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체 어떤 바이러스인지 말하지 않는다. 이 책은 포스트코로나가 과연 어떨지 말하지 않는다. 지금, 바로, 여기. 현장에 대해서만 말하는 유일한 책, 코로날러지. 모두가 확진자를 피해다닐 때, 확진자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 의료진이 전하는 코로나19 현장기록. 서울시 역학조사관은 시신에서 검체를 채취하고, 대구 파견 공중보건의사는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받고 코로나19거점병원 간호사는 중환자를 돌보다 본인이 천식에 걸린다. 어떤 수단에도 오염되지 않고 코로나19 현장으로부터 당신에게 직진하는 기록물. 2020년, 코로날러지. ※ 코로날러지 Coronowledge는 코로나바이러스 Coronavirus, 나우 Now, 날러지 Knowledge의 합성어입니다. 지금처럼 감염병이 세계를 휩쓸 때 의료진에겐 종종 과한 기대가 걸리곤 합니다. 국가, 국민, 소명, 책임, 본분 같은 단어들도 등장합니다. 언론은 전문가의 말이 필요하고 전문가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을 진단합니다. 분명‘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로 시작된 인터뷰였는데, 어느새 간편하게 필요한 말만 취사 선택되면서 내가 초대하지 않았던 논조를 갖게 됩니다. 확진자는 그 자체로 징후입니다. 각종 알림을 통해 참으로 소상히도 그가 들른 업장과 역사(驛舍)가 낱낱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중은 확진자를 색출하는 데에 골몰합니다. 이어서 우리 동네에 확진자가 있는지, 그의 동선과 나의 동선이 겹치는지, 그래서 대체 백신은 언제 나오는지 여부가 개인의 최대관심사가 됩니다. 혼란의 시대, 정보는 빠르게 세를 구축합니다. 잘못된 정보일수록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말, 남의 일을 재미있어하는 듯 퍼지는 말에 힘 입어 발 없이 천 리를 갑니다. 이런 탓에, 어쩌면 감염되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도 조리돌림을 당할까 봐 검사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음성적 경로로 숨어버린 사람들을 찾아내어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행정력이 소모됩니다. 명백히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고, 이러한 한계를 보정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문제는 현장 밖으로 잘 알려지기 어렵습니다. 현장의 문제가 밖으로 알려지는 방식은 의외로 일방적인 찬사나 강조의 측면이 되기 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있는 그대로의 현장기록이 후대에 남겨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역학조사관은 의사로서 본업인 진료와 연구, 강의로 바쁜 중에도 누구보다 기민하게 바이러스 확산의 행보를 주시하며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접촉 범위를 분석해 추가 피해를 막았습니다. 속 시원히 ‘당신은 양성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검체를 채취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말을 건네게 됩니다. 이를 위해 한 공중보건의사는 하루아침에 연고도 없는 낯선 도시에 떨어져 확진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심지어 그들의 집에까지 찾아가서 만나고 또 만났습니다. 임상 7년차에 들어선 한 간호사는 옛 직장이 코로나19 거점병원으로 지정되자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자기 발로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국시 공부할 때 봤던 기계를 실제로 사용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 닥쳐오고 의식을 상실한 중환자가 여기서 꺼내 달라고 외치며 병실 바닥을 기어 다닐 때에도 오로지 그 환자의 회복과 추가 확산 방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 천식까지 걸리고 맙니다. 