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른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금원은 양반 아버지와 소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였어요. 그래서 열다섯이 되면 어머니처럼 기생이 되거나 양반집 소실이 되어야 했지요. 하지만 금원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집안일을 배우지 않고 책을 읽거나 글을 지으며 자랐기 때문에 여자들이 해야 하는 바느질이나 부엌일을 잘하지 못했어요. 게다가 책 속에서는 생각의 나래를 펴서 어디든지 훌쩍훌쩍 날아갈 수 있었던 반면 현실에서는 정해진 신분대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금원은 자신의 삶이 답답했지요. 열다섯을 일 년여 앞둔 어느 날, 금원은 다른 사람들은 뭘 하며 살아가는지 궁금해졌어요. 넓은 세상에 나가 금강산을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지요. 하지만 가족들을 설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고민 끝에 금원은 남장을 하고 부모님 앞에 나섰어요. 남장을 하고 여행하면 가족들이 걱정할 일도 줄 것 같다고 생각했지요. 어머니는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고 아버지는 엄한 얼굴로 금원을 꾸짖었어요. 하지만 금원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어요. 마침내 금원은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열네 살 봄날에 남장을 한 채 홀로 여행길에 올랐어요. “그림 같다는 말은 잘못되었네.” 여행을 시작한 금원은 제천으로 가서 하늘과 물의 구분이 없는 의림지도 보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들을 따라 두 팔 벌려 달려 보기도 했어요. 시원한 공기 덕분에 걱정과 불안도 씻겼고, 아픈 것도 다 날아갈 것 같았지요. 단양의 선암에서는 신선의 놀이를 구경하다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 속 주인공도 되었어요. 여행의 고단함과 낯선 잠자리 때문에 뒤척이는 밤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여행의 풍경과 느낌을 시로 남기는 즐거움에 푹 빠졌지요. 그리고 드디어 그림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금강산 1만 2천 봉을 내려다보게 되었어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책으로만 알던 이야기와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어요. 낯선 곳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며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갔지요. 그런데 쌀쌀한 봄기운에 피곤함까지 겹치자 금원은 몸이 무거워졌어요. 설상가상 푸른 눈을 번쩍이는 산짐승과 마주치게 되었지요. 여행에 취해 들떴던 초보 여행가 금원은 정신을 가다듬고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힘차게 뛰기 시작했어요! 과연 금원은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가장 귀한 보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금원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궁금해했던 것은 자기 길을 찾고 싶어서였어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살아왔고, 친구들과 동생들이 살아갈 그 길을 자신도 똑같이 살아야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싶지 않았지요. 여행을 떠난 금원은 여러 사람을 만났어요. 의림지에서 만난 할아버지에게 생선회를 받아먹고, 할아버지에게 이끌려 간 집에서 만난 할머니는 금원의 끼니를 챙겨 주며 기뻐하고 뿌듯해했지요. 화공은 이야기와 그림을 펼치면서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을 사로잡았고, 동자승은 날다람쥐같이 뛰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 갔지요. 감로수를 함께 마신 남자는 몸은 아파도 최선을 다해 사는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 소개했고, 차 끓이는 아이는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있었어요. 대단한 일을 하거나 어딘가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는 않았어도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길을 걸었지요. 금원이 지장암에 들렀을 때 주지 스님이 물었어요. “지장암에는 온갖 진귀한 보물들이 많지요. 그중에 가장 귀한 보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스님이 금원에게 말해 준 가장 귀한 보물은 무엇이었을까요? 여행 끝에 금원도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새장을 나온 새처럼 푸르게 날아올랐던 기록, 《호동서락기》 김금원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진짜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아서 금원 김씨라는 호(號)로 불리고 있지요. 여행을 다녀온 후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고, 함께 관서의 의주로 가서 살다가 훗날 한양 용산에 돌아와 자리를 잡았으며, ‘삼호정 시사’라는 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다가 《호동서락기》라는 책을 펴냈다고 알려져 있지요. 오늘날 금원에 대해 알려진 정보의 대부분은 《호동서락기》에 적혀 있는 내용이에요. 《호동서락기》의 호동서락은 금원이 여행했던 호서, 관동, 관서, 한양을 뜻해요. 《호동서락기》에는 호동서락 각 여행지의 풍경 묘사와 지역 정보도 담겨 있기 때문에 지금은 북한에 있어서 갈 수 없는 지역들도 알아볼 수 있어요. 또한 《호동서락기》에는 기행문과 시, 지역 관련 설화와 역사, 시대상과 함께 금원의 마음도 담겨 있어요. 금원은 “글로 전하지 않으면 누가 지금의 금원을 알겠는가?”라고 적으며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은 마음, 책을 쓰는 이유를 넌지시 드러냈어요. 《호동서락기》가 금원의 유일한 책인 게 아쉬우면서도, 기행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남겨 둔 금원이 대단하게 느껴지지요. 김금원은 용감한 여행가이자 기행문을 책으로 남길 만큼 뛰어난 글재주를 지닌 문인이었어요. 삼호정 시사에서 함께 활동했던 박죽서의 《죽서시집》 발문을 쓰기도 했고, 남편 김덕희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제문을 쓰기도 했지요. 완당 김정희의 《완당전집》에는 김덕희와 6촌 지간이었던 김정희가 김금원의 제문을 읽은 후 글의 기운이 편안하고 구성이 반듯하다고 언급한 내용이 담겨 있어요. 평범한 조선의 여성 김금원은 용감하게 세상을 구경하고 돌아와 자신의 여행을 책으로 기록하며 여행가 김금원으로 거듭났어요. 