사람들』『작별: 로물루스, 나의 아버지』『부서지기 쉬운 삶』『철학자의 개』『사랑의 급진성』『죽음에 대하여』『잔혹함에 대하여』 등이 있다.
   자살에 대하여 | 변진경 | 돌베개
변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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