이순신(1545-1598)은 생사가 찰나로 비껴가는 전장(戰場)에서 일지를 썼고, 안네 프랑크(1929-1945)는 박해의 시대에 캄캄한 다락방에 숨어 숨막히는 긴장 속에 일기를 썼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현장은 절대로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크나큰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헤아리고 보면 이들이 현장에서 남긴 덤덤한 기록이 보다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결코 코로나19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역할을 다하고자 현장에 머무는 분들이 있습니다. 덕분에 밤과 낮이 그대로 밤과 낮일 수 있습니다. 도통 중심이 잡히지 않을 때 내가 아는 무엇인가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로가 됩니다. 2020년, 코로나19 대응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세 저자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추천의 글 ㆍ 이종구 (前질병관리본부장·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ㆍ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장) ㆍ 이어진 (법무부 여수출입국·외국인관리사무소 의무과장) 여는 글 일러두기 어느 역학조사관 이야기 ㆍ 쓰는 이유 ㆍ 세 번째 팬데믹 ㆍ 질병수사관 ㆍ 신상정보 공개문제 ㆍ 정보왜곡 문제 ㆍ 폐쇄회로티비 속 2m ㆍ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 ㆍ 감염병 보도준칙 ㆍ 아찔했던 집단감염 ㆍ 모범적이었던 어느 병원 ㆍ 죽은 자의 검사 ㆍ 신뢰, 협조, 책임분담 ㆍ 인포데믹스 ㆍ 뉴 노멀: 현재진행형인 팬데믹 ㆍ 안전한 공생 어느 공중보건의사 이야기 ㆍ 꽝 당첨 ㆍ 막막한 하루, 적막한 동성로 ㆍ 방문 검체채취 미션 ㆍ 남의 집 앞에서 옷을 벗다 ㆍ 보이스 피싱 ㆍ 여기 확진자 살아요? ㆍ 꼬여버린 동선 ㆍ 바깥을 지키는 음압텐트 ㆍ 환자 사이 간격 ㆍ 여기서 막아야 전국으로 안 퍼져! ㆍ 이상과 현실 ㆍ N95와 레벨D ㆍ 폐에선 쇠맛이 나… ㆍ 동료의 확진 ㆍ 검사를 받는 입장 ㆍ 전원 음성의 찝찝함 ㆍ 자진반납한 귀가 ㆍ '한국사람들' ㆍ 확진 부부의 갓난아기 ㆍ 대구시민들의 선물 어느 간호사 이야기 ㆍ 생소한 진동 소리 ㆍ 자원자 모집 ㆍ 무서워, 하지만 ㆍ 엄마의 눈물 ㆍ 동산병원 병동 ㆍ 레벨D 를 도와줘 ㆍ 얼린 생수병 ㆍ 장례식장의 쪽잠 ㆍ 똑같은 환자일 뿐 ㆍ 속속 도착하는 자원의료진 ㆍ 진짜 기계 앞에서 ㆍ 제발로 걸어온 중환자 ㆍ 여기서 좀 꺼내줘요 ㆍ 떠난 환자가 남긴 것 ㆍ 천식 진단을 받다 ㆍ 연대감 ㆍ 또 자원할 것 같아요 ㆍ 수고하신, 모든 닫는 글 자료일람 주요 참고 사이트

■ 이날 밤에 있었던 일은 아마 나에게는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첫날의 일을 마무리하고 철수하려고 하는데, 밤 9시 15분경 상황실로 감염내과 선생님이 와서 난감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환아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역시 마스크를 쓰지 않은 환자와 1분 이내의 시간 동안 나란히 누워있는 폐쇄회로티비 영상을 찾았다고 했다. 서로 대화도 없었고 두 사람 모두 반듯하게 누워서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가까운 거리에 나란히 카트가 닿아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분 찾아서 검사하고 격리하시죠.”라고 말했더니 감염내과 선생님의 얼굴에 더욱더 진한 난감함이 스쳤다. “저…, 그분이 오늘 오전에 사망하셨어요. 그런데 가족들이 다른 곳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셔서 시신이 지금 병원에 없습니다.” 순간, 우리의 퇴근은 모두 보류되었다. - 어느 역학조사관의 이야기 〉 모범적이었던 어느 병원 〉 62p ■ 사망 확인 후 시신이 병원을 떠난 지 4시간 정도 지났다는 말에, 장례식장까지 가서 검체를 채취해서 확인을 해야 유족들의 감염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의견과, 이미 사망한 지 여러 시간이 경과했기 때문에 몸속에 있는 바이러스도 함께 사라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례가 없고 어느 누구도 사망 4시간 후 시신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는 없었으므로, 결국 다른 병원의 장례식장으로 옮겨진 시신에서 바이러스 검체를 채취하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 어느 역학조사관의 이야기 〉 죽은 자의 검사 〉 63p ■ 오히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무분별한 괴담과 이에 따른 