자기 길을 찾아 가며 당차게 성장한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의 여정을 따라가 보세요.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에는 서얼 제도 등 조선의 신분 제도를 소개하는 ‘그때 그 시절’, 여성 여행가로서의 김금원을 알아보고 조선 시대의 또 다른 여성 여행가를 소개하는 ‘인물 키워드’, 《호동서락기》와 삼호정 시사 및 삼호정 터를 소개하는 ‘인물 그리고 현재’ 등 정보 페이지도 함께 구성되어 있어 김금원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요. 청어람주니어 블로그(https://blog.naver.com/juniorbook)에서 《조선 최초의 여성 여행가 김금원》 독후 활동지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인물 관계도, 낱말 퍼즐, 독서 퀴즈, 독서 토의·토론 등 다채로운 내용이 담겨 있으니 독후 활동 시 활용해 보세요. ‘여성 인물 도서관’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1. 왜 여성 인물일까요? 옛날에는 유교 사상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여성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 시대에도 정치, 사업, 학문, 문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여성들이 있었어요.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남성들보다 덜 알려진, 하지만 알아야 할 여성들의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 동화로 엮었어요. 2. 다른 인물 이야기와 무엇이 다를까요? 인물이 살던 시대와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적 구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역경을 이겨 내는 인물의 성격과 삶의 태도에 집중했어요.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냈는지, 어떤 점에서 뛰어났는지 조명함으로써 입체감 있는 인물의 삶에 몰입해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인물 동화예요. 3. 인물 이야기로 어떻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 앞에 ‘인물 관계도’와 ‘연표’를 넣어 인물과 연관된 사람들과 인물의 생애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어요. 이야기 끝에는 인물이 살던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알려 주는 ‘그때 그 시절’, 인물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인물 키워드’, 인물의 영향으로 생겨나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유물·장소·제도 등을 소개하는 ‘인물 그리고 현재’를 넣었어요. 인물 이야기와 더불어 역사 정보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다채롭게 구성한 역사 동화예요.

인물 소개 인물 관계도와 연표 바늘 대신 책을 들고 남장을 하고 나를 찾아 신선의 호수에서 순채를 먹으며 신선의 바둑판에서 금강산을 발아래 두고 떠나고 싶은 아이 왕족도 궁궐도 모두 사라지고 감로수를 마시며 차 끓이는 아이 집으로 가는 길 삼호정 친구들 그때 그 시절 #신분_제도 #서얼_제도 인물 키워드 #여행가 #유람 인물 그리고 현재 #호동서락기 외

“너, 금원이?” 어머니는 금원의 주위를 돌며 금원을 다시 살펴보더니 화난 목소리로 꾸짖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엉뚱한 생각을 하지 말라 했더니 이젠 아예 남자의 옷을 입고 엉뚱한 행동을 하기로 한 것이냐?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냐?” 어머니는 남이 들을까 두려운지 소리를 높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에는 단단한 노여움이 실려 있었다. “이토록 가고 싶습니다.” 금원도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차분했지만 금원의 목소리에는 단단한 심지가 들어 있었다. “저는 너른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규방에 갇혀 세상이 어떤지도 모른 채 살고 싶지 않습니다.” -본문 24쪽 꽃들이 아름답게 웃으며 금원에게 손짓하는 것 같았고, 향기로운 풀들은 안개처럼 푸른색을 퍼뜨려 일렁이는 듯했다. 금원은 옆에 내린 장막도 살며시 걷어 보았다. 빙 둘러싼 푸른 산이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병풍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막 발걸음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좋으니, 발걸음이 이어질수록 얼마나 좋을까.’ 금원은 너무 좋아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시원한 공기가 가슴 속 저 깊은 곳까지 들어와 온갖 걱정과 불안 등을 다 씻어 주어 티끌조차 남겨 두지 않는 듯했다. 이런 공기를 쐬고 다닌다면 그간 달고 살았던 기침이나 몸살도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문 34쪽 “푸르! 푸르르!” 다리가 풀린 금원의 귀에 문득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주위는 어둑어둑했고, 사람 말소리나 그림자 하나 없었다. 금원은 발을 땅에 풀로 붙인 듯 꼼짝할 수 없었다. 팔에 소름이 쫙 끼치며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금원은 서서히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 산짐승이었다. 눈이 퍼렇게 반짝이는 멧돼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금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금원은 숨이 멎는 듯했다. 금원은 천천히 다시 고개를 돌린 후, 정신을 가다듬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본문 65쪽 “남길 것은 지금부터 만들면 되지요. 누가 아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자기 길을 자기가 갈 뿐이지요.” 금원은 유누에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여자라, 서얼이라, 가난한 집안이라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세상이 만들어 낸 담장일 뿐이었다. 금원은 그 담장을 넘고 부수고 싶었다. 혹 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었는데, 유누에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원 스스로도 마음이 더욱 굳건해졌다. ‘넘지 못한들 어떠랴! 거기까지가 내가 만든 길이니 다른 이들이 거기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본문 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