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문화의 개념 정의
문화는 인간의 삶 모든 영역에 걸쳐 있다. 의식주 생활로부터 고차원의 문화 예술, 최첨단 인공 지능에 의한 로봇 생활까지 모두 포함한다. 정치 행정, 경제, 사회, 과학 기술과 같은 차원에서 논의되는 문화는 상대적으로 좁은 부분만을 지칭하려고 하는 것이다. 생활 문화, 예술 문화, 관료 문화, 지방 문화, 밤거리 문화처럼 이제는 ‘문화’라는 단어가 보통 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 책의 주제는 문화, 문화론이다.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제각기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문화’의 개념을 정리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개념 정의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문화는 첫째, 지적 활동을 통한 인류 발전(개념 정의 1)을 말한다. 둘째, 문화는 인간이 지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물(개념 정의 2)을 가리킨다. 셋째, 문화는 특정한 공동체의 삶의 양식이나 관습, 또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적 상징 체제(개념 정의 3)다. 각각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논의해보자.
1. 문화: 지적 활동을 통한 인류 발전
문화는 인간의 지적 활동(知的 活動)을 통한 인류 발전(人類發展)을 의미한다(Culture is the human development through intellectual activity).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은 환경에 잘 적응하여 생존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었다. 또 다른 인간과 조화롭게 사회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자연과 사회 적응을 위한 정신적, 지적 활동이 바로 문화다. 문(文)은 말과 글, 이것으로 표현한 문장과 사상, 사물의 진리를 모두 포함한다. 더 나아가서 지적이고, 문채(文彩)나며, 멋진 것, 발전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동양 최초의 서적인「서경(書經)」첫머리에서 최고의 성인(聖人)인 요(堯)는 ‘흠명문사(欽明文思)’하고 순(舜)은 ‘준철문명(濬哲文明)’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명(明)은 ‘밝히 두루두루 앎(=通明)’을 말하고, 문(文)은 ‘멋스러운 모습(=文章)’을 의미하며, 사(思)는 ‘사려 깊은 지적 작용(=意思)’을 뜻한다. 준(濬)은 ‘깊음(=深)’을, 철(哲)은 ‘지혜로움(=智)’을 뜻한다. ‘문’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사물의 이치를 깊이 잘 깨달아 알아 이를 현실 생활에 잘 응용하는 지적이고, 멋진 모습이 바로 문이다.
문화(文化)라고 할 때는 이런 문의 상태로 발전해가는 것이다. 지적 활동을 통해 인간이 삶을 의미 있고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이대희, 2001:8), 인간이 자연이나 동물 수준을 넘어 지적이고, 멋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문화다. 이런 관점은 Hofstede and Hofstede(2010:4-7)가 문화를 정신 소프트웨어(mental program. software of the mental)라고 보면서 문화를 문명 또는 ‘정신의 세련화’로 보는 것과 비슷하다. 문화란 온갖 형태의 생각, 느낌, 행동을 포괄하며, 정신을 세련화 하는 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의 평범하고 사소한 것도 포함한다. 문화를 논할 때, 지적이라는 말은 이성적 사고와 판단, 언어 사용, 지식과 정보의 적절한 활용과 관련이 있고, 멋있다는 말은 동물적 본능 수준을 넘어서, 지성을 갖춘 인간의 여유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킨다.
영어로 문화를 Culture 라고 하는데, 이는 (농작물 경작하듯이) 인간 정신의 고양(a cultivation of the soul or ‘cultura animi’)을 의미한다. 자연, 야생 상태를 벗어나서 지혜롭게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처럼, (동물과 달리) 이성과 지혜, 언어와 도구를 활용하는 인간다움이 문화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culture는 문화를 말하는데, 이 속에는 지적이거나 도덕적인 활동, 인간 지식의 총체, 특정 집단이나 사회의 믿음이나 양식, 존재 특성, 가치체계 등을 모두 포함한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인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 믿음, 예술, 도덕, 법, 관습, 능력이나 습성 등을 모두 포함한다(Tylor, 1974).
문화의 의미를 새길 때, 지적 발전 상태를 뜻하는 문(文)과 그렇지 않은 비문(非文)을 대비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 〈표 1-1〉에서 좌측은 자연 상태와 가깝고 덜 발전한 상태를 뜻하는 비문의 영역이고, 오른쪽은 지적 활동을 통해 수준 높아진 문의 영역이다.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문과 비문의 구별이 필요 없겠지만, 문화의 의미가 지속적 인류 ‘발전(化)’임을 고려하면 우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지적 활동은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개인 차원에서는 자기 성찰, 학습, 교육 등을 통해 지적 활동을 지속하며 공동체 사회 차원에서는 언어, 도구, 공동체 조직, 통신 수단, 과학 기술이 사용된다.
■ 인간의 ‘문’화
인간의 문화화(文化化)는 인간을 지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동물적, 본능적 상태에서 사려 깊고 우아한 지적 상태로 고양하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의 존재 양식과 대치되는 인간의 존재 양식이고, 높은 수준의 지적 계발이나 교양을 말한다(박이문, 2016:424-425).