인포데믹스, 사회적 불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시기에 제공하는 신뢰받는 기관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여기에서 제공되는 정보들 위주로 학습하고 실천한다면 코로나바이러스 ‘정복’은 어려울지언정 최소한 ‘안전한 공생’ 정도는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어느 역학조사관의 이야기 〉 안전한 공생 〉 77p ■ 알림이 쌓인 방은 다름이 아닌, 같은 지자체에서 근무하는 공보의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채팅방이었다. “저희 시에서 한 명이 대구로 파견을 가게 됐습니다. 내일 오전 10시까지 대구시청 건물로 집결해야 한다고 합니다. 별도의 자원자가 없다면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채팅방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제비뽑기 결과화면이 보내졌다. 클릭하자 확대되는 ‘꽝’이라는 한 글자. 병역의 의무를 등에 짊어지고 임기제 공무원 신분인 나는 속된 말로 그저 ‘까라면 까야 하는’ 입장이다. 나의 대구 파견은 그렇게 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어느 공중보건의사의 이야기 〉 꽝 당첨 〉 86p ■ “안녕하세요. 보건소에서 전화드려요.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주민등록번호 좀 불러주시겠어요?” “아니, 이거 보이스피싱 같은 거 아니에요? 개인정보를 전화로 막 불러줘도 돼요?” 전화를 하는 내 입장에서도 ‘충분히 의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납득이 갔다. 국가기관에서 시민의 주소지를 몰라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묻는데 설상가상으로 개인정보까지 물어본다면 신뢰가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느 공중보건의사의 이야기 〉 보이스피싱 〉 98p ■ 지나가던 주민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여기 확진자 있어요? 어느 집이에요?”라고 물어본다. 확진자가 있어서 온 건 아니고 개인정보라 알려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린다. 그리고 나를 향한 시선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나를 향한 관심이 조금 줄어들어 이쪽을 보는 사람이 많이 거의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쯤 비밀작전이라도 펼치는 마냥 조심스레 자택으로 진입한다. 우스꽝스러웠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 어느 공중보건의사의 이야기 〉 여기 확진자 살아요? 〉 99p ■ 어느 날, 짐을 들고 어떤 환자 한 분이 중환자실로 걸어왔다. 처음에는 사복을 입고 중환자실 입구로 걸어온 사람을 보고 병동에서 도망 나온 사람인가? 싶어서 당황하며 물었다. “어쩐 일이시죠? 어떻게 오셨어요?” 환자는 숨을 몰아쉬며 답했다. “여기가 중환자실 아닌가요? 입원하러 왔는데요….“ -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 〉 제발로 걸어온 중환자 〉 166p ■ 주변에 아무도 없고 알람만이 울리는 기계 사이에서 혼자 갇힌 방에 있으려니 환자는 겁에 질린 것 같았다. 틈틈이 밖에 있는 가족과 전화를 하며 두려움과 괴로움을 달래던 환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고 고용량산소치료를 받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공포감이 생기게 된 환자는 결국 인지력을 상실했다. “꺼내줘, 꺼내줘…. 여기 있다간 저 사람들처럼 죽을지도 몰라! 꺼내줘.” -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 〉 여기서 꺼내줘요 〉 171p ■진단결과는 천식이었다. 그 숨쉬기 어려운 마스크를 쓰면서 내 몸이 천천히 ‘악’소리를 내고 있었나 보다. 병원에서는 아직 ‘쌕-쌕-’소리가 날 정도가 아니기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며, 그렇지만 심해지면 스테로이드를 써야하니 흡입기를 받아가라고 했다. 덜컹 내려앉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보니 그제야 천식에 걸린 내 모습이 보였다. -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 〉 천식 진단을 받다 〉 17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