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용 가르치기― 무엇을, 어떻게, 왜 그렇게 가르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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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 같은 고급 공연장이나 국립발레단 같은 최고 수준 무용단에 있습니다. 그곳만이 아닙니다. 시영 아파트단지 노인정에도 있고 전국노래자랑의 무대 위에도 있습니다. 도시의 뒷골목 그늘진 곳에도 있고 학교 체육관 강당 위에도 있습니다. 이렇듯 춤은 사람이 사는 곳 어디에나 있습니다. 춤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춤은 떨어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무용은 춤입니다. 그런데, 무용이라고 부르는 순간, 춤은 우리 일상과는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세련된 예술활동으로서 무용은 특정한 형식으로, 특정한 공간에서, 특별한 사람에 의해서 행해지는, 나와는 다른 제3자적인 행위가 되어버립니다. 춤은 ‘내 것’이라는 1인칭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무용이 되면 ‘그것’이라는 3인칭적 느낌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무용은 일상적 보통인인 나로서는 내 것으로 하기 어렵고, 예술가, 무용가로 불리는 특정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서 행해지는 특별한 활동으로서 타자화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용 가르치기”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고,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멋있어야만 하고, 잘해내야만 하고, 예술적 표현력이 요구되며, 무엇보다도 인형 같은 몸매가 갖춰져야만 하는, 보통의 우리는 범접하기 어려운 예술의 한 장르로서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일상인은 예술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술가에게 맡기고 나는 기껏해야 관람자로서만 즐길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예술적 무용관은 무용을 일상인의 삶과는 격리된 차원으로 이동시켜버립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대상으로 만듭니다.
무용 가르치기는 예술적 과정으로서 소수의 선택된 이들에게만 열려있는 활동일 뿐이라고 치부되는 상황으로 발전되었습니다. “무용 가르치기” 또는 “무용교육”은 전문적으로 관계되는 이들에게만 주목받아야 되는 특수활동으로 오해받게 되었습니다. 무용을 예술로서만 한정시켜 이해하거나, 전문예술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폐쇄적인 입장(또는 근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게 된 것입니다. 무용은 예술이며, 오로지 예술이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용교육은 예술교육이며, 예술교육이어야만 합니다.
물론, 이러한 원론주의적, 근본주의적 관점의 장점과 미덕이 있습니다. 하이 컬처로서의 무용, 대학학과로서의 무용과라는 현실적 맥락을 고려한다면, 이 같은 입장이 그 위치를 견고히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철학이자 원칙이 됩니다. 무대공연과 학술연구는 저급문화나 하급예술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고급예술과 고급문화로서의 무용만이 공연예술이 되어야 하고 대학에서 전공으로 가르쳐질 수 있는 가치를 지닙니다. 무용 가르치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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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의 저자들인 저희가 생각하건데, 무용은 예술이면서도 일상이기도 합니다. 무용은 예술로서 무용이 되기 이전에, 우리 삶 전반에 살아있는 우리의 일상, 즉 춤이기도 합니다. 춤으로서의 무용은 예술로서의 무용보다는 훨씬 덜 심각하고 덜 고결하고 덜 차갑습니다.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춤, 즉 일상으로서의 무용은 우리가 읽고 쓰고 셈하기를 배워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춤추기가 셈하기와 달라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히려, 우리는 삶에서 셈하기보다 춤추기를 더 자주하지 않나요?
무용은 예술이면서도 일상이어야 합니다. 무용 가르치기도 예술교육이면서 일상교육이어야 합니다. 이점에서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미학적 입장에서만 무용 가르치기를 바라보려는 기존의 주류 무용교육의 연구는 재검토되어야 합니다. 무용은 예술론적 입장에서 교육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뿐만 아니라, 교육학적 관점에서 교육적으로 이해되고 실천되어야하기도 합니다. 무용 가르치는 활동은, 무용의 미학을 성취시키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배우는 이의 내면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지도 동일하게 중요한 고려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배우는 이의 온전한 발달이 최종적 목적으로 추구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만 추구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용교육은 운명적으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만 합니다. 무용이라는 예술활동 자체의 목적을 추구함과 동시에, 배우는 이의 인간적 완성, 자아의 실현을 이루어내야만 합니다. 우리의 판단에, 지난 동안의 무용교육 (특히 국내에서의) 연구는 전자에 집중함으로써, 후자의 관점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무용과 무용교육은 여전히 소수 그룹의 전유물로만 남아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의 본래 모습 추구와 배우는 이의 완성에 동시적인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무용은 무용, 학생은 학생으로 분리되어 남아있는 무용교육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용과 학생이 하나로 엮어지는 무용교육론의 발견과 연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용의 본질적 성격을 찾아내고 그것을 학생에게 전수시킴으로써, 배우는 이의 온전한 완성이 이루어지는 무용교육의 관점을 발견해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개념은 무용을 예술이자 일상으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이론적, 실천적 노력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저희 연구자들은 지난 수년간 이런 방식으로 무용교육을 탐색해오고자 하였습니다. 국내외 주류 무용교육연구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미흡한 점들을 보완해내는 교육학적 관점에서 무용의 교육적 차원에 주목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반 교육학 연구에서의 철학적, 개념적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무용교육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스포츠교육학의 연구에서도 유용한 도움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음악교육이나 미술교육, 그리고 연극교육 등 예술교육 전반에 걸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을 벤치마킹하고 활용하였습니다.