2. 문화: 지적 활동의 결과물
인간의 지적 활동 자체가 문화이듯이 이런 지적 활동의 결과로 생기는 창조물도 문화에 포함된다. 문화는 인간의 지적 활동의 결과물(結果物)이다(Culture is the result of human intellectual activity). 행위 측면을 보면 언어와 도구 사용, 사회적 관계와 활동, 예술 활동 등을 모두 포함하고 결과물 차원에서는 국가와 사회 공동체 자체, 문화재, 문화 예술, 관습, 규범, 예절, 법, 사고 방식, 종교, 정치 등이 모두 포함된다. 다만, 관심 대상과 관련하여 정치, 경제, 사회, 과학 등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나머지를 문화로 볼 뿐이다. 문화의 내용 속에는 객관적 요소로서 물질적인 것과 주관적 요소로 가치, 믿음, 규범, 태도, 세계관이 동시에 포함된다(Matsumoto & Juang, 2013:7). Williams(1976:80)도 문화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면서, 일정한 범위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활동과 그 산출물, 한 민족이나 집단 혹은 사회의 활동, 신앙, 관습 등 전체적인 삶의 양식을 모두 문화로 보고 있다. Hofstede & Hofstede(2010:4-7)가 문화를 정신 세련화의 결과물로 생기는 교육, 예술, 문학 등을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지적 활동이 문화에 해당하는 만큼 인류 역사 모두가 문화에 해당한다. 현대 학계에서는 다양한 영역과 방식으로 깊이 있는 문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표 1-2〉는 인간의 지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로서의 문화를 정리한 것이다.
인간의 지적 활동의 결과물 측면에서 문화를 유형 별로 살펴보면,
첫째, 인문 사회에 속하는 모든 것들이 문화에 속한다. 언어, 문학, 종교, 가족, 사회 공동체, 예절, 규범, 도시, 교육, 사회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지적 활동’이라는 면에서 인문학이나 사회학이 기본이 되고, 여기에 의식주 활동이 포함된다.
둘째, 생물 자연에 속하는 것들도 문화의 일부다. 한강이나 설악산, 백두산 호랑이와 같은 산천이나 동식물 등 자연도 인간과 함께 하는 문화 생태계에 속한다. 도시나 공원, 각종 관광 자원이 여기에 속한다.
셋째, 경제, 과학 기술도 문화이다. 인류의 의식주 활동, 상품 생산과 유통, 소비가 문화이고 각종 교통 통신 수단, 미디어, 생활 편의 시설과 도구가 모두 문화에 속한다. 문명이라고 표현되는 것들이다.
넷째, 국가와 역사도 문화이다. 국가, 정부, 정치 행정, 정책, 법규, 이데올로기, 민주주의가 모두 문화다. 인간의 지적 창조물은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이어져서 역사가 된다. 인간의 지적 창조물은 모두 문화재가 되고 역사가 된다.
다섯째, 인류의 예술, 예술 작품이 문화다. 국가 건설, 경제 발전, 정치 민주의 시기에 문화는 예술 문화를 중심으로 논의가 된다.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방송, 드라마가 문화의 중심에 섰다. 여기에 문화재 정도가 추가된다. 물론 국민 형성을 위한 국어, 민족, 종교도 문화 차원에서 다뤄지긴 한다.
영 역
문 화
문 화 학
1. 인문
사회
인간의 가치관, 욕구, 행태, 사고 방식, 감성 작용
문화 심리학
언어, 상징, 축적된 지식(책, 지식 등), 철학, 미학
문학(시, 소설, 드라마, 수필 등)
문화 인문학
가족, 예절, 규범, 관습, 사회화, 사회 구조와 기능,
계급론, 도시와 농촌, 빈부, 범죄, 종교, 대중문화, 근본주의, 페미니즘, 성 소수자, 삶의 양식
문화 사회학
문화 범죄학
인종, 민족, 다문화, 전쟁과 평화
문화 인류학
2. 생물
자연
물질과 인간관계, 적자생존, 진화된 인간, 문화와 육체
문화 생물학
자연 환경, 인문 지리, 기후와 인간, 환경 오염, 의식주, 도로와 교통, 중앙과 지방
문화 지리학
3. 경제,
과학
기술
자본과 노동 관계, 생산과 소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중앙과 지방 경제, 빈부 격차, 국제 무역, 화폐
문화 경제학
도구, 과학 기술, 컴퓨터와 인터넷, 미디어 매체, 생명 공학, 로봇, 의학, 교통과 통신 수단, 우주 항공
문화 과학
4. 국가
역사
국민과 국가, 민족, 국가 발전과 문화, 선진국과 후진국, 국제 협력(UN, 국제 공동체 등)
문화 국가론
대의정치, 선거, 이데올로기, 보수와 진보, 민주, 자유, 평등, 행복
문화 정치학
행정 문화, 문화 정책, 행정 사무, 법규, 이성 정부,
감성 정부
문화 행정학
역사 기록물, 역사학 방법론, 발전, 근대와 현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역사 아카이브
문화 역사학
5. 예술
미학, 예술의 장르별 창작물, 문화 산업, 문화 향수,
미디어 매체와 예술
문화 예술학
문화 산업론
〈표 1-2〉 인간의 지적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
지적 활동의 결과물로서의 문화는 대부분 가시적(可視的, visible)이다. 문화의 발전이나 우열에 대한 판단은 주로 이 부분에서 등장한다. 선진국이나 후진국, 강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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