“문화예술현상”으로서 무용을 이해하고, “문화예술교육”으로서 무용교육을 개념화함으로써, 무용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람됨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가꾸어나가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용은 문화예술로서 모든 이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머나먼 전문예술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생활예술로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나친 저급문화나 흥미위주의 여흥문화로 변질되지 않도록 본질을 유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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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러한 공부의 산물입니다. 지난 수년간 발표한 연구들을 묶어서 모자이크처럼 무용교육을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작은 그림을 만들어내 보려고 하였습니다. 무용교육의 목적, 무용교육의 내용, 무용교육의 방법, 그리고 무용교육 프로그램이라는 4개의 큰 부로 전체 윤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부에 3개 내지 4개의 작은 장들을 위치시켜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무용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문화예술로서 무용을 배우는 이유는 “댄스 리터러시”를 함양하는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댄스 리터러시를 “무용소양”으로 번역하고, 배우는 이들의 몸과 마음에 무용소양을 쌓아나가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으로서 무용교육의 일차적 목표임을 탐색합니다(제1장). 댄스 리터러시의 개념을 보다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하여 무용교육전문가들에게 자세하게 물어보고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차원을 명료하게 구분해보기도 합니다(제2장). 그리고 무용을 배우는 이에게 쌓이도록 하는 것이 댄스 리터러시라면, 무용교육자는 반드시 그것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어떻게 그것을 함양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제3장).
<제2부>는 무용을 가르칠 때에 가르쳐지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검토해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용과 안으로 감춰진 내용을 구분하여 밝혀내고 무용기능이나 테크닉에 몰두하는 현재의 교육풍토에 질문을 제기합니다. 문화예술로서의 무용은 기능의 차원과 정신의 차원이 있음을 구분합니다(제6장). 이것은 발레나 한국무용이나 구분이 없습니다. 다만, 형식성이 보다 덜한 한국무용에 정신의 차원이 보다 더 강조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발레에도 여전히 정신의 차원이 존재합니다. 발레정신(제4장)과 한국무용정신(제5장)의 개념과 구체적인 구성요소들이 무엇이 있는지를 상세히 찾아냅니다. 그리고 무용의 정신적 차원을 제대로 가르치는 무용교육은 곧바로 인성교육(심성교육)이 됨을 알려줍니다(제7장).
<제3부>는 무용의 정신적 차원을 제대로 가르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무용의 테크닉을 가르치는 방법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학원이나 예술학교에서 잘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무용의 정신적 차원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사람마다 말하는 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무용의 정신적 차원은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가르쳐진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발레(제8장)이건 한국무용(제9장)이건 관계없이 올바른 무용지도는 “간접교수방법”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잘 전달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가르치는 이의 말투, 표정, 행실, 열정, 눈빛, 용모 등을 통해서 전수되는 것을 간접교수라고 부릅니다. 특히, 인성을 강조하는 한국무용에서 활용되는 직접교수방법과 간접교수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봅니다(제10장). 그리고, 간접교수를 잘 해내기 위해서 무용교육자는 지도기술보다는 마음결, 마음바탕, 즉 “심성”을 가다듬어야 함을 살펴보고 있습니다(제11장).
<제4부>는 이러한 목표, 내용, 방법의 개념적 기반을 바탕으로 구성될 수 있는 무용교육 프로그램의 대략적 모습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무용의 기능적 차원과 정신적 차원이 동시에 강조되면서, 정신적 차원이 제대로 학습되어 전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기능만을 중시하는 접근이 미흡합니다. 무용소양을 쌓아나가면서 무용의 안목적 차원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통합적 접근”을 취해야만 합니다. 통합적 접근은 최근 유행하는 융합교육의 형태를 취합니다. 발레나 한국무용의 기능과 함께 문학, 예술, 종교, 철학, 역사적 내용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기존 무용교육 프로그램들의 장단점을 살펴보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통합적 교육프로그램의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하나로 수업 모형을 제안합니다(제12장).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로 수업 모형에 영향 받은 통합적 발레정신 함양 프로그램(제13장)과 통합적 한국무용정신 함양프로그램(제14장)의 대략적 모습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반성적 교양체육수업(제15장)의 사례가 다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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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그리고, 왜 (그것을 그렇게) 가르칠 것인가? 무용교육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일 것입니다. 무용을 가르치는 목적(why), 내용(what), 방법(how)을 묻기 때문입니다. 무용교육의 3대 질문이라고 할 만한 것들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다른 질문들은 지엽적인 것들이거나 이것의 변주질문들일 뿐입니다. 제대로 된 무용교육 탐구의 출발은 이 질문들에서 시작되고, 결국 이것들로 마감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의 질문도 결국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라는 물음으로 귀착되고 맙니다.
저희 연구자들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무용교육을 공부하는 석사 및 박사학생 10여명으로 구성된 연구공동체에서 함께 이 3대 질문들을 탐색해오고 있습니다. 발레, 한국무용, 그리고 현대무용까지 다양한 실기전공 배경을 가지고, 여러 학부에서 배운 열정적인 학도들이 모여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여러 편의 석박사 학위논문들이 완성되었고, 박사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연구 프로젝트 및 학술연구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연구노력들의 첫 번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이 여기서 선보이는 탐구의 노력은 독자적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닙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국내외 전문무용인들과 무용교육자들이 행한 실천과 연구의 노력들을 바탕으로 가능하였습니다. 기존에 쌓아올린 거대한 노력 위에 저희들의 미력한 시도를 살짝 얹어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저희는 이 연구물을 내어놓음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무용이, 춤이 삶의 일부분이 되고 생활의 한부분이 되도록 하는 그 멋지고 힘겨운 장정에 본격적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무용 가르치기의 목적과 내용과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저희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기 위한 그 어려운 여정을 묵묵히 감수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최의창, 홍애령, 박혜연, 임수진, 김나이 올림
2016년 2